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경찰의 위상이 과거 검찰처럼 크게 높아졌다. 과거에는 검사의 수사지휘, 청와대 민정수석의 인사로 경찰은 통제를 받았다. 지금 경찰은 검찰의 수사지휘에서 벗어남은 물론 대공수사 기능까지 갖췄다. 경찰청장은 검찰총장과 달리 장관과 협의 없이 인사를 할 수 있고 자체 예산편성권도 갖고 있다. 경찰은 13만여 명의 방대한 인력과 정보력으로 가장 힘센 권력기관의 하나가 됐다.

이렇게 경찰의 위상이 바뀌었는데 이를 통제하던 민정수석실은 폐지됐다.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이나 다른 어떤 통제 기능이 필요한 이유다. 이에 따라 윤석열 정부는 ‘행안부 내 경찰국 신설과 행안부 장관의 경찰청장에 대한 지휘 규칙 제정’을 통해 경찰 통제에 나섰다. 경찰은 이를 두고 행안부 장관의 경찰 장악 시도라며 과거의 검찰처럼 반발하고 있다.

그 반발은 23일 충남 아산 경찰인재개발원에서 열린 전국 경찰서장회의로 나타났다. 전국 총경 630여 명 가운데 190여 명이 현장(56명) 및 온라인(140여 명)으로 참여했다. 류삼영 울산중부서장이 회의를 주도했다. 윤희근 경찰청장 직무대행은 해산 명령에 불응한 류 서장을 대기발령 조치했다. 앞으로 다른 현장 참가자에 대한 감찰도 실시하겠다고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은 25일 전국 경찰서장회의에 대해 “하나회의 12·12쿠데타에 준하는 상황”이라며 강경 대응 방침을 천명했다. 여기서 물러서면 나라 꼴은 말이 아니게 된다. 다음엔 군대가 나서지 말라는 법이 있는가.

경찰은 이에 반발, 전국 경감 경위 회의도 개최할 움직임이다. 야당도 류 총경의 대기발령에 ‘전두환 식 폭거’ 운운하며 반발하고 있다. 이상민 행안부 장관 탄핵 소리도 나오고 있다. 자칫 경찰조직과 정부의 전면전으로 비화될 가능성도 나온다. 지지율 하락으로 고심하는 윤 정부에는 또 하나의 악재가 터진 셈이다.

경찰은 “전국 검사회의는 되고 왜 전국 경찰서장회의는 안 되냐”고 반발한다. 일리가 있는 것처럼 보이나 근본적 차이가 있다. 전국 검사장 회의는 검찰총장의 승인하에 소집된 의견수렴 절차다. 이번 회의는 해산 명령에 따르지 않은 항명이다. 또 검사는 수사기관이지만 경찰은 지역의 치안도 책임진 조직이다. 서장은 군 지휘관처럼 위수지역을 함부로 떠나서는 안 된다.

치안을 책임진 13만여 명의 경찰 무장조직은 극단적으로 말해 군대나 마찬가지다. 그 일선 지휘관들이 이번에 집단 항명을 했다. 류상영 서장은 “문민통제를 위해 경찰국을 행안부에 두겠다는데, 그러면 정치인인 행안부장관은 누가 통제하느냐”는 발언까지 했다. 대통령과 국회, 법률이 장관에 대한 문민통제장치라는 사실을 모른다는 말인가. 그래서 국민을 위한 민주 경찰을 외치지만 사실 속내는 통제받기 싫다는 조직 이기주의처럼 보일 뿐이다.

민주당은 과거에 검찰의 반발을 국기문란 운운하며 문민통제를 강조했다. 국회 절대 다수당으로 국정을 책임졌던 정당인 민주당은 정파적 이해를 떠나 이 사태에 임해야 한다. 민주당은 우선 경찰의 집단행동부터 비판하고 나서야 한다. 야당이 됐다고 문민통제 입장을 바꿔서는 안 된다. 경찰국 신설에 따른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그것대로 조목조목 지적하고 입법을 통해 견제해야 한다. 그것이 수권정당으로 가는 길이다. 세계 어느 나라가 경찰의 집단 행동을 옹호하는가?

경찰도 경찰국 신설에 반발하기 전, 과거의 정권 하수인과 인권침해 흑역사에 대한 반성부터 먼저 해야 했다. 그래야 진정성을 인정받을 수 있다. 문민통제에 대한 경찰의 대안도 밝히고, 행안부와 교섭에 나서야 했다. 행안부 장관이 대통령의 위임을 받아 통제하면 안 되고 과거처럼 대통령실 민정수석이 하면 괜찮은가?

윤석열 대통령도 이번 사태를 깊이 성찰, 앞으로 국정 운영에 참고해야 한다. 사실 어느 조직도 통제나 간섭받기를 싫어한다. 그런 상황에서 경찰국을 행안부에 설치, 통제하려 하면 경찰의 반발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정부는 이를 면밀히 따져 보고, 여론 수렴 등 절차를 거쳐 차근차근 추진함으로써 경찰의 반발을 최소화해야 했다. 상명하복이 몸에 밴 윤석열 대통령이 ‘경찰은 명령하면 무조건 따라온다’고 너무 안이하게 본 것 같다. 누차 지적하는 바지만 정무감각이 너무 부족한 것 같다.

정치 초년생인 윤 대통령에게 탁월한 정무적 감각을 요구하는 것은 무리일 수 있다. 그렇다면 대통령은 정치원로나 자문그룹을 통한 정무적 조언을 통해 자신의 부족한 점을 메우려는 노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아쉽게도 정무감각보다 주로 관리능력만 보고 참모진을 꾸렸다. 정치를 너무 쉽게 생각하는 것 같다. 윤 대통령은 난마처럼 얽힌 국정을 검찰 운영스타일로 요리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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