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호 논설위원, 윤보선민주주의연구원 원장

김용호 논설위원
김용호 논설위원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 사태가 장기화함에 따라 언론이나 일반인들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 같다. 그런데 이번 사태가 어떻게 종결되느냐에 따라 향후 국제질서에 엄청난 변화가 예상되기 때문에 지속적인 관찰이 필요하다. 만약 러시아의 승리로 종결된다면 앞으로 힘을 앞세운 러시아의 횡포가 더욱 심해질 것이며, 이러한 영향이 한반도를 비롯한 동아시아에도 미칠 것으로 예상된다.

따라서 이번 사태의 진전 상황과 한반도를 비롯한 국제사회에 미칠 정치·경제적 영향을 다각도로 분석해서 대비해야 할 것이다. 이미 이번 사태가 전 세계의 에너지와 곡물 가격에 영향을 미쳐 우리나라도 휘발유값이 급등하는 등 물가고에 시달리고 있다. 특히 이번 사태가 우리나라에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살펴보고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한다.

그런데 우리나라 일부 언론과 전문가들이 이번 사태를 분석하면서 미국이나 러시아 전문가들이 주장하는 강대국의 논리를 추종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 예컨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나토의 동진에 대응하여 러시아가 취한 불가피한 조치라는 주장은 대표적인 강대국 논리라고 할 수 있다. 강대국인 러시아가 나토 동진을 이유로 약소국 우크라이나를 침공했다는 논리는 조선조 말 서구 제국주의를 방어하기 위해 일본이 조선을 병합했다는 논리와 유사하지 않은가?

이번 사태가 발생한 직후 주 유엔 케냐 대사인 키마니(Martin Kimani)의 발언이 정곡을 찌른다: “케냐를 비롯한 아프리카 대다수 국가는 평화를 위해 서구 식민지 기준으로 쪼개진 현재 영토를 받아들이고 있다. 만일 러시아와 같은 방식으로 민족, 인종, 종교적 동질성으로 국가를 수립하려 했다면 수십 년이 지난 지금까지 아프리카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쟁이 지속되었을 것이다. ...아프리카인들은 현재의 국경에 만족해서가 아니라 평화라는 더 위대한 것을 원해서...” 러시아처럼 행동하지 않는 것이라고 일갈하였다.

우리로서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무력침공을 정당화하려는 어떤 논리나 이유도 받아들일 수 없다. 평화가 우선이기 때문이다. 물론 국제사회는 본질적으로 무정부(anarchy) 상태로서 강대국의 힘의 논리가 강하게 작용한다는 것을 부정하려는 것이 아니다. 더구나 강대국을 배척하고 고립주의로 나가야 한다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나라가 강대국 정치를 잘 활용하는 외교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하고자 한다. 우리의 경우 한국전쟁이 미소 강대국 간의 충돌로 발생한 측면이 있었지만, 전쟁을 종결하면서 미국을 설득하여 한미 군사동맹을 체결함으로써 생존과 번영의 발판을 구축한 사례가 있다.

이렇게 강대국 논리가 아닌 한국의 시각에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이 우리에게 주는 교훈을 자세히 살펴보자. 첫째, 지정학적 리스크에 대비해야 한다. 우크라이나처럼 한반도가 강대국 힘겨루기의 전쟁터가 되지 않도록 자위력과 동맹을 강화해 나가야 할 것이다. 특히 동맹의 중요성과 동맹의 견고성(solidity)에 대한 자각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가 나토와 일찍 동맹을 맺었다면 러시아의 침공이 불가능했을 것이다. 아프가니스탄 사태에서 보는 것처럼 미국의 전략적 가치에 따라 동맹국을 버릴 수 있다는 교훈을 우리는 되새겨야 한다.

둘째, 이번 사태는 협정이나 각서보다 자강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우리들에게 깨우쳐 주고 있다. 1991년 소련 해체 당시 미국·러시아에 이어 세계 3위의 핵보유국이었던 우크라이나는 1994년 러시아·미국·영국·프랑스와 ‘부다페스트 각서’를 체결하면서 우크라이나가 비핵화하는 대신 안전보장과 경제 원조를 약속받았다. 그러나 2014년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러시아가 강제 합병했으나 서방 국가들은 우크라이나의 안보를 지켜주지 못했다. 그 결과 이번 사태의 단초를 열게 된 것이다. 우크라이나가 각서를 믿고 군사력 강화를 소홀히 한 건 치명적인 실수인바, 한국도 종전선언과 평화협정만으로는 한반도 평화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셋째, 국론 통일과 일관성있는 대외정책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의 친러, 친서방 지도자들이 번갈아 집권하면서 러시아와 유럽연합 사이에서 줄다리기를 하는 바람에 2014년 러시아의 크림반도 병합을 자초하였고, 이번 침공을 사전에 예방하지 못하였다. 1993년 우크라이나 독립 후 집권한 친러 정권의 무능과 부패로 인해 2004년 대선에서 친서방 후보(빅토르 유센코)가 당선되었다, 그러나 유센코가 파벌정치 등으로 인해 실정을 거듭하자 다시 친러 성향의 빅토르 야누코비치가 집권했으나 또다시 무능과 부패가 계속되자 대규모 반정부 시위가 발생하였다. 결국 2014년 야누코비치가 러시아로 망명한 후 권력 공백상태에서 러시아가 크림반도 합병을 선언하였다. 한편 2019년 우크라이나 의회가 EU와 나토 가입을 국가 목표로 헌법에 명시하자, 러시아의 위협이 증대하였다. 이처럼 우크라이나의 국론 분열이 결국 외세 개입을 막지 못했다.

넷째, 국토와 자유를 지키려는 우크라이나의 결사 항전은 우리들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젤렌스키 대통령을 중심으로 러시아의 침공을 저지하려는 우크라이나인들의 강한 의지에 전 세계가 감복하여 인도적·군사적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우크라이나는 탈레반의 반격에 도망가기 바빴던 아프가니스탄의 지도층과 다른 모습을 보여 주었다. 이처럼 국가 위기 상황에서는 지도층의 리더십이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는 교훈을 되새겨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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