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지난해 가을 학기 대학원 수업시간에 낯선 현상 하나를 발견했다. 요즘 20대 여성들은 인생이 잘 풀리지 않거나, 실연(失戀)의 아픔을 경험하거나, 부모・형제・자매 사이에 갈등이 솟구칠 때면 ‘선생님’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선생님은 초・중・고등학교 시절 만났던 선생님이 아니라, 정신과 전문의, 심리 상담가, 사회복지 상담가 등 전문가를 칭한다는 사실을 대화가 진행되는 중에 알게 되었다.

이웃 공동체가 건재하고 형제자매가 번화하며 친인척 간 왕래가 빈번했던 시절 같았으면, 각별하게 친했던 사촌언니에게 털어놓을 만한 이야기, 외할머니 가슴에 얼굴 파묻고 한바탕 울고 나면 시원해질 이야기, 존경하고 신뢰하는 집안 어른의 충고나 조언 한마디면 별 것 아닌 일이 되어 버릴 이야기들을, 이젠 시간당 비싼 상담료를 지불하면서 선생님 앞에서 털어놓고 있는 건 아닐까, 의구심이 들었다.

실제로 친구들 사이에서 누군가 자신의 연애담을 털어놓으려 하면 “구리다”(사전적 의미로는 ‘하는 짓이 더럽고 지저분하다’에 가까운 듯한데, 신세대들이 사용할 때는 보다 복잡미묘한 감정이 담겨 있는 듯하다)는 타박과 함께, “나는 너의 감정 쓰레기통이 아니야.”라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1980년대 중・후반 미국 유학 시절의 생경하고 생소했던 느낌이 떠오른다. 가난했던 유학생의 취미 중 하나는 서점을 순례하는 것이었다. 대학 내 북스토어와 대학가 주변의 새 책방 헌책방을 구경하는 재미가 제법 쏠쏠했다. 그때 나의 시선을 붙잡았던 건 대중 심리학(pop psychology) 열풍이었다. 서점마다 베스트셀러 코너에 가면 팝 사이콜로지(심리학의 고급 지식을 대중이 이해하기 쉽도록 풀어 쓴 책)로 분류되는 책들이 넘쳐났다. 그때 구입했던 책 ‘남자를 너무 사랑하는 여자, 그런 여자를 증오하는 남자’는 지금도 내 책꽂이에 꽂혀 있다.

미국인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자연스럽게 정신과 의사를 찾아다니던 경험이 튀어나왔고, 패밀리 카운슬러가 자신의 베스트 프렌드가 되었다는 고백도 종종 들을 수 있었다. 그럴 때면 동·서양의 문화적 차이를 실감하곤 했는데, 우리네 신세대는 미국인보다 전문가와 상담을 꺼리는 한국의 기성세대에게 더욱 거리감을 느낄 법도 하다.

당시 미국의 사회 분위기를 일컬어 사회학자이자 문화비평가인 필립 리에프(Philip Rieff)는 “치유사회의 승리”라 명명한 바 있다. 그에 따르면 치유사회가 도래했다 함은 단순히 과거와의 단절을 넘어, 관습적으로 가족과 친족, 그리고 이웃(마을) 공동체에 부여했던 도덕적 권위를 더 이상 인정하지 않겠다는 선언이라 해석했다.

결국 가족 친족 이웃 공동체가 쇠퇴하고 쇠락해가는 자리에 치유 전문가들이 자신의 지분을 챙기게 되었다 해도 과언이 아닌 상황이 온 셈이다. 하지만 전문가 집단이 제시하는 조언이나 제안은 그 자체로 뚜렷한 한계를 지니고 있음이 분명하다. 최근의 코로나 팬데믹 상황에서 익히 보았듯이 코로나의 원인을 규명하고 현황을 진단하고 해법을 제시하는 과정에서 전문가 의견은 10인10색 중구난방의 난맥상을 보이곤 했다.

치유 전문가 또한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20대의 방황이나 실연의 아픔에 깊이 공감해주는 상담사가 있는가 하면, 휘둘리지 말고 정신 차리라며 따끔하게 질책하고 충고하는 상담사도 있을 것이다. 그렇기에 전문가들 사이의 의견을 꼼꼼히 비교해보고 논리적 일관성 및 객관적 합리성에 따라 끊임없이 성찰과 통찰을 반복하는 것이 현대인의 숙명이라 주장한 이도 있다.

이제 관건은 전문가의 전문성이 갖는 강점과 과거 공동체가 갖추고 있던 미덕을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에 있는 것 같다. 치유 전문가들과 함께 손잡고, 헌신 양보 경청 배려 등 공동체적 가치를 일상 속에 접목할 수 있는 노하우를 찾아 나섬은 어떨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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