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쟁(和諍)의 교육방법을 찾아서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지난 연재에서 우리 ‘금쪽’들이 모든 사람들의 사랑을 받으면서 성공하도록 기를 방법을 논의해보자고 했지요?

그때 제가 염두에 두었던 건 누구를 만나든 먼저 사랑한다는 멘트를 날리고, 호감 사는 방법을 권유하려고 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따르고 돕는 사람이 많아야 성공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좀 더 생각해보니까 곤란에 빠질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데요. ‘사랑’이라는 용어는 호감이나 우리가 의미하는 뜻만 지닌 게 아니라, ‘애정과 욕망’과 그리고 ‘지배와 소유욕’까지 담고 있어서 충족되지 않으면 그냥 호감의 표시였구나 하고 웃지 않고 분노로 이어질 수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래서 제 컴퓨터 속의 ‘작은 도서관’을 들쑤시기 시작했지요. 낡은 책들이긴 하지만 아마 몇천 권은 들어 있을 겁니다. 그러다가 미국의 여성 경영 컨설팅 전문가 레일 라운즈(Leil Lowndes, 1950∼ )의 ‘사람을 얻는 기술’을 골랐지요. '포춘(Fortune)' 지가 선정하는 500대 기업의 중역들을 대상으로 소통 컨설팅을 강의하는 분이라서.

아무리 운과 실력이 좋은 사람이라도 혼자 성공할 수 없다는 머리말을 읽을 때는 아주 잘 골랐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히말라야 등반을 예로 들더군요. 그러니까 베이스캠프 요원들의 협력과 등산용 밧줄과 링을 던져준 동료, 경비를 지원해준 스폰서들 덕분에 성공했다는….

그리고 그런 사람들을 얻으려면 자신보다 그들을 더 돋보이게 하고, 당신이 고마워하고 배려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다시 만나고 싶게 그들의 장점을 부각시키고 약점을 가려주라는 조언을 읽을 때는 맞아, 맞아 소리가 절로 오더군요. 제 과거의 잘못이 떠올라서.

저도 참 제자들을 자식으로 삼고 제주에서 아주 자주 하트를 날리고 엄지척을 해줬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니 모두 떠나가더군요. 그런데 이 책을 읽다 보니까, 그를 위하기보다는 나를 위해 옆에 붙잡아 뒀기 때문이었다는 걸 깨달은 겁니다. 어려서 젖을 물려주던 엄마는 하늘나라 천사보다도 더 아름답지만, 저도 뭔가 안다고 생각하는데 자꾸 잔소리를 사랑이라며 하니까 그랬던 모양입니다.

그래서 목차를 타이핑하면서 스캔한 PDF파일을 맞장보기 방식으로 펼치고 넘기기 시작했지요. 그런데, 너무 상업적 책략의 냄새가 나는 제목들이 많은 겁니다. 인생의 파트너로 삼을까 고려하는 단계라면 얼굴빛만 봐도 본심을 짐작할 수 있는데, 위해주는 척하는 행동이 자기를 끌어들이기 위한 꾸밈이라는 걸 눈치 채는 순간 돌아설 것 같데요.

우리보다 ‘나’를 더 중시하는 유목민족의 후예가 경제인들의 컨설팅을 돕기 위한 책이라서 그렇다는 생각이 들데요. 그래서 동양의 고전들 가운데서 생각해봤지요. 여러 사람을 대하는 방식을 소개하는 책들을 생각했지요.

제일 먼저 군자는 다른 사람과 어울리되 자기 주관을 지키고[和而不同], 소인은 같이 행동하되 어울리지 못한다[同而不和]는 공자님(BC. 551~BC. 479)의 말씀이 떠오르더군요. ‘논어(論語)’의 자로(子路)편에 실린.

맞는 말씀이데요. 하지만 어쩐지 낡은 느낌이 드는 겁니다. 2700여 년 전 말씀이라서가 아닙니다. 자료를 찾다가 어떤 책에서던가 ‘화(和)’는 나와 다름을 존중하고 공존을 추구하는 것이라면, ‘동(同)’은 다른 것을 흡수해 내 것으로 만들려는 욕망이라면서, 700여 년 전 콜럼버스(1451~1506)가 마르코 폴로(Marco Polo, 1254~1324)의 ‘동방견문록’을 읽고 대서양을 건넌 뒤부터 서양인들이 지향(志向)하는 역사는 ‘동의 역사’이고, 종교도 언어도 자기들의 것을 강요하는 지배체제를 만들어냈다면서 서로를 존중하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기 위해서는 동양의 지혜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떠오르면서.

그러니까 이 말이 저를 가로막은 것은 화를 택하면 동을 택한 무리들한테 먹히거나 뒤질 수밖에 없고, 동을 택하면 끊임없는 도전과 불화 때문에 힘들 것 같고….

제가 이런 경험을 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말부터입니다. 그러니까 제 나름대로 몇 권의 문학 이론서를 펴낸 뒤부터입니다. 연거푸 세 권을 펴내고 나니까, 아 나도 대단하구나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너와 내가 다름을 인정하되 싸우지 않고 따져서 상대의 장점을 받아들이면서 앞서가는 방법이 없는가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그러다가 아직도 고쳐 쓰는 ‘문학연구방법’을 쓰면서 잠시 기웃댄 신라시대의 원효(元曉, 617~686)대사가 주장한 ‘화쟁(和諍)의 방법’을 검토하기 시작했지요. 너무 방대하고 심오한 이론이라서 바르게 이해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신라 불교를 정리하기 위해 특정한 종파의 경전이나 논리에 얽매이지 말고 화합과 조화를 지향하고, 옳고 그름을 따져 합치라는 겁니다.

원효대사로부터 시작되었다니까 불교의 교리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습니다. 당시 불교의 혼란스러운 교리를 정리하는 과정에서 탄생한 논리로, 불교를 대상으로 삼았을 뿐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의 변증법 역사철학보다 더 탁월한 철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효대사께서 이런 철학을 만들어낼 수 있었던 까닭은 당시의 2대 종교인 불경과 성경을 비교해보면 짐작할 수 있습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언제 어디에서 어떻게 태어났으며 어떤 말씀을 하셨는가 아주 섬세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나 불경은 가장 오래된 경집(經集, Sutta Nipata)의 경우에도 석가모니의 탄생과 출가(出家)와 수행 중에 마가다 국왕 빔비사라(BC. 543~BC. 494)를 만나고, 득도 직전에 마신(魔神)의 유혹을 어떻게 이겨냈는가에 대한 일화만 담고 있어 제자들마다 달리 해석해 열반하시고 100년 뒤부터 보수적인 ‘상좌부(上座部)’와 진보적인 ‘대중부(大衆部)’로 갈리고, 그 뒤 계속 갈리어 갈피를 잡기 어렵습니다. 인도의 불교 세력이 주변 국가들보다 약한 것은 ‘제행무상(諸行無常)’이라는 모호한 교리와 고승마다 각기 다른 주장을 해기 때문입니다.

이를 받아들여 우리에게 전달한 중국도 마찬가지입니다. 불교가 유입되기 이전에 이미 유교(儒敎)와 도교(道敎)가 자리를 잡고 있을 뿐만 아니라, 자신들을 세계의 중심부라고 생각하면서 종주(宗主)에 따라 달리 해석한 13종파로 나뉩니다. 그래서 원효대사가 종파끼리 싸우지 말고 다름을 인정하면서 따져 합치자는 논리를 만들어낸 겁니다.

하지만 제가 결론을 유보하고 2000년 가까운 세월 동안의 불교사를 소개한 것은 원효대사의 논리가 얼마나 실용적인가를 말씀드리기 위해서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 고려 시절 대각국사(大覺國師) 의천(義天, 1055~1101)과 지눌(知訥, 1158~1210) 스님이 이어받아 한국 불교의 기저 사상으로 삼고, 그 뒤를 이어받은 혜심(惠諶, 1178∼1234) 스님은 ‘기세계경(起世界經)’을 통해 불교와 유교와 도교의 일치설을 주장하시고, 임진왜란 때 승병을 이끌고 나라를 구한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 스님 역시 혜심 스님의 주장을 이어받아 삼교조화론(三敎調和論)을 주장하십니다.

우리 불교만 가다듬은 게 아니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화엄종(華嚴宗)을 체계화한 법장(法藏, 643~712)과 징관(澄觀, 738~839) 스님을 비롯해, 헤이안(平安) 시대에 일본 불교를 정립한 젠주(善珠, 723~797), 명혜(明慧), 의연(疑然) 스님께도 아주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극동 3국의 정신문화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친 사상입니다.

아니, 아니…, 이 세상의 모든 ‘선’이나 ‘진리’라는 것은 따로 있는 게 아니라 이해관계에 의하여 결정된다는 해체시대의 혼란을 극복할 가장 올바른 가치관이라는 생각이 들어 간지스 강 중류의 녹야원(鹿野苑)을 거쳐 불교의 새로운 논리를 마련하기 위해 원효스님께서 해골바가지에 고인 물을 뻘떡뻘떡 마시던 만주 벌판을 거쳐 분황사 인경 소리까지 끌어들여봤습니다.

자아, 그럼 이제 화쟁사상으로 우리 금쪽들을 어떻게 가르쳐야 할까를 말씀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방법은 아주 간단합니다. 우선 자기와 다른 의견들을 만나면 왜 그가 그런 주장을 했는가 생각해보라고 권하세요. 그리고 그와 자기 생각의 장·단점을 따지라고 하고. 확인하지 않고 속단하면 오해일 수 있으니까 왜 그러는가 물어보고, 상대가 금쪽에게 의견을 물으면 비판하지 말고 자기 생각만 말하고, 상대로부터 받아들일 수 있는 좋은 점이 있으면 고맙다며 받아들이라고 지도하세요. 싸우지 않고 두 사람의 생각을 합치면 어떤 사람이 될지 짐작되시지요?

자아, 그럼 물러나겠습니다. 두 주 뒤에는 시니어 여러분을 아주 젊어지게 하는 방법을 함께 생각해보자고 제안하고. 안녕, 늦더위에 조심하세요.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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