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코로나19 신규 확진자가 도로 늘기 시작하더니 감염된 뒤 다시 확진 판정을 받는 재감염 사례도 증가하고 있다. 나는 코로나가 한창 번질 때에도 나만은 끄떡없으리라는 근거없는 자신감에서 각종 모임에 빠지지 않고(빠지기는! 선동하고 앞장섰지.) 나가고, 여기저기 거리낌없이 흔들고 다녔다. 그러다가 결국 6월 24일 코로나 확진 판정을 받고 1주일 격리생활을 해야 했다. 내딴에는 ‘막차’를 탔다고 투덜거리면서도 한번 걸렸으니 코로나를 졸업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요즘 신규 확진자 중 재감염 추정사례가 2.88%라니 도저히 안심할 수 없다.

코로나 증세는 여러 가지라지만 내 경우는 좀 춥고 몸살기가 있어 밤에 거의 잠을 못 자는 걸로 시작됐다. 다음 날 확진 이후에는 다른 증세 없이 목구멍만 되게 아팠다. 침을 삼킬 때마다 거의 면돗날로 째는 것 같이 아파서 고통스러웠다.

뭐, 식욕이 없어지고 맛을 구별하지 못한다구? 나한테는 천만의 말씀 만만의 콩떡이다. 내가 확진되자 비상이 걸린 아내(나는 흔히 본처라고 부름)는 나를 절대 방 밖으로 못 나오게 철저히 차단, 유폐하고는 음식을 소반에 담아 무슨 상궁처럼 방 밖에 대령하고 “드시옵소서”(이렇게 말하지는 않았지만)라고 했고, 나는 임금처럼 그걸 받아서 드신 다음 “잘 먹었느니라”(이렇게 말하진 않았지만) 이러면서 방 밖으로 상을 물리곤 했다. 혹시 입맛을 잃을까봐 아내는 매끼 메밀국수 순대 술떡을 비롯해 다양한 음식을 들였는데, 나는 먹을 거 다 먹고 참외 복숭아 등 디저트까지 잘 소화했다(의사 선생님이 커피는 마시지 말라고 해서 삼갔고, 술도 1주일간 굶었음).

내가 무심코 방 밖으로 나가려 하면 “사라져, 사라져” 그러는 게 좀 우스웠지만(어디로 사라지라구?), 우리 부부는 내 격리기간 1주일을 슬기롭게 잘 넘겼다.

  내가 받은 건강관리세트의 여러 물품.
  내가 받은 건강관리세트의 여러 물품.

격리기간에 어디어디 내과 의사 소속이라는 여의사가 매일 아침 전화를 걸어 내 상태를 묻곤 했는데, 목소리가 좋아서 그녀와 통화하는 것도 재미있었다. 목구멍 말고는 상태가 멀쩡했던 나는 보건소(?)가 보내온 체온계 근육통 치료약 등 건강관리세트의 물품 설명문 글자가 지나치게 작거나 설명이 부족하다고 그녀와 관계도 없는 지적질을 하기도 했다. 나를 어르신이라고 부른 것 말고는 그녀와의 통화는 다 괜찮았다.

문제는 목구멍이었다. 격리기간은 목구멍에 대해 깊이 생각하는 기간이었다. 목구멍이란? ‘식도와 기도로 통하는 입 안의 깊숙한 곳’이다. 목구멍이 들어가는 속담이 많다. “목구멍에 풀칠한다.”, “목구멍이 포도청이다.”, “목구멍 때 벗긴다.”, “산 사람 목구멍에 거미줄 치랴?” 등등.

옛날에 목구멍은 국토 방위를 위해 중요한 땅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예컨대 성종실록에는 “평안도ㆍ황해도 두 도는 실로 우리나라의 울타리와 목구멍 같은 땅”이라고 기록돼 있다.

사람의 경우에는 왕명의 출납기관인 승정원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왕의 교지는 승지를 통해 해당 관청에 전달되고 상소문은 승지를 통해 왕에게 올라간다. 임금의 목구멍[喉]과 혀[舌]처럼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의미로 승정원을 후설(喉舌)이라고 했다. 정조가 내린 비답(批答)에 이런 말이 나온다. “임금을 머리로 보고, 재상은 팔다리에 비유하고, 장수는 배와 가슴에 비유하며, 간관(諫官)은 귀와 눈에 비유하고, 승지(承旨)는 목구멍과 혀에 비유한다.” 운운.

목구멍을 이야기하자면 '딥 스로트(deep throat:깊은 목구멍)'라는 포르노 영화(1972년 제작)가 생각난다. 미국 최초의 합법적 포르노라는데, 상영금지 조치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돈을 벌었다. ‘깊은 목구멍’은 워터게이트 사건에도 등장한다. 워싱턴 포스트의 두 젊은 기자 밥 우드워드와 칼 번스타인이 이 사건을 보도해 닉슨 대통령을 물러나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익명을 요구하며 제보를 해준 취재원 덕분이었다. 당시 그를 '깊은 목구멍'이라고 부른 이후 '깊은 목구멍'은 은밀한 제보자, 내부 고발인을 지칭하는 보통명사가 됐다.

우리나라에서 회자된 목구멍은 음식을 넘기는 신체기관이다. 2018년 9월 평양 남북 정상회담 때, 리선권 북한 조평통 위원장이 점심을 먹는 우리 기업 총수들에게 "냉면이 목구멍으로 넘어가느냐"고 폭언을 한 일이 있다. 사실이 아니라는 말도 있지만 ‘목구멍 발언’은 정말 무례하고 충격적인 일이었다.

 산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다. 
 산에서 라면을 먹고 있는 문재인 전 대통령(오른쪽). 인스타그램에 올린 사진이다. 

최근엔 서해에서 북한군에 피살된 해수부 공무원 이대준 씨의 형 이래진 씨가 목구멍 발언을 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라면 먹는 사진을 소셜미디어에 올린 것을 두고 “저희는 피눈물로 보내고 어린 조카들은 아빠의 죽음에 영문도 모르고 아파하고 울고 있다"며 "대통령을 지냈던 사람이 또다시 저희와 국민들을 조롱하시는데 참으로 개탄스럽다", ”라면이 목구멍으로 안 넘어가서 산속에서 라면을 먹은 것이냐“고 꼬집었다.

이런 걸로 보면 목구멍은 결국 생명의 상징이다. ‘목구멍’을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맨 먼저 음식점부터 튀어나온다. 또 옛 선비들의 글에는 “목구멍 아래 겨우 숨이 붙어 있다”거나 “나라 걱정으로 밥이 목구멍으로 넘어가지 않는다”는 말이 곧잘 나온다.

그런데 사실 이 말은 충청도 말로 목구녕이라고 해야 더 실감이 난다. 자나깨나 목구녕, 오나가나 목구녕, 앉으나 서나 목구녕. 평소에도 목구녕을 잘 보호할지어다. 코로나로 다시 고생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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