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화, 지난해 견조한 성적에도 주가 부진…시가총액 1조원대 하락

2달째 김승연 회장 자택 앞 원정시위…주주 가치에 민감해진 투자자

신동빈 “자본시장 원하는 성장 고민해달라”…시가총액 중요성 강조 

주가, 전략 및 비전에 대한 정당성과 직결…외부 자금 유치에도 유리

SK, CEO 평가에 주가 관리 반영…“시장 평가 관리 미션, 더욱 거세질 듯“

기업가치 제고에 대해 기업들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주가 관리에 대해 총수가 직접 미션을 내리는 사례도 등장했다. 시장에서의 평가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기업가치 제고에 대해 기업들이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특히 주가 관리에 대해 총수가 직접 미션을 내리는 사례도 등장했다. 시장에서의 평가가 기업의 지속가능성과 무관치 않다는 판단 때문이다. 사진.이미지투데이

[데일리임팩트 변윤재 기자] 김숭연 한화그룹 회장의 가회동 자택은 주말마다 소란스럽다. 소액투자자들이 원정 시위를 벌여서다.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한투연)와 한화그룹 소액주주모임에 소속된 일부 주주들은 김 회장의 자택 앞에서 ‘한화 3형제만 배부르냐’ ‘주주들도 같이 살자’ ‘김승연 회장은 우주로, 주주들은 지하로’ 등이 적인 플랜카드를 들고 강력히 항의했다. 지난 5월부터 벌써 2달 가까이 계속되고 있지만, 쉽게 접을 기색이 없다. 오히려 김 회장이 적극적으로 주주 가치 제고에 나서지 않는다면 실력행사에 나서겠다고 예고한 상태다. 

한화는 산하 계열사만 91곳을 거느리고 계열사들의 자산총액(공정자산)만 80조3880억원에 달하는 그룹이다. 재계 7위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몸집만 큰 게 아니다. 사업형 지주회사로 우주항공, 친환경, 건설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고도화하며 성장동력을 함께 만들고 있다. 덕분에 한화는 지난해 경영 불확실성 속에서도 견조한 성적을 냈다. 매출 52조8360억6900만원, 영업이익 2조9278억8800만원을 달성했다. 특히 영업이익은 역대 최고치였다. 

하지만 주가는 영 부진했다. 18일 기준 2만4000원 수준까지 떨어지면서 지난해 고점(3만6600원)과 비교해 34% 떨어졌다. 지난달 초 2조원에 턱걸이했던 시가총액 역시 1조8140억원으로 감소했다. 이에 유가증권시장 상장 기업 100위 밖으로 밀려났다. 지주회사 할인율을 고려하더라도 지나치게 낮다. SK(15조7567억원), LG(12조 650억원), 삼성물산(21조3986억원), 롯데지주(3조5564억원), GS(3조6702억원), CJ(2조2787억원) 등 여타 지주사들과 비교하면 한화의 부진이 두드러진다. 자사주 매입, 소각, 배당 확대 등을 통해 한화가 적극적으로 대응하지 않는다면 해외사업 반대운동, 총수 일가의 행태를 고발하는 서신 발송에 나서겠다고 으름장을 놓은 이유도 여기에 있다. 

물론 주주 가치 제고를 요구하는 움직임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존재한다. 자신의 선택으로 인한 결과에 대한 분노나 책임을 기업에 전가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투자자, 나아가 시장의 평가에 대해 기업들이 신경을 쓰는 분위기가 강해졌다.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은 지난 14일 롯데 하반기 VCM(옛 사장단회의)에서 시가총액의 상징성을 거론하며 기업가치 제고를 주문했다. 금리 인상으로 물가가 상승하는 가운데 경기침체가 나타나고 있어 단기 실적에 안주하면 그룹의 미래를 담보할 수 없다는 게 신 회장의 판단이다.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성장방식을 통해 ‘변화의 동력’을 만들 시기에 도달했다며 신 회장은 자본시장에 주목했다. 

신 회장은 시가총액이야말로 기업가치를 측정하는 가장 객관적인 지표라고 지적하면서 ‘제대로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자’고 독려했다. 그는 “자본시장에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는지, 원하는 성장과 수익을 만들기 위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무엇인지 고민해달라”고 강조했다. 

롯데그룹의 VCM은 전사 경영전략의 방향성을 재점검하고 중단기 목표를 조정하는 자리다. 실행력을 높이기 위한 구체적 방안들이 검토된다. 무게감이 남다른 회의에 신 회장이 시가총액을 거론한 것은 의미심장하다는 평가다. 단순히 주가를 부양하라는 주문 이상의 요구, 즉 100년 기업으로서 존재 이유를 시장에 증명하지 못한다면 진화할 수 없다는 절박함이 읽힌다. 

기업가치에 대해 긍정적으로 평가받기 녹록치 않은 환경이 됐다. 올해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상장사는 50곳 이상 줄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15일 기준 시가총액 1조원 이상 상장사는 총 232곳으로 집계됐다. 6개월 사이 56곳 감소한 셈이다. 이 가운데 유가증권시장 상장사는 217곳에서 191곳으로 줄어, 성장에 빨간불이 켜졌다. 공급망 불안에 고금리 고물가 고환율이 겹치면서 국내 기업들의 경영체제가 지닌 한계가 드러났다는 평가다. 

국내 기업 대다수는 오너 경영체제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오너의 강력한 리더십은 외형 성장의 초석이 됐다. 문제는 오너의 결정이 절대적인 데 반해, 실패로 입증된 결정에 책임을 지지 않는다는 점이다. 최고 경영자(CEO) 평가에서도 이는 비슷하게 적용되는 모습이다. 실적만 견조하게 유지하면, 기업이 시장에서 어떤 평가를 받든 꽤 관대하다. 생산, 인사, 경영 등과 관련해서도 수습을 잘하면 ‘선방’했다는 평가를 듣는다. 해당 이슈들은 모두 기업가치를 끌어내리는 역할을 한다. 

익명을 요구한 경영계 인사는 데일리임팩트에 “천문학적인 액수를 들여 인수합병을 한 뒤, M&A 효과가 수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을 때도 있다. 오너의 판단에 따라 주가가 영향을 받지만 어떤 견제를 받지 않는다”며 “마찬가지로 CEO가 분기마다 좋은 성적을 내면 주가 관리에 다소 소홀해도 자리를 지킬 수 있다”고 꼬집었다. 

오너 중심의 의사결정 체계는 대내외 변수가 많을수록 힘을 발휘하지 못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외부 자금을 유치하는 과정에서 오너의 경영적 판단은 시장의 요구와 다를 수 있다. 정당성을 인정받지 못하면 자금 조달이 그만큼 어려워질 수밖에 없다. 

재계에서는 SK식 모델이 확대될 것으로 보고 있다. 최태원 회장은 파이낸셜 스토리를 올해 더욱 구체화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CEO의 경영성과 평가항목에서 주가 관련 비중을 높여 ‘미래 가치를 입증할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미 이사회에 CEO 인사 권한을 넘긴 점을 고려하면 주가를 포함해 기업가치 제고에 CEO들이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하는 상황이다. 실제 이는 나름의 성과를 내고 있다. SK㈜, SK텔레콤은 코스피지수 하락세를 웃돌며 주가 방어에 성공했다. 두 회사 모두 신성장동력을 중심으로 사업을 재편하면서 체력이 올라간 결과다. ‘이익의 증대’라는 본연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한 것이다. 

박주근 리더스인덱스 대표는 데일리임팩트에 “주가 관리 등 기업가치 제고는 당연한 책무”라며 “다만, 경영권 승계 시 재원 부담 등을 고려해 국내 기업들이 신경쓰지 않았던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주가를 부양하기 위해서는 자연스럽게 기업의 차별적 경쟁력이 부각되게 마련이고, 장기적으로 지속가능성이 높아진다. 외국에서 주가를 관리하지 못하는 CEO가 아웃이 되는 이유”라면서 “국내에서도 기업가치 제고에 대한 미션이 중요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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