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경보 논설위원, (사)한국자원순환산업진흥협회 대표

민경보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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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7일 컬러 두루마리화장지(포르투갈 레노바(Renova))가 장안의 화제였다. 대통령부인 김건희 여사가 이 화장지를 책상 위에 놓고 찍은 사진이 SNS(사회관계망 서비스)에 올라오면서 논란이 시작되었다. 이것을 맛 칼럼니스트인가 하는 분이 SNS에서 “서민 코스프레(costume play) 하다가 딱 걸렸다”고 하면서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유명(?)상품으로 둔갑하고, 진영 간의 싸움으로 번져 사줘야 하는 제품으로 변질되어 수입업자만 배 불리는 모양새다.

이것도 마케팅의 한 방법인지는 알 수 없으나, 수입 컬러화장지를 친환경제품이라고 하는 것에는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지금 친환경이라는 가면을 쓰고 소비자를 우롱하는 일이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은 친환경제품에 대한 EU나 미국의 정책이 우리나라와는 관계 설정이 다르기 때문이다

EU나 미국 환경청(EPA)이 제시하고 있는 환경라벨 유형은 국제표준화기구(ISO)가 제시하는 세 가지 유형(TypeⅠ,Ⅱ,Ⅲ)으로 구분하고 있다. 그중에서 타입(Type)Ⅱ를 주로 채택하고 있는데, 제품에 이러한 유해물질이 들어가면 안 된다, ‘제품 생산을 이렇게 친환경적으로 해야 한다’ 등의 국제표준(ISO 14021)을 근거로 제3자기관의 인증이 아닌 기업 스스로 자사 제품이 친환경제품임을 선언하는 것이다.

즉 제품을 생산하는 쪽에서 “우리가 만든 제품은 친환경제품입니다”라고 선언하고 시장에 내놓게 되는데. 이것의 진위를 제품별 전문가를 둔 소비자단체 등이 버선목 뒤집듯 검증(시험분석검증과 국제표준검증)해 친환경제품인지 아닌지의 판단을 대내외에 공개하면 소비자들은 그 검증을 참고하고, 구매 판단에 활용하고 있다. 그래서 기업은 제품에 친환경제품이라는 용어를 사용하는 것에 매우 신중하게 된다. 객관적인 근거를 들어 친환경제품이 아니라고 공표해 버리면 그 제품은 시장에서 거의 퇴출될 각오를 해야 하며 기업 또한 신뢰에 큰 타격을 입게 되기 때문이다.

그와 달리 우리나라는 ‘녹색제품 구매 촉진에 관한 법률’에 바탕을 둔 개별 근거 법률에 따라 제3자 기관의 엄격한 잣대로 제품을 심사(신청제품에 한함)하는 TypeⅠ에 가깝다. 이렇게 인증된 제품들은 녹색제품[환경표시제품, GR제품(우수재활용제품), 탄소저감 제품]으로 인정되고 있다. 어떤 방법이 좋은지는 일장일단이 있겠지만 정부 관계부처가 인증한 녹색제품인 만큼 신뢰해도 좋을 것이다.

다만 안타까운 것은 그렇게 객관적인 검증을 해줘도 녹색구매를 망설이면서, 수입 제품은 그 회사가 홍보하는 그대로를 아무런 의심 없이 받아들여 친환경제품이라고 인정하고 심지어 휴지까지 구매한다는 데에 있다. 그런데 자세히 보니 컬러화장지는 미끼상품이고 다른 국내 휴지 종류와 거의 같은데 포장만 화려하다.

내 돈 내고 내가 사는데 무슨 말들이 많으냐 할 수 있겠지만, 할 말은 해야겠다. 휴지를 예뻐서 산다, 그것도 컬러휴지가 예뻐서 수입 제품을 산다는 것이 상식에 맞는가? 시대를 모르는 사람이라고 해도 좋다. 휴지의 목적이 무엇인가? 목적에 맞게 만들고 사용하는 것이 정상이 아닌가? 휴지를 장식품으로 모셔 둘 수는 없다. 어떻게 강렬한 원색(아무리 유해 물질이 없다고 증명되었더라도) 화장지가 친환경제품이겠는가! 외국인들이 우리 식당 문화에서 이해하지 못하는 것 중 하나로 두루마리 화장지가 식탁 위에 있는 것을 꼽았다. 아무리 예쁘다 해도 화장실에 빨간 화장지가 걸려 있다면 어떻겠는가! 섬뜩하지 않겠는가?

세계는 왜 녹색소비를 해야 한다고 하는지 우리나라 소비자도 훤히 알고 있다. 다만 휴지 하나 가지고 뭐 그러냐, 하는 것 같은데 그렇지 않다. 우리나라는 유엔이 인정한 선진국(UNCTAD 2021년 7월)이다. 선진국 국민은 소비재 하나를 사더라도 정말 사야만 하는 물건인지 몇 번이고 고민해야 하고, 결정한 후에는 꼼꼼히 따져서 친환경제품인지 확인한 후에 구매하는 것이 지속 가능한 녹색구매 방법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친환경제품인지 아닌지를 우리만의 판단으로 식별할 수 있는 여러 방법이 있다. 그중 한 가지는 기존 친환경제품과 비교해 보는 것이다. 100% 천연물질 등 100%라는 용어가 광고에 들어간 제품은 대부분 그린 워싱(Green washing)임을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수입 주류에서 포도주가 단연 1위라는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인데, 팬데믹 시대에도 꿋꿋하게 8.2%가 늘어(2020년 대비) 5400만 리터(L), 병(750ml)으로는 7300만 병이 수입(관세청 보도자료. 2021.8.30.)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렇게 마시고 남긴 포도주병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거의 재활용되지 못하고 폐기 처리(건설자재 일부로 재활용해 보려고 기술 개발을 하고 있지만 여의치 않다.)된다. 포도주병을 만들기 위해 자원(규사, 철, 코르크 등)과 에너지가 얼마나 많이 소비되었는가를 생각하고 걱정하는 국민이 선진 국민이다.

친환경제품에도 순서를 매길 수 있다. 종이 제품을 예로 든다면 재활용 종이(탈묵펄프)를 사용한 제품이 첫째다. 다른 제품에 비해 탄소를 저감한 제품이 둘째이고, 세계산림관리협의회의 FSC인증을 획득한 제품은 그다음이다. 구매 방법에서도 재활용된 펄프를 약 30% 이상 사용하고도 품질 면에서 신(新) 펄프만을 사용한 제품과 동등한 것이 시험으로 증명된 제품(GR제품)에다 탄소 저감하고, FSC마크를 받은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지성인이다. 선진국은 될 수 있어도 선진 국민이 되기란 쉽지 않다.

정부가 6월 10일 시행하기로 했던 ‘1회용 컵 보증금제도’가 다시 6개월 유예되었다. 그간 제도에 대한 이해충돌이 있었지만 이미 예정되어 있었던 일을 시행해보지도 않고, 대통령선거 때의 약속이라는 명분으로 뒤집었다. 환경은 환경 이외의 명분에 좌고우면하면 안 된다. 환경부는 국민 편에 서서 오로지 국민의 환경을 지켜내야 할 의무가 있다. 친환경의 정체성을 다시 새겨 보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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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ypeⅠ: 환경마크(표지). 제3자기관의 인증을 받아 부착하는 유형으로, 자원 및 에너지 절약, 환경오염 예방, 인체 유해성 저감 등에 대한 환경기준과 품질기준을 설정하여 적합한 제품에 인증을 부여하는 방식.

*TypeⅡ: 제품의 환경성을 자기주장.

*TypeⅢ: 환경성적표지. 제3자기관의 검증을 받아 부착하는 유형으로 제품의 전 과정에서 발생하는 환경영향 정보를 정량화된 제품 정보 형태로 소비자에게 제시하는 방식.

*UNCTAD: 유엔무역개발회의(United Nations Conference Trade and Develop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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