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식 논설위원, 전 KBS해설위원실장

이동식 논설위원
이동식 논설위원

마지막 손님이 가게를 막 나갔을 때, 슬슬 문 앞의 북해정(北海亭)이라는 옥호막을 거둘까 하고 있던 참에, 출입문이 힘없이 열리더니 두 명의 아이를 데리고 한 여자가 들어왔다.

"어서 오세요!"라고 맞이하는 주인에게, 그 여자는 머뭇머뭇 말했다.

"저....우동....1인분만 주문해도 괜찮을까요?"

뒤에서는 두 아이들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쳐다보고 있었다.

"네.. 네. 자, 이쪽으로."

난로 곁의 2번 테이블로 안내하면서 여주인은 주방 안을 향해, "우동, 1인분!" 하고 소리친다. 주문을 받은 주인은 잠깐 일행 세 사람에게 눈길을 보내면서, "예!" 하고 대답하고, 삶지 않은 1인분 우동 한 덩어리와 거기에 반 덩어리를 더 넣어 삶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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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의 명작동화 ‘우동 한 그릇’은 이렇게 시작한다. 어린 두 아들과 함께 찾아와 우동 1인분을 시키는 엄마, 눈에 띄게 많이 주면 자존심이 상할까봐 몰래 반을 더 주는 주인장, 해마다 이들 세 모자가 눈에 띄지 않게 더 주는 우동을 맛있게 먹고는 드디어 14년 후 이들이 잘 성장해 당당히 3인분을 시켜 먹고 나간다는 이야기. 구리 료헤이(栗良平)라는 일본의 한 동화작가가 1988년에 발표한 이 동화는, 이듬해인 1989년 2월 열린 일본 114회 국회의 중의원 예산위원회에서 한 의원이 당시의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총리에게 전문을 읽어 주어 순식간에 일본 전체에 큰 인기를 몰고 왔다. 이후 우리나라에도 알려져 지금까지 계속 판을 거듭하며 한국인들에게도 감동을 주고 있는 화제의 동화이다.

10년 뒤인 1998년 겨울 이른 오전, 초라한 옷차림의 한 40대 남성이 서울 삼각지에 있는 국숫집에 들어왔다. 가게 주인 배 할머니는 한눈에 그가 노숙자임을 알아차렸지만 말없이 당시 2000원하던 온국수 한 그릇을 말아줬다. 그가 허겁지겁 그릇을 비우자 다시 한 그릇을 더 줬다. 식사를 마친 남성은 “냉수 한 그릇 떠달라”고 했고, 배 할머니가 물을 떠 오기 전 달아났다. 그러자 배 할머니는 가게를 나와 앞만 보고 뛰는 그의 뒷모습에 대고 외쳤다. 그리고 또 말해주었다.

​"뛰지 말어. 넘어져 다칠라!"

“배고프면 담에 또 와!”

일본의 동화 ‘우동 한 그릇’은 실화가 아닌 동화이다. 10년 뒤 삼각지에서 일어난 국숫집 이야기는 실화다. 일본의 동화는 여러 사람들의 기억을 파고들어 오랫동안 많은 일본인뿐 아니라 주위 나라 사람들에게도 감동과 따뜻한 마음을 불러일으켰다. 한국 삼각지의 국숫집 실화는 아무에게도 기억되지 못했다.

국수를 먹고 달아난 남성은 남미로 이민을 가서 살고 있었는데 10년 뒤에 마침 이 국숫집이 맛집으로 방송에 소개되는 것을 해외에서 보고는 해당 프로그램 PD에게 편지를 보냈다. 당시 자신은 사기를 당해 재산을 잃고 아내도 떠나버린 노숙자가 되어 용산역 일대에서 여러 식당에 끼니를 구걸했지만 문전박대를 당한 끝에 세상을 원망하며 마지막으로 국숫집을 들어갔는데, 당시 주인 할머니로부터 얻어먹은 국수 한 그릇과 마지막에 해주신 말로 삶의 희망과 용기를 받아 다시 삶을 살게 되었다는 것. 이 일화는 신문에도 실렸지만 사람들은 곧 잊어버리고 있었는데 지난달 윤석열 대통령이 점심시간에 찾아와서 5000원짜리 국수로 말없이 식사를 하고 갔다는 소식으로 다시 세상에 조명되었다.

​사실 이 할머니도 스토리가 있었다. 잘 나가던 남편이 어린 4남매를 남겨놓고 갑자기 세상을 뜨자 연탄불로 자살을 하려 했다가 옆집 아줌마의 권유로 그 연탄불에 다시다 국물을 내어 국수장사를 시작한 것이란다. 그리고 장사가 잘되던 중에 어느 날 갑자기 아들을 심장마비로 잃고 실의에 빠져 가게 문을 닫으려다가 단골들의 간청으로 다시 시작해서는 여직껏 배고픈 사람들에게 따뜻한 국물을 주는 국숫집으로 사랑을 받고 있다고 한다.

일본의 우동집 이야기는 동화이고 창작한 이야기이지만 삼각지 국숫집 할머니 이야기는 실화이기에 더 감동이 크다. 일본의 우동 한 그릇 동화로 일본뿐 아니라 이웃나라 사람들도 일본인들의 따뜻하고 보이지 않는 배려에 감동하게 되었지만. 우리 삼각지 국수 한 그릇의 이야기엔 그 이상의 배려가 담겨 있다. 오히려 실화이기에 그보다 더 실제적인 배려가 아닐 수 없다. 자신의 삶이 힘들어도 이를 의지와 인정으로 극복하고 다른 이들의 삶을 도와주는 것으로까지 승화시킨 이런 이야기는 사실 우리 주위에 많이 있을 것이지만 우리들이 모르거나 그 마음을 다 받아주지 못했다는 각성을 하게 된다.

사실 지난해 초에 홍대 앞에서도 작은 사건이 있었다. 할머니와 동생을 데리고 어렵게 생활비를 벌며 사는 한 소년이 치킨이 먹고 싶다고 보채는 남동생을 치킨집 앞으로 데리고는 왔지만 돈이 없어 들어가지 못하고 서성거리던 것을 본 치킨점주가 이들에게 치킨을 공짜로 주고 그 뒤에도 몇 번이나 치킨을 대접했는데, 그 소식이 전해지자 이곳에 주문이 밀려들어 일시 문을 닫아야 했다는 것이 그 하나이다.

또 비슷한 시기에 하남의 편의점에서 어린 소년이 먹고 싶은 것이 많아 잔뜩 골랐는데 돈이 모자라 몇 개를 빼고 계산해도 역시 돈이 모자라 난감한 상횡이었다. 그때 뒤에서 기다리던 누나뻘 여학생이 모자라는 돈을 대신 내주며 추가로 다른 것도 더 가져가게 했다는 이야기도 그 하나이다.

또 지난해 2월 말에 전주의 한 마트에서는 손님이 소주 두 병과 번개탄을 사갔는데 이상하게 생각한 여주인이 경찰의 도움으로 이 손님을 찾아내어 자살하려는 마음을 돌리게 했다는 소식도 있다. 우리들이 사는 사회에서는 자주 이러한 기적의 미담들이 많이 일어나고 있었는데 우리들이 그것을 모르거나 무시해왔던 게 아닐까?

​삶이라는 것은 어쩌면 매일 매일이 기적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도 일본 동화 우동 한 그릇만큼 뜨거운 감동들이 만들어지고 있는데도 우리는 그것을 보지 않고 사회의 어둡고 힘든 면만 보는 경향이 있는 게 아니냐는 생각이 든다. 일본의 동화는, 그것이 일본을 흔드는 대 히트를 한 다음에, 부자가 된 동화 작가가 더욱 돈을 벌려고 전국에 사기를 치다가 발각되는 부끄러운 이야기로 이어졌지만, 한국의 국수 한 그릇의 주인공 할머니는 그 뒤에도 여전히 착한 가격에 많은 사람들의 허기를 채워주고 있는 것이 다르다. 아무래도 상상의 동화보다는 현실의 아픔을 어루만져주는 실화의 생명력이 더 힘이 있는 모양이다.

10여 년 전 알려지기는 했지만 그동안 잊고 있었던 국숫집 미담이 대통령의 점심 식사로 다시 소환되어 우리들의 빈가슴을 채워주고 있는 것이 반갑다. 바로 이런 이웃에 대한 배려가 우리들이 추구하는 사회의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정치라는 것도 이런 것을 위해 있어야 하는 것이리라.

우리 주위에는 어렵다고 삶을 포기하려 하거나 남의 것에 눈을 돌리거나 남의 도움에 전적으로 의지하려는 마음자세가 여전히 있다. 그것보다는 삶의 어려움을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극복하고 나아가 어려운 이웃을 돕는, 그렇게 해서 함께 따뜻한 사회로 가는 그런 마음이 이번 옛날 국수 미담의 부활을 계기로 보다 넓게 확산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아울러 언론에도 허구한 날 남 탓을 하고 남의 것을 탐내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빼앗는 소식보다는 이런 소식으로 지면과 방송이 채워지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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