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찬국 논설위원, 전 충남대 무역학과 교수

허찬국 논설위원
허찬국 논설위원

"우리 경제가 위기가 아니었던 때가 언제 있었어?" 이는 오래전 민간분야 경제전문가로 활동하던 시절 대기업 계열사 최고 경영자 출신 인사가 필자에게 사석에서 한 말이다. ‘격동기 기업을 경영했던 개인적 경험’ 혹은 ‘정치권·언론의 잦은 경제 위기 언급에 대한 비판적 시각’ 둘 중 어디에 방점이 찍힐지는 듣는 사람에 따라 다를 것이다. 당시 실제로 어려운 상황이었기에 속으로 걱정이 되면서 동시에 자신감이 좋아 보였다.

윤석열 정부가 출범한 지 10일이면 한 달이다. 지방선거에서 압승하도록 힘을 실어준 유권자들의 정부 정국 운영과 경제 활성화에 대한 높은 기대가 오히려 부담감이 되는 듯하다. 지난 10여 년간 새 정부의 자신감이 성과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를 흔히 보았기 때문에 이번에도 걱정된다. 작금의 세계 경제 상황이 우호적이지 않다.

역대 정부들에 비교해보면 지금은 이명박 정부 출범 때와 더 닮았다. 아래 그림은 한국은행의 국민계정 자료를 바탕으로 2007년 이후 연간 실질 GDP 성장률, 제조업 및 민간소비 증감률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제조업의 성과는 수출과 대동소이하다. 2008년 초 시작한 이명박 정부는 상당히 공격적인 ‘747’ 성장 드라이브와 함께 출발했다. 하지만 그해 하반기 미국의 주택금융시장 붕괴로 촉발된 글로벌 금융위기의 거센 역풍을 맞아 2009년 심각한 불경기를 겪었다. 그 이후 수출의 가파른 회복에 힘입어 가시적 회복세를 보였다.  

       연간 GDP, 제조업, 민간소비 증가율(2007~2021년, 실질 %) 

이에 비해 박근혜, 문재인 두 정부는 출범 초기와 전반기에 걸쳐 내수(소비)와 외수(수출)가 2~4% 느는 무난하고 완만한 호황기를 겪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부는 소위 ‘초이노믹스’로 3%대이던 성장률을 높이고자 했다. 주택경기를 경기부양의 수단으로 쓰며 부동산 분야가 활황세를 보였는데 동시에 가계부채가 빠르게 느는 부작용이 발생했다.

문재인 정부는 대체적으로 안정된 거시경제 상황을 인수하였지만 직전 정부의 주택경기 진작 정책에 따른 부동산 가격 불안에 매우 감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집값 상승의 수혜자들을 못살게 하는 것을 사회정의의 길이라 내세운 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만성 기관지 환자를 폐렴환자로 악화시킨 판도라의 상자와 같았다.

자영업 분야가 코로나 위기 기간 주된 피해자가 된 것을 감안하면 문 정부가 호기롭게 시작한 소득주도성장(소주성) 정책 실험은 임기 후반 악재로 작용했다. 소주성의 대표적 수단으로 활용되며 빠르게 올랐던 최저임금이 많은 소상공인들의 사정을 악화시켰고, 취약해진 자영업자들은 코로나위기에 따른 사회적 격리 조치의 충격에 기저질환자처럼 주저앉았다.

부동산과 최저임금 사례는 사회적 약자를 위한다는 정책을 ‘뜨거운 가슴’으로 구상하더라도 효과를 보기 위해서는 ‘냉철한 머리’가 필요하다는 격언을 어긴 경우이다. 윤석열 정부가 주요 직책에 경험이 많은 경제 관료들을 발탁한 것은 문 정부의 의욕만 앞섰던 학계나 운동권 인력들이 대표적 정책을 입안했던 것을 반면교사 삼은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일각에서 영혼이 없다는 지적에도 불구하고 안정을 지향하는 관료의 특성이 필요한 시점이어서 작금의 상황에 적절한 인선일 수 있다. 특히 당장 우리 경제의 큰 악재가 물가불안, 즉 인플레이션이다. 아울러 미중 간의 긴장 고조와 미국 주도의 새로운 국제공급망 구축 움직임은 향후 우리의 교역환경을 상당히 불확실하게 만들고 있다. 안정 지향적인 경제 정책이 필요한 시점이다.

하지만 유의점도 있다. 해외로부터의 조달을 늘리는 등 정부가 가능한 방안을 동원해야 할 것이다. 공급이 늘기 전에는 국제적 원유가·곡물가 급등이라는 물가불안 요인은 해소되기 어렵다. 5%가 넘는 물가상승이 지속될 거라는 걱정이 팽배해지면 물가와 임금이 보조를 맞추어 오르는 악순환이 시작된다. 따라서 인플레이션이 길어질 것이라는 예상이 뿌리를 내리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 장기적 물가안정에 매우 중요하고. 이를 위해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한두 번의 금리 인상을 넘어 정부가 중앙은행의 독립성을 존중하고, 필요한 경우 정책금리 인상과 더불어 재정정책의 절제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

다른 성격의 과제도 있다. 사회안전망 시스템의 지속 가능성을 제고하기 위해 연금개혁이 이번 대선 기간 부각되었다. 이 개혁의 주요 대상이 공무원 등 공공부문이다. 성장 잠재력 제고와 일자리 창출을 위한 전략은 폭넓은 분야의 과감한 변혁이 필요하다. 이런 일들은 코앞의 문제에 잘 대응하여 경제를 안정시키는 일과는 다른 종류의 비전과 접근이 필요할 것이다. 당장의 위협에 대처하는 일과는 별개로 추진되는 것이 바람직할 것이다.

만사에 운이 중요하다는 운칠기삼(運七技三)이라는 말이 있다. 역대 정부들의 임기 초와 말 경제의 모습을 비교해보면 적절한 듯하다. 하지만 운과 기의 비율이 7 대 3에 고정된 것은 아닐 것이다. 적절한 정책의 선택과 노력에 따라 바꿀 수 있을 것이다. 5년 후 좋은 평가를 받는 새 정부의 순항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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