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성낙 논설위원, 피부과 전문의, 가천대 명예총장, (사)현대미술관회 전 회장

이성낙 논설위원
이성낙 논설위원

6월 3일은 음력으로 5월 5일 단오 명절입니다. 단옷날이면 다양한 영상 자료 화면에서 ‘머리 감기’를 어렵지 않게 보게 됩니다. 달리 말하면, ‘단오절’ 하면 ‘두피 관리’가 생각나는 필자의 직업의식도 부인할 수 없겠지만, 조선 후기 풍속화가 혜원 신윤복(蕙園 申潤福, 1758~?)이 18세기 말에 남긴 풍속화 ‘단오풍정(端午風情)’도 한몫을 한다고 봅니다. 그림에는 여인네들이 맑은 계곡물에서 물놀이를 하며 머리를 감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 종이에 채색, 28.2X35.6cm, 간송미술문화재단 제공. 

그런데 단오절에 여인들이 '창포수(菖蒲水)'로 머리를 감았다는 풍습을 언급하며 창포수를 함유한 창포수 샴푸를 홍보하는 것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여기서 언급하는 창포수를 임상학적 차원에서 살펴보면, 얼마나 과학적 근거가 있을지 필자로서는 큰 의문을 갖게 됩니다. 모발 관리와 관련해 기대하는 긍정적 효능·효과보다는 창포 성분을 함유한 매개체인 샴푸 성분이 훨씬 더 유해하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분명한 것은 제작사들이 임상적 효능이 있다고 주장하는 원료가 창포든 인삼이든 또는 홍삼이든 모발 관리에 좋다는 그 어떤 원료 성분보다 샴푸가 지닌 태생적 유해성의 한계를 넘어서지는 못한다는 점입니다.

돌이켜보면 샴푸가 두발 관리 제품 시장에 혜성같이 나타난 것은 1960년대 초의 일입니다. 당시 필자가 처음 샤워를 하면서 머리 감기 목적으로 ‘샴푸잉’을 해보니 그 풍부한 거품 생성과 더불어 가벼운 향기가 실로 매혹적이었습니다.

거기에 더해 선친의 대머리가 필자에게도 유전될 거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던 차에 샴푸의 등장은 새 희망의 씨앗이 아닐 수 없었습니다. 특히 “두발 관리에 새로운 차원의 길을 열다”라는 샴푸 제조사의 홍보 문구는 필자에게도 큰 희망 메시지였습니다. 가격도 부담스럽지 않아 너도나도 샴푸에 열광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당시 독일에서는 라인(Rhein) 강변에 하얀 거품이 떼 지어 둥둥 떠다니기 시작했습니다. 이를 목격한 독일 사회는 큰 충격에 빠졌고, ‘라인강 수질 관리 및 연구소’는 각 가정에서 유행처럼 쓰기 시작한 세탁용 세제, 식기용 세제가 원인이라는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모든 연령층에서 사용하는 모발 세척제인 샴푸도 라인강 거품의 한 원인이라고 했습니다.

위 연구소는 또한 사회 계몽 차원에서 그 거품이 지닌 환경 유해성에 대한 설명도 내놓았습니다. 때맞춰 독일피부과학회에서는 ’모발 관리와 샴푸의 유해 관계성‘에 대한 보고서를 발표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세탁용 세제, 식기용 세제, 모발 관리용 세제가 함량의 차이는 있어도 큰 맥락에서 보면 그 주성분이 개념적으로 계면활성제(界面活性劑)인 SLS(Sodium Laurel Sulfate)’의 범주 안에 있다는 사실입니다.

SLS는 1) 거품을 만들고, 2) 방부(防腐) 효과가 있고, 3) 기름을 제거하는 효과까지 있어 그야말로 일석삼조(一石三鳥)의 다기능 성분 물질입니다. 거기에다 제품 생산 단가 역시 비교적 낮다고 합니다. 제조 회사가 포기하기 힘든 아이템인 것입니다.

여하튼 샴푸의 기능 및 효과와 그것이 두발 관리 및 인체에 미치는 유해 성분의 관계를 살펴보면 긍정적인 생각을 가질 수 없다는 게 필자의 판단입니다.

필자는 샴푸의 유해 성분이 결코 무시할 수준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고 난 뒤 그렇게 애용하던 샴푸와의 인연을 과감히 끊었습니다. 필자의 큰 스승 테오 나세만(Theo Nasemann, 1923~2020) 교수께서 “자연계에 해로운 것을 두피에 굳이 바른다고 좋을 리 없다”고 피력하신 말씀에 영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샴푸로 두발을 감지 않은 지 어언 반세기가 훌쩍 넘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상대적이긴 하지만 필자의 모발 상태는 비교적 ‘건재’하다고 생각합니다,

“샴푸 없이 어떻게 머리를 감을 수 있느냐?”는 항의성 질문이 들려올 법합니다. 우리네 머리카락에 스며 있는 피지(皮脂, Sebum)는 수용성(水溶性)이라 물에 녹아버리는 특성이 있습니다. 따라서 피지는 따듯한 물에 용해되고, 우리의 머리 감기는 그것으로도 충분합니다. 그래도 미심쩍다면 고체성 비누를 약간 혼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입니다.

샴푸와 관련해 필자의 몇 가지 생각을 정리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두발 관리에서 비듬 및 머리 기름때라 일컫는 피지를 제거하는 데 ‘샴푸의 우월성’을 부정할 수는 없습니다. 즉, 세발(洗髮)이라는 측면에서 샴푸의 기능은 뛰어납니다.

2)두피에는 모공(毛孔)이라는 구멍이 있어 모발이 피부 밖으로 솟아 나올 수 있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머리카락과 모공 벽 사이로, 머리카락의 한 부분인 피지샘[皮脂腺]에서 생성된 피부 기름인 피지가 피부 밖으로 스며 나오게 됩니다.

3)피지가 스며 나올 수 있는 ‘틈새 공간’이라면, 그곳으로 무엇인가가 스며들 수도 있습니다.

4)인간의 두피에는 그러한 모공이 대략 6만~8만 개 있다고 합니다. 한국인의 경우에는 평균 6만 개의 모공이 있습니다.

5)유해한 샴푸 성분이 그 많은 모공을 통해 ‘진입’할 수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합니다.

상기와 같은 팩트를 염두에 둘 때, 근래 한 언론매체의 기사는 필자를 긴장시키기에 충분했습니다(2021.9.2.). “소중한 머리카락 지키고 싶다면 ‘2⦁2⦁2 샴푸법’ 실천하세요”라는 내용의 그 기사는 하루에 2번, 2분간 거품, 2분간 헹구기를 지키라고 조언합니다.

깜짝 놀란 필자는 하루에 2번, 2분간 거품, 2분간 헹구기를 하면 어떻게 되는지 산술적으로 계산해보았습니다. 매일 두 차례 2분간 ‘샴푸잉’을 하면 하루에 4분 동안 샴푸 거품이 두발에 머문다는 얘깁니다. 이를 한 달로 계산하면 4분x30=120분, 다시 1년으로 계산하면 120분x12=1440분, 즉 24시간이 나옵니다. 요컨대 한 해에 무려 24시간 동안 샴푸가 우리네 두발 및 두피에 머무른다는 뜻입니다. 여기에 매일 두 차례 2분씩 두발을 헹구면 역시 1년에 24시간 동안 두피 및 두발이 물리적으로 ‘헹구기’에 시달린다고 할 수 있습니다. ‘물리적 탈모(Physical Alopecia)’라는 의학 용어가 떠오르는 게 당연합니다,

이런 식으로 약 50년간 ‘2·2·2 샴푸법’을 시행한다고 가정하면 임상적 측면에서 샴푸의 유해 성분이 두피의 그 많은 모공을 통해 체내에 흡입될 가능성을 결코 간과할 수 없습니다.

필자가 피부과학에 입문할 당시 큰 스승께서는 “거지[乞人]는 옴[疥癬, Scabies] 같은 기생충성 피부 질환은 있어도, 통상적으로 말하는 피부 질환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를 들면, 아토피(Atopy)가 전형적인 과잉 피부 관리 때문에 유발되는 대표적인 병이라고 하셨습니다. 여운을 남기는 간단 명쾌한 지혜의 소산이라고 생각했기에 필자는 결코 짧지 않은 기간 피부과 전문의로 임상에 임하면서, 병원을 찾아온 환자에게 ‘피부 관리 지침’으로 큰 스승의 말씀을 가장 많이 언급했습니다.

지난번 치른 대선 때 여러 후보가 경쟁적으로 두피 관리 비용을 국가가 부담하겠다는 주장을 펼친 것을 기억합니다. 모발 관리가 정치 이슈로 떠올랐다는 사실에 직업적 관심을 갖고 있던 차에 이번 단오절을 맞이해 혜원 신윤복의 ‘단오풍정’이 생각났습니다. 그리고 하루빨리 ‘샴푸 없이 세발’하는 세상이 오길 기원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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