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7세 봉사왕 이만구 씨의 '돕는 삶' 20여 년

퇴역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만구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퇴역 이후 2000년부터 지금까지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만구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코로나가 세상 살아가는 방법을 바꿔놓았다. 나갈 수 없으니 인터넷에 의존하는 생활이 이어졌다. 인터넷 채팅창을 통해 사람을 만나고, 물건도 사고, 은행 업무를 보고 말이다. 이렇듯 인터넷 혹은 비대면으로 할 수 있는 일이 많지만, 그렇지 못한 부분은 더 많다. 34년의 군 복무를 마치고 퇴역한 이후 오로지 봉사만으로 살아온 이만구(77) 씨에게 비대면의 삶은 힘들었다. 서울시 강서구 등촌 5단지 경로당 회장이기도 한 이 씨는 코로나가 한풀 꺾인 요즘 봉사하는 즐거움을 조금씩 되찾아가고 있다. 

"찾아가는 봉사가 그리웠습니다"
“5월은 가정의달이잖아요.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아파트 단지 안에 있는 공원에서 아이들에게 종이접기를 나눠줬어요. 500여 개 정도를 접어서 선물 받으러 나온 어린이에게 나눠줬습니다. 그리고 우리 동네에 99세 어르신이 계십니다. 어버이날을 맞아 생신 잔치를 해드리고 싶어서 경로당에 계신 분들과 힘을 모았습니다. 초청장도 만들고, 잔치 준비를 했는데 구청에서 못 하게 하더라고요. 코로나 때문에 우리들 생각해서 모이지 않았으면 좋겠다고요. 잔치는 사람들이 모이고 북적거려야 하는데 할 수 없었습니다. 어르신이 떡을 좋아하셔서 떡 선물을 보내드리는 것으로 대신했습니다. 내년이면 100세이니 그때 꼭 생신 잔치를 해드리고 싶습니다.” 

코로나가 감소세라지만 경계를 늦출 수 없는 상황. 예전 같았으면 경로당 안에서 밥도 해먹고 함께 TV도 보고, 찾아오는 분들과 다양한 활동을 했을 텐데 넓은 경로당 안이 텅 비었다. 그 안을 채우는 것은 늑대, 새우, 참새, 박쥐 등 이 씨가 접어놓은 다양한 종이접기였다. 
“한쪽 벽면에 보이는 게 제가 접은 것입니다. 코로나가 오기 전에는 색종이로 종이도 접고, 치매에 도움이 되는 단어 외우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접어서 요양원 등에 보냅니다. 재능봉사이죠. 4월 25일부터 오후 1시부터 6시까지 다시 경로당 문을 짧게나마 열기 시작했어요. 이제 조금씩 또 어르신들과 함께 종이접기 등을 하면서 지닐 수 있을 겁니다.” 

아파트의 한 단지를 대표하는 경로당 회장이라 그런지 단지 내 사는 시니어의 상황을 파악해 해결해내기도 한다.
“어떤 분 댁에 갔더니 집 안에 찬바람이 들어 사과상자로 막아놓고 살더라고요. 철물점에 가서 바람막이에 필요한 장비를 사가지고 가 고쳐드렸습니다. 수리하지 않았으면 한겨울에 정말 추웠을 텐데 다행이었습니다. 동네 어르신 대소사나 어려운 점은 최대한 살피려고 합니다.”

이만구 씨가 접은 종이접기 작품.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만들기도 하고 접은 종이접기는 요양원에도 보낸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만구 씨가 접은 종이접기 작품. 경로당에서 어르신들과 함께 만들기도 하고 접은 종이접기는 요양원에도 보낸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2000년 6월 시작된 봉사하는 삶
이만구 씨는 나라를 지키는 대한민국 국군이었다. 국군체육부대에서 원사로 있으면서 국군 체육특기자와 함께 생활했다. 축구심판으로도 16년 동안 활동하는 등 꾸준한 모습으로 국가에 헌신한 공을 인정받아 퇴역과 함께 국민훈장 광복장을 받아 국가유공자가 됐다. 
“군에서 나오니 일하러 오라는 곳도 많았는데 고사했습니다. 34년 동안 국가를 위해서 봉사했고 훈장도 받았잖아요. 여생을 봉사로 사회에 환원하고 싶었어요. 그렇게 뜻을 세우고 하루도 쉬지 않고 봉사해왔습니다.”
연금이 있어 돈 걱정은 하지 않았다. 2000년 5월 말일자로 퇴역 한 이 씨는 6월이 되자마자 제2의 인생을 위해 봉사할 곳을 찾아다녔다. 
“지금까지 4만 시간 가까이 봉사했습니다. 2002년 한일월드컵, 부산아시안게임, 2011년 대구세계육상선수권, 2015년 광주유니버시아드,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2019년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등 그동안 국내에서 열린 34개 국제대회에서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대부분이 자원봉사를 하겠다고 조직위원회에 직접 원서를 내지만 광주세계수영선수권 대회 때는 직접 연락이 왔었다. 광주로 가야 하는구나 하고 짐정리 했는데 봉사 장소는 광주가 아닌 김포공항이었다. 
“김포공항 국제선을 통해 입국하는 선수들의 요구에 맞춰 KTX 이용을 원하면 광명역, 고속버스는 강남고속버스터미널, 비행기를 원하면 국내선 타는 곳으로 안내하는 역할이었습니다. 집에서 출퇴근하면서 봉사해서 좋았습니다. 국제대회 봉사 가면 가족이랑 떨어져 있을 때가 많잖아요.”
국제대회 봉사는 보람으로 헌신하는 일이다 보니 사비 들여 봉사를 갔던 곳도 꽤 된다고 이 씨는 말했다.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같은 팀이었던 축구 정대세(왼쪽), 기계체조 뜀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와 기념 촬영. 사진 이만구 제공.
2018 평창 동계올림픽 성화 봉송 당시 같은 팀이었던 축구 정대세(왼쪽), 기계체조 뜀틀 올림픽 금메달리스트 양학선 선수와 기념 촬영. 사진 이만구 제공.

“자기 돈 써가면서 봉사하는 사람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무보수입니다. 그래도 2018 평창올림픽 때는 재워주고 먹여주더군요. 올림픽 때는 연세대 원주캠퍼스 기숙사를 이용했고, 패럴림픽 때는 속초의 한 리조트를 숙소로 이용했습니다. 그때 사흘에 한 번씩은 의무적으로 쉬었어요. 쉬는 날에는 원주자원봉사센터에 전화해서 종이접기 자원봉사를 했습니다. 속초에 있을 때는 어르신들 점심 식사를 나눠줬고요. 하루도 쉬지 않고 저만의 방식으로 살았습니다.”
이뿐만이 아니다. 허리디스크로 걷는 것이 힘들어지기 전까지 15년 동안 555일을 시각장애인과 함께 산에도 다녔다.
“2001년 1월 21일에 첫 산행을 해서 2015년 12월 말까지 계속했습니다. 지금은 아쉽게도 못 하고 있지만 제 생각에 가장 보람 있었던 봉사였습니다.”

코로나 이전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해왔던 한강 밤섬 철새 조망대.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이 씨는 이곳으로 돌아가 다시 활동할 계획이다. 사진 이만구 제공.
코로나 이전까지 계속 봉사활동을 해왔던 한강 밤섬 철새 조망대.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이 씨는 이곳으로 돌아가 다시 활동할 계획이다. 사진 이만구 제공.

"쉬지 않는 봉사는 다 가족들 덕분"
군인은 국가안보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이들이다. 30년 넘게 나라를 위해 일했으면 자신을 위한 삶을 살아도 될 텐데. 이 씨 스스로 그런 삶을 허용하지 않는 듯했다.
“제 일이 봉사입니다. 나는 봉사하러 나가면 마음이 편합니다. 내가 베풀 수 있다는 것이 좋습니다. 사실 봉사를 나처럼 하면 안 됩니다. 어디 가서 뭐 한다고 하면 쉬지 않고 하니까요. 여하튼 집에 있는 날이 없었습니다. 집사람이 내조를 해줘서 정말 많이 고마워요. 제가 이렇게 오래 봉사할 수 있었던 이유가 가족 덕분입니다. 3분의 2가 가족의 노력에서 나온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지금도 매일 어떻게 봉사하는 마음을 나눌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는 이 씨. 이제 코로나가 더 많이 풀리면 그 이전에 해왔던 자원봉사도 다시 하고 싶다고 밝혔다. 
“강서구에 있는 봄날서울요양원과 봄날강서요양원에서 봉사했습니다. 코로나 때문에 대면할 수 없으니 요즘은 집에서 접은 종이접기를 담당자에게 드립니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3월부터 12월까지는 남산 유아숲에서 체험교실 안전요원 봉사를 하고요. 12월부터 다음 해 2월까지는 한강 밤섬철새조망대에서 봉사할 예정입니다.”
이만구 씨는 눈에 보이는 대로, 생각나는 대로 실천에 옮기는 행동파 봉사자이다. 봉사가 필요한 곳을 찾고, 힘들다는 생각보다 봉사로 얻어내는 도전정신에 히루를 건강하고 젊게 살아가고 있다. 열심히 봉사를 하다보니 2017년에는 국무총리로부터 표창장도 받았다. 지금까지 계속해서 열심히 이웃을 살피며 살아왔으니 올해는 대통령상을 기대할 수 있을지도 모를 일이다. 이만구 씨에게 있어 봉사란? 나라를 챙기듯 이웃을 챙기고 자신의 건강과 젊음을 지키는 묘약이 아닐까 싶다.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봉사했듯 이웃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만구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젊은 시절 국가를 위해 봉사했듯 이웃에게 헌신하고 봉사하는 삶을 사는 이만구 씨.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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