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우현 논설위원, 한불협회 회장, 전 주 프랑스 공사 겸 문화원장, 전 숙명여대 객원교수

손우현 논설위원
손우현 논설위원

내년이면 70주년을 맞이하는 한미동맹이 시혜적인 관계에서 호혜적인 관계로 진화했다. 지난 20~22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방한과 21일 한미정상회담 후 발표된 공동성명(8705자, 영문 2842단어)을 보고 느끼는 소감이다. 정전협정이 체결된 1953년 군사동맹으로 출발한 한미동맹은 이제 자유민주주의 가치를 공유하는 두 혈맹의 군사안보, 경제기술안보, 인도태평양지역 및 글로벌 협력을 포괄하는 전략동맹으로 발전했다.

공동성명은 한미 양국을 “민주주의, 경제, 기술 분야에서 글로벌 리더”(“global leaders in democracy, economy, and technology”)라고 표현했다. 2022년 대한민국의 위상을 웅변해 주는 최고 헌사다.

한국의 새 정부 출범 불과 열흘 만에 한미정상회담이 개최된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다. 한미동맹 ‘재건’을 약속한 검사 출신 정치 신인 윤석열 대통령을 만나기 위해 그 역시 법조인 출신으로 상원 외교위원장과 부통령을 지낸 관록의 노정치인 바이든 대통령은 쿼드 정상회의 참석차 방일하기에 앞서 한국을 찾았다. 빅터 차 미 전략국제문제연구소(CSIS) 한국석좌는 조선일보 기고에서 “미국 외교의 아시아로의 중심 이동에 한국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며 “동북아뿐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확대된 역할을 맡겠다고 윤석열 정부가 방향 전환을 내세운 것이 한미정상회담의 성공에 기여했다”고 논평했다.

삼성전자 평택 캠퍼스 방문으로 시작해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의 면담으로 마무리된 이번 방한 일정은 한미동맹에 힘입어 놀랍게 성장한 한국 경제의 위상과 그로 인해 가능해진 호혜적인 양국 관계를 실감케 해주었다. 삼성전자는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시에 170억 달러(21조여 원)를 투자하여 파운드리 공장을 건설할 예정이다. 한편 현대차는 조지아주에 8000명을 고용하는 전기차 공장을 짓기 위해 105억 달러(13조여 원)를 투자할 계획이다. 미국 주도 세계 공급망의 재편에 기여하는 외에도 두 기업의 대미 투자 계획이 가져올 일자리 창출은 11월 중간선거를 앞둔 바이든 대통령에게 중요한 관심사가 아닐 수 없다.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는 핵심 기지인 오산 미 공군기지의 한국항공우주작전본부(KAOC)를 윤 대통령과 함께 방문해 북한에 강한 메시지를 보내는 한편 미국의 철통같은 대한 방위공약을 재확인했다. 또한 두 대통령은 정상 차원에서는 처음으로 “핵, 재래식, 미사일 방어”를 포함한 모든 역량을 총동원하여 미국의 확장 억제를 제공키로 하였으며 필요시 한미 간 조율을 통해 미국의 전략자산을 적시에 전개하고 한미 연합훈련 확대 논의를 개시하기로 했다.

한편 바이든 대통령은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에게 할 말이 있냐는 CNN 기자의 질문에는 “헬로(안녕), 끝”이라고 답했다. 북한 지도자와의 직접 대화를 배제하지 않고 있다는 뜻이라고 빅터 차 교수는 풀이했다. 그러나 바이든 대통령은 김 위원장과의 면담 가능성에 대해서는 "내가 북한 지도자와 만날지는 그가 진실하고 진지한지에 달렸다"고 말했다.

뉴욕타임스는 바이든 대통령이 ‘러브레터’(트럼프가 김정은에게 받았다고 자랑한)를 거부하고 전통적인 ‘당근과 채찍’(‘carrots and sticks’) 전략으로 회귀했다고 논평했다.

한편 한국은 지난 5년간 중국의 눈치를 보며 미·중 전략 경쟁에서 모호한 입장을 취해 오던 것에서 벗어나 미국 주도로 출범하는 경제·공급망·에너지 등의 협력체인 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IPEF)에 창립 멤버로 참여하기로 했다. 윤 정부가 표방하는 ‘행동하는 한미동맹(Alliance in Action)’의 구체적 사례다. IPEF의 참가국은 미국과 한국, 일본을 비롯해 호주, 인도, 브루나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뉴질랜드, 필리핀, 싱가포르, 태국, 베트남 등 13개국이다. 이 IPEF 참여국의 국내총생산(GDP)을 합치면 전 세계의 40%를 차지한다. 미국의 동맹인 한국이 이 다자 경제협력체에 창립 회원으로 참여하는 것은 윤 대통령의 말대로 ‘당연한’ 것이다. 그는 “룰을 만드는 과정에서 우리가 빠진다면 국익에 피해가 갈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중국의 반발을 우려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는 주권침해이자 어불성설이다. IPEF에 참여하는 나라들은 미국의 동맹국들만이 아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비동맹 운동 가입 국가들도 있다. 박진 외교부 장관은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중국을 빼놓고 인도태평양 지역의 경제를 논한다는 것은 현실적이지 않다. 중국이 역내 국가들의 새로운 국제규범과 질서에 참여해서 책임있는 국가로 같이 갈 수 있도록 한국이 선도적인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글로벌 중추국가’를 지향하는 새 정부의 외교 수장으로서 그에 걸맞은 자신감을 보여준 것이라고 하겠다.

지금 유럽에서는 지난 2세기 동안 중립을 견지해온 스웨덴과 2차대전 이후 중립을 고수해온 핀란드가 미국 주도 군사동맹인 나토 가입을 신청했다. 특히 핀란드는 1300km에 걸쳐 러시아와 국경을 맞대고 있다.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보면서 이들 두 나라는 어느 선택이 자국의 안전과 독립에 도움이 될지를 깨달은 것이다. 이것이 역사의 조류다.

이번 정상회담으로 격상된 한미동맹이 그 효과를 극대화하기 위해서는 또 한 가지 과제가 있다. 지난 5년간 악화일로를 치달은 한일관계의 정상화다. 한일관계 개선 의지를 천명한 윤 대통령은 취임 축하 사절로 온 일본 하야시 요시마사(林芳正) 외무장관을 중국의 왕치산(王岐山) 국가부주석보다 먼저 만났다. 이제는 일본도 한국 정부에게 ‘해법’을 미룰 것이 아니라 좀 더 대승적인 자세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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