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석구 언론인,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이석구 바른사회운동연합 자문위원

    문화재가 된 삼성전자의 64K D램
삼성전자는 1983년 12월 세계에서 세 번째로 64K D램 반도체를 개발, 상용화했다. 이 반도체는 2013년 8월 27일 국가등록 문화재 제563호로 지정됐다. 문화재청은 “첨단 기술이라는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오르는 데 크게 기여하고, 집적회로의 실용화로 산업사회에서 정보화 사회로의 전이를 가속화시켰다”는 점을 인정, 문화재로 등록했다.

삼성전자는 1974년 12월 파산 직전의 미국 합작기업 한국전자통신을 인수, 반도체 산업에 첫발을 내딛는다. 고 이건희 회장이 사재를 털어 인수했다는 바로 그 기업이다. 그러나 자체 기술이 없는 삼성의 반도체 사업은 지리멸렬, 삼성의 미운 오리새끼가 됐다. 자본금도 다 까먹었다. 고 이병철 회장이 반도체 사업 관련자에게 “너희들 모두 사기꾼 아니냐”고 했을 정도다. 반도체사업은 돈 먹는 하마였다.

요즘 같으면 삼성은 반도체 사업을 접어야 했다. 자본금 잠식은 물론, 전망도 불투명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삼성반도체는 삼성 재벌의 일원이었기에 살아남을 수 있었다. 삼성물산, 제일모직, 제일제당, 동양방송 등 수익성 좋은 그룹사들이 배당 대신 삼성반도체에 자금을 계속 지원했기 때문이다. 이는 해당 기업 주주들 입장에서 보면 명백한 배임행위다. 요즘 기준이라면 이 회장 등 경영진은 사법처리되고도 남았을 행위다. 그러나 당시에는 용인이 됐다.

삼성은 천신만고 끝에 1983년 12월 64K D램을 자체 개발, 상용화에 성공했다. 삼성반도체 신화의 시작이다. 지난해 삼성전자의 매출액은 280조 원으로 우리나라 GDP 대비 14%나 된다. 전체 상장기업 매출액의 12%, 영업이익의 28%를 차지한다. 수출 비중은 20% 수준이다.

그렇지만 삼성은 재벌이라는 이유로 만만치 않은 비판을 받는다. 재벌은 사회악이므로 해체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많다. 일부지만 국유화 주장까지 나온다. 이념이나 명분에 집착하는 사람들이 특히 그렇다, ’배고픈’ 건 참아도 ‘배 아픈’ 건 못 참는 사람들이다. 어떤 정치, 경제, 사회적 행위나 사람을 한 면만 보고 판단하려 하면 이렇게 된다. 시간이 지나며 변하는 게 인간사인데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서로 인정하지 않는 데서 오는 현상이다.

   대일청구권자금과 박정희의 경제개발

이야기를 바꿔 대일 청구권자금을 예로 들어보자. 한국은 1965년 6월 22일 일본과 국교를 정상화하면서 한일기본조약을 체결했다. 이 협정에 따라 한국은 일본으로부터 유무상 8억 달러를 대일청구권 자금이라는 명목으로 받기로 했다. 이 자금은 일제 식민지시대에 수탈당한 한국인의 재산권에 대한 보상뿐 아니라 징병, 징용 등 일본의 식민지배에 대한 포괄적 배상 성격을 지닌 것이었다. 야당과 학생들은 대일 굴욕외교라며 거세게 반발했다.

쿠데타로 집권한 박정희 정권은 정통성의 약점을 경제개발로 돌파하려 했다. 계엄령과 휴교령으로 대대적인 굴욕외교 반대 시위를 진압했다. 일본으로부터 받은 청구권 자금은 경부고속도로, 포항제철 건설 등 경제개발에 투입됐다. 박 정권은 징용, 징병, 위안부들의 희생에 대한 보상은 외면했다. 그러나 그 같은 박정권의 경제개발 정책이 선진 한국의 밑거름이 됐다. 이에 대한 평가도 진영에 따라 극명하게 갈린다. ‘배고픈 것’에 더 중점을 두느냐, 배 아픈 것을 더 중요하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평가가 달라진다.

   공과를 함께 보지 못하는 친일파 논란

친일파 논란도 마찬가지다. 인촌 김성수가 좋은 예다. 그는 일제시대에 사재를 털어 교육, 언론 등을 통한 민중계몽에 나섰다. 그가 세운 동아일보는 일장기 말소 사건 등 기자들의 항일행위로 정간과 복간을 반복했다. 그는 신문사가 정간되면 복간을 위해 총독부를 찾았고, 일제에 협조했다. 일제가 독립운동하라고 신문사 설립을 허가한 것이 아닐진대 회사를 운영하려면 총독부에 어느 정도 협조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이를 두고 비판자들은 그의 삶 전체를 친일로 매도한다. 그가 문화사업을 통해 민중을 계몽한 공적이 더 큰데도 이는 무시된다.

어떤 이의 삶이나 역사를 평가하려면 전체를 고루 봐야 한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종종 한 면만 보고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다 보니 우리 역사에는 존경받는 위인이 드물다.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외 존경받는 사람을 꼽기가 힘들다. 누구나 다 조금씩 결점을 안고 있는데 이로 인해 전체가 부정당하기 일쑤다. 좀 더 넓고, 크고, 너그럽게 사회를 봤으면 싶다. 사회현상이나 역사는 정답이 하나인 물리학이나 수학과 다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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