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인희 논설위원, 이화여대 사회학과 교수

함인희 논설위원
함인희 논설위원

이번 주 초반 포털 뉴스에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가 제작한 ‘애티켓’(아이+에티켓을 말함) 캠페인 동영상이 도마 위에 올랐다. 동영상 속 주인공은 요즘 미디어에서 가장 ‘핫하다’는 오은영 박사. 오 박사는 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답게 어린아이의 마음을 십분 헤아려 식당에서 우는 아이나 옷에 커피를 쏟는 등 실수하는 아이에게 “괜찮다고 말해주세요” 캠페인을 하자고 제안한다.

      ‘저출산 극복’ 위해 만든 동영상이지만

그런데 이 동영상을 본 후 불편함을 느낀 네티즌들 사이에 설왕설래가 있었던 모양이다. “동영상 내용이 전반적으로 배려를 강조하는 듯한데 그것이 저출산과 도대체 무슨 상관이 있느냐”, “아무리 그래도 내 옷에 커피를 쏟았는데 괜찮다고 말하는 것은 아닌 것 같다”, “상대가 괜찮다고 말하기 전에 부모가 먼저 사과하는 장면부터 넣었어야 하지 않을까” 등의 댓글과, 이에 동조한다는 의견이 줄을 이었다.

이 사건은 조만간 우리 모두의 기억에서 사라질 단순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다. 그럼에도 ’애티켓’ 캠페인을 둘러싼 해프닝 속에서는 한 번쯤 생각해볼 만한 이슈들이 슬며시 우리의 시선을 끌어당기고 있다.

최근 조카 녀석이 교수로 임용되는 경사를 맞아 가족들이 주말 점심을 이용해 축하 모임을 갖기로 했다. 한데 식사 장소를 예약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복병을 만났다. ‘멋진 한강 뷰(view)가 일품’이라는 여의도의 음식점을 예약하려 했더니 ‘노 키즈 존’으로 운영되기에 아이가 있으면 예약이 불가하다는 것이다. 이제 갓 돌 지난 손주 녀석 덕분에 식구들이 모임 장소를 물색하느라 애를 먹었다. 겉으로는 저출산이 국가 차원의 위기라고 외치지만, 정작 아이는 환영받지 못하는 존재가 된 듯하여 여간 찜찜한 것이 아니었다.

실제로 제자 중에 딸 둘 아들 하나를 키우고 있는 다둥이 엄마로부터 들은 이야기도 찜찜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녀의 경험에 따르면 “국가가 아무리 저출산 위기를 극복해야 한다고 외쳐도, 정작 다둥이를 바라보는 사회적 인식은 절대 우호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세 아이를 데리고 음식점에 들어가는 순간은 주인장의 눈총을 감내해야 하고, 대중버스에 올라타는 순간은 호기심에 동정심이 섞인 승객들 시선을 감당해야 한다니 말이다.

결국 ‘애티켓’ 홍보 영상을 준비한 위원회 입장에서도, 젊은 부모들의 ‘출산파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그나마 우리 모두가 어린이 눈높이를 이해하고 맞춰준다면 출산에 보다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되지 않을까 하는 실낱같은 희망을 표현하려 했던 것 같다.

예전 우리네 부모님은 대여섯 명 아이들도 거뜬히 키워냈건만 요즘은 고작 하나둘 키우는데도 왜 이리 전쟁 치르듯 힘이 드는 것인지, 이 또한 불가사의다. 아이 키우기가 힘들어진 이유로는 사회적으로 경쟁이 심화되면서 투자비용이 급증했다는 사실, 더불어 확대가족 시대엔 아이를 돌봐줄 일손이 풍부했지만 핵가족 시대인 지금은 일손이 절대적으로 부족하다는 사실이 주로 지목되고 있다.

     예전엔 부모 혼자 애 기르지 않았는데

하지만 정작 중요한 이유는 애써 외면하고 있는 것 같다. 예전 아이들을 키워낸 것은 부모의 손길 못지않게 동네 골목의 힘이 컸다는 사실을 말이다. 동네 골목은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학교나 학원처럼 동년배들끼리만 어울리는 연령분절적 공간이 아니었다. 골목에서는 언니 오빠 남동생 여동생이 한데 어울려 술래잡기도 하고 ‘무궁화꽃이 피었습니다’도 했다. 남자들끼리는 딱지치기, 땅따먹기, 말뚝박기를 했고 여자들끼리는 고무줄, 공기, 오자미를 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낯가림도 없애고 협력하며 양보하는 법을 배웠다. 갈등이 생기면 어떻게 풀 것인지도 배웠고 문제가 있으면 누구에게 도움을 청해야 할지도 배웠다. 언니 오빠에게는 예의를 지키고 동생들은 보살펴주며 왕따를 만들지 않도록 서로를 배려하는 법도 터득했다. 어쩌면 골목이 있었기에 아이들은 저마다 알아서 컸고 부모님들은 그 많은 자녀를 키워낼 수 있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요즘 아이들은 또래 친구들 아니면 부모님하고만 소통을 한다. 골목의 재미와 묘미를 경험해보지 못한 채 어린 시절을 보낸 요즘 부모 입장에서도 아이 키우는 일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물론 천문학적 재원을 쏟아부어도 해결이 요원한 저출산 해법이 골목의 부활에 있다고 뜬금없는 주장을 하려는 것은 아니다. 다만 골목이 아니어도 예전처럼 언니 오빠 동생들이 자연스럽게 어울리며 놀이를 즐길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될 수 있다면, 젊은 부모의 아이 키우기가 지금보다는 훨씬 수월해질 것이요, 어린 시절의 즐거웠던 추억과 행복했던 기억이 훗날 어른이 되었을 때 출산 의지로 나타난다는 사실에 실낱같은 희망을 걸어 보고픈 심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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