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회 어린이날에 대통령 당선인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오늘은 제100회 어린이날입니다. 이번 주에는 교육이념이나 상속법 문제를 논의해보자고 했지요. 지금 창밖에서 까르르 웃으며 뛰어가는 어린이나 무엇을 고민하는지 어깨를 축 늘어뜨리고 걷는 젊은이들을 어떻게 길러야 할까 논의하고 싶어서 제안한 주제입니다.

그러나 죄송합니다. 이 제재는 뒤로 미루고, 이 특별한 날에 나라와 어린이들의 미래를 생각하며 전 국민을 논란의 도가니 속으로 몰아넣은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 문제를 논의해보기로 합시다. 정치 문제는 부모와 형제도 싸우기 마련이라고 하는데, 엊그제 형사소송법까지 의결해 공포하니까 아주 엉뚱하게도 1905년 11월 20일자 황성신문 장지연(張志淵, 1864~1921) 주필께서 통곡하며 쓰신 사설 ‘시일야방성대곡(是日也放聲大哭)’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지나치게 흥분하는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정치꾼들은, 정부나 민주당은 검찰청법과 형사소송법을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고쳐 공포하면 끝날 줄 알지만 새로운 논란의 시작에 불과하고, 끝없는 보수와 진보의 싸움은 겨우 코로나를 극복하고 일어서려고 하는 국민들을 분노하게 만들어 결국엔 ‘폭망’으로 이어질 것 같기 때문입니다. 제 말이 믿어지지 않는다면 검수완박을 발의해서 공포하기까지 18일간의 과정을 정리해 말씀드릴 테니 판단해보세요.

어제 하루 종일 정리했지만, 하도 여러 번 골자를 바꾸고, 여야는 물론 신문과 방송마다 다른 소리를 해 제대로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우선 두 법안의 원안과, 합의안과, 의결해서 공포한 안이 다르다는 점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조직을 만들겠다고 목표만 내세웠을 뿐 그 실체를 제시하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방금 방송에 의하면 민주당이 부칙을 삭제해 자기들이 그렇게 막으려고 했던 정치인 수사도 이미 기소된 사람들이면 계속 수사할 수 있다는군요.

또 논의와 의결 과정 군데군데에 불법과 억지가 끼어 있다는 겁니다. 법사위 안건조정위원회 조직만 해도 그렇습니다. 자기들이 믿었던 양향자(梁香子, 1967∼) 의원이 다른 뜻을 표명하자 다시 자당 국회위원을 탈당시켜 구성원 수를 조정했다는 점입니다. 소수 정당의 의견을 살리고 조정하기 위한 기구인데.

또 의결과 공포 과정 역시 법과 관례를 무시했다는 점입니다. ‘회기 자르기’는 늘 하던 짓이니 접어두더라도 5월 3일 형사소송법을 의결하고 공포하는 과정만 해도 그렇습니다. 오후 2시에 열기로 되어 있는 국회를 오전 10시에 열어 국회법을 무시하고, 오전 10시에 열던 국무회의를 오후 2시로 미뤄 관행을 무시하는 것을 보고 그래도 잘 했다고 할 국민은 없을 겁니다.

또 이날 회의 진행 역시 문제가 있습니다. 송언석(宋彦錫, 1963~ ) 국민의힘 의원이 의사진행 발언을 신청했지만 박병석(朴炳錫, 1952~ ) 의장이 필리버스터로 간주하고 표결 후 발언권을 준 것은 의사진행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안 들어줬다고 시비를 걸면 충분히 말썽거리가 될 소지가 있습니다.

아니, 민주당이나 청와대 모두가 국민들을 눈살 찌푸리게 만들었습니다. 최강욱(崔康旭, 1968~ ) 의원의 ‘짤짤이’ 발언은 접어두더라도 우상호(禹相虎, 1962∼ ) 의원의 김건희 여사에 대한 전언은 ‘믿을 만한 근거’라고 한 그걸 제시하지 못하면 명예훼손으로 고발당할 수 있는 논평입니다.

아니, 아니, 문재인 대통령의 사면 계획 여부에 대한 답변은 왜 민주당 의원들이 그러는지 짐작이 가도록 만들었을 뿐만 아니라, 아 우리가 저런 분을 5년 동안 대통령으로 모셨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슬펐습니다.

이명박(李明博, 1941∼ ) 전 대통령이나 삼성그룹 이재용(李在鎔, 1968∼) 부회장에 대한 고려는 당연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전 대통령은 80이 넘은 노인이고, 유전무죄라고 떠드는 사람도 있을 테지만 삼성은 우리는 물론 세계 경제에 막대한 공헌을 했을 뿐만 아니라, 현직 대통령이 승마 선수에게 말 한 마리 사주라는데 거부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말은 되돌려 받았는데….

그런데 ‘드루킹’ 시스템으로 자기의 불법 선거를 도운 김경수(金慶洙, 1967~ ) 전 경남지사와 조국(曺國, 1965~ ) 교수의 부인 정경심(鄭慶心, 1962~ ) 교수를 이분들과 함께 논하다니, 애들 문자로 ‘웃껴 껴 껴…’였습니다.

그리고 6월 1일에 치를 지방 선거의 결과도 예감케 하더군요. 절대적으로 앞서가던 민주당의 지지율이 36 : 50, 서울 시장과 경기도와 강원도 지사 출마자들 역시 뒤집히는 것도 사회적 윤리나 질서보다는 문빠가 먼저라는 민주당 행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그러나 제가 지금 평소 안 쓰던 정치 칼럼을 쓰는 것은 민주당이나 문 대통령의 잘못을 지적하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제가 투표해서 뽑힌 대통령이 당선까지 포함해서 10명, 이 가운데 탄핵이나 쿠테타, 구속 또는 수사를 안 당한 분은 김영삼(金泳三, 1927~2015)과 김대중(金大中, 1924~2009) 두 분뿐이고, 진보와 보수인데도 서로가 도왔기 때문입니다.

당선인은 자신을 보수라고 생각하실 테니까 진보에 대해 한두 가지만 더 귀띔해드릴까요? 의외로 진보그룹은 자기들밖에 모르고, 욕심이 많다는 게 특징입니다. 기존의 틀에서 벗어나겠다는 것 자체가 이미 오만이고, 그런 사람들일수록 주변에서 소외와 시련을 당해왔기 때문에 남을 믿지 않습니다.

그러나 대통령 퇴임이 곧 감옥행이라는 비극은 더 이상 되풀이되어서는 안 됩니다. 이런 불행을 막고 싶다면 취임식 때 문재인 대통령을 따뜻하게 대해주시고, 앞으로 같은 잘못을 하는 사람만 처벌하고 과거는 모두 덮어두겠다고 선언하시면 어떨까 합니다. 아마 문빠들도 고마워하고 국정 운영도 한결 쉬워지실 겁니다.

또 하나 귀띔해드릴까요? 집무실 이전 문제는 좀 차근차근 진행하는 게 어떨까 합니다. 공간이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다는 말은 맞습니다. 그러나 몇 달쯤 못 버티는 사람이라면 지도자가 될 수 없지요. 내가 너무 성급했다고 선언하고 차근차근 준비해서 옮기거나, 아주 한쪽 구석만 사용하고 나머지를 공개하면 대한민국 최초로 전 국민의 사랑과 지지를 받는 대통령이 되실 겁니다.

생각해볼 만하시다면 검수완박을 바로잡는 방법도 그렇습니다. 검찰이든 경찰이든 현직 대통령과 맞설 사람은 없습니다. 문제가 드러날 때마다 총리와 법무부 장관이 바로잡도록 하시면 됩니다. 너무 빨리 바로잡으려고 하면 검사 출신 대통령이라서 어쩔 수 없다는 소리를 들으실 테고, 국정 운영에도 아주 큰 부담이 되실 겁니다.

하나만 더 말씀드릴게요. 통치에 필요한 정보는 측근이나 신문과 방송은 참조하시되, 아주 중요한 판단은 빅 데이터에 의지하십시오. 사람이 제공하는 정보는 이야기해주는 사람이 어디에 초점을 맞추느냐에 따라 자기도 모르게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고 또 상대가 누구냐에 따라서 달리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컴퓨터는 입력한 원칙에 따라 말할 뿐입니다. 2008년 미국 대통령 선거에서 버락 오바마(B. H. Obama II,) 후보가 당선된 것도 인종, 종교, 나이, 과거 투표 여부, 구독하는 잡지, 마시는 음료 등을 입력한 데이터베이스를 분석한 게 주효했다고 합니다. 그의 아버지는 케냐 출신 유학생이고, 그가 태어난 곳은 하와이고, 그가 두 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이혼하고…. 빅 데이터 활용도 선거 비용을 줄이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플랫폼 정부를 만들겠다고 하셨지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국민과 함께하면서 국민의 마음의 흐름을 헤아리는 데 신경을 쓰면 역사 속에 길이 남는 대통령이 되실 테니 꼭 참고하세요.

안녕, 안녕, 잘하셔야 돼요. 같은 윤씨 같은 항렬이라서 고민 끝에 귀띔해드리는 거니까. 사랑해요. 안녕, 꼭 문 대통령과 문빠들의 불안을 해소하는 작업부터 시작하세요. (♥)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