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3월 31일 국회에서 열린 더불어민주당 제80차 정책의원총회. 연설을 마치고 연단에서 내려온 박지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에게 설훈 의원이 말을 걸었다. “잠깐만! 잠깐만! 얼굴을 잘 몰라요! 마스크를 잠깐 벗고 봤으면 좋겠는데요.” 그러나 박 위원장은 웃으면서 그대로 자리에 앉았다.

이날 박 위원장은 “처음으로 모든 의원님들을 한자리에서 뵙고 인사드리게 됐다”고 운을 뗀 뒤 4분 30초가량 연설했다. 연설 중에는 내내 마스크를 쓰고 있었다.

사회자가 설 의원에게 “얼굴을 모르신다고요?”라고 묻자, 설 의원은 “예”라고 대답했다. 이 말에 여러 사람이 웃었고, 박 위원장을 향해 “텔레비전에 나온 거하고 틀려(달라)” 같은 말이 이어졌다. 그러자 사회자는 “선거 때 많이 봤습니다.”라는 말로 상황을 끝냈다.

설 의원은 당시 발언에 대해 “그간 만날 기회가 없어서, 가까이 간 적이 없어서 보고 싶다는 취지로 말한 것”이라며 “얼굴이 어떻게 생겼는지 한번 봐야 할 것 아니냐.”라고 했다. 이어 “박 위원장이 대꾸를 안 하기에 ‘내가 잘못 말했나’라는 생각이 들긴 했다. 선의로, 친교의 뜻으로 보자고 했는데 그렇게 받아들이진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참 우스운 일이다. 비대위원장이면 당의 대표인데 한 번도 얼굴을 보여준 적이 없는 데다 얼굴 좀 보자는 게 27세 젊은 여성에 대한 성추행이나 성적 호기심 비슷한 말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는 게 우습다. 그 자리를 맡은 지 거의 20일이 된 시점인데도 얼굴을 모른다니 코로나시대의 희한한 풍경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시팔이'를 자처하는 하상욱 씨의 작품엔 재미있는 게 참 많다.
 '시팔이'를 자처하는 하상욱 씨의 작품엔 재미있는 게 참 많다.

나는 처음 보는 사람과 인사할 때면 잠깐 마스크를 내린다. 새로 입사한 같은 회사 기자들과 인사할 때도 마스크를 벗어 얼굴을 보여주는데, 기자들은 마스크를 쓴 채 알아듣기도 어려운 목소리로 자기소개를 하는 경우가 많다. 마스크 잠깐 벗는다고 코로나에 걸리는 것도 아닌데 그런다. 상대가 어려워서, 마스크를 벗으면 오히려 폐가 된다는 생각에서 예의를 지킨다고 그러는 거겠지만, 내가 마스크를 내린 걸 전혀 눈치채지 못하는 것 같다.

그래서 나는 기자들에게 “어디 취재하러 가거나 출입처에서 처음 만나는 사람들에게 자기소개를 할 때는 반드시 마스크를 벗고 인사하라”고 알려준다. 그게 초면의 예의이기도 하지만 그렇게 하면 첫인상이 좋을 거고 상대방이 나를 잘 기억해줄 거 아니겠나. 

코로나19가 전 지구적으로 번진 이후 갖가지 진풍경과 유머가 양산되고 있지만, 얼굴을 보여주지 않아 유리해진 사람들도 많은 거 같다. 마스크 구하기가 어려웠던 초창기엔 “예전엔 마스크 쓰고 돈 털러 갔지만, 지금은 돈 싸들고 마스크 구하러 간다.”는 농담이 나왔다. 집에서도 마스크를 쓰고 사는 바람에 마누라가 몰래 성형수술을 한 것도 모를 지경이라는 말도 했다.

마스크생활에 익숙해져서 이제는 벗으면 불안해한다. 특히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오히려 마스크를 쓰고 사는 게 유리한 경우가 많다. 마스크와 사기꾼을 합친 ‘마기꾼’이라는 말도 생겼다. 마스크를 쓰면 예쁘거나 멋있어 보이지만 마스크를 벗으면 전혀 그렇지 않은 사람을 말한다.

일본의 40대 요가 강사는 결혼 정보업체를 통해 소개받은 의사의 진실한 눈빛에 끌려 연애 2개월 만에 혼인신고를 했다. 마스크를 쓰고 데이트를 해온 그녀는 결혼 후, 밝고 잘생긴 눈과 달리 치열이 심하게 불규칙하고 입술도 두꺼운 남편의 모습에 실망했다. 점차 남편이 싫어져 키스도 거부하며 멀리하다가 결국 이혼하고 말았다.

마스크로 얼굴을 가리고 눈만 내보이면 매력적인 게 사실이다. 영국 일간 가디언에 따르면 영국 카디프대 연구진은 지난해 2월 여성 43명을 대상으로 실험한 결과, 마스크로 얼굴 절반을 가릴 경우 매력 평가점수가 높아졌다고 발표했다. 참가자들은 마스크를 쓴 남성이 마스크 미착용이나 책으로 가린 남성보다 훨씬 더 매력적이라고 평가했다. 특히 1회용 의료 마스크를 썼을 경우 매력도가 더욱 높아졌다. 이제 마스크는 오염의 단서가 아니라 패션 액세서리가 된 것이다.

최근 일본 젊은이들 사이에서는 노 마스크를 두려워하는 경우가 늘어 ‘가오판츠'라는 말까지 생겼다고 한다. 가오는 얼굴[顔], 판츠는 팬티라는 말인데, 마스크를 하지 않으면 몸에 속옷을 안 입은 것처럼 얼굴이 허전하게 느껴진다는 것이다. 말 만들기, 말 줄이기, 말 퍼뜨리기 좋아하는 일본인들답다. 사실 정확하게 일본인 식으로 발음하면 ’가오판츠‘가 아니라 ’가오빤쓰‘겠지만. 

좋다. 마스크로 모자를 만들든 안경을 만들든 귀고리를 만들든 진짜 팬티를 만들든 전신주로 이를 쑤시든 멍석 말아 담배를 피우든 하고 싶은 대로 다 하라. 다만 사람을 처음 만나 명함을 주고받으며 인사할 때, 오랜만에 재회한 사람이나 정기적으로 모이는 사람들을 만났을 때는 일단 마스크를 벗고 인사를 해 정체를 밝혀라. 얼굴은 보이라고 있는 거고 입을 통해 나오는 언어와 표정을 통해 남들과 의사소통을 하며 살라고 생긴 거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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