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원식 (주)미래비전개발원장

미래비전개발원 사무실에서 만난 조원식 원장. 사진 구혜정 기자
미래비전개발원 사무실에서 만난 조원식 원장. 사진 구혜정 기자

그대로 앞만 보고 살았다면 강남을 넘어 전국을 주름잡는 입시학원가 명장이 됐을지 모른다. 잘 먹고 잘살면 그만이지. 그런데 진정한 성장에 대한 고민에 빠졌고 벽에 부딪혔다. 깨달음의 순간, 의미는 새로워졌고 세상도 달리 보였다. 매일 아침 뜻깊은 시간으로 하루를 열고, 모든 세대가 허물없이 소통하는 미래를 꿈꾸는 ㈜미래비전개발원 조원식(58) 원장을 만났다.

서울 서초구 예술의전당 근처에 미래비전개발원이 있다. 미래 시대에 맞는 인재를 양성하는 곳이라고 한다. 청소년부터 중장년층, 현역 은퇴자까지 구성원도 다양하다. 이들은 강의와 토론을 통해 세대 간 격차를 좁히고, 서로를 성장 발판으로 삼는다. 조원식 원장은 미래비전개발원과 함께 더 많은 이들이 활동할 수 있도록 사회적 협동조합 나라인재개발원도 함께 운영하고 있다.

온라인모임 '아비나'로 힘찬 아침을 

언제나 그랬듯 또 코로나 탓을 할 수밖에 없다. 미래 비전을 함께 열어 갈 사람은 없고, 텅 빈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 조 원장의 사무실만 있다. 이 상황이 아니었으면 아고라만큼이나 치열한 열기로 꽉 채워졌을 텐데…. 사람의 온기가 되살아나려면 아직 시간이 좀 더 필요해 보인다. 그 대신 지난해 6월부터 구성원들과 함께 매일 아침을 열고 있다. 나름 멋진 선택이었다. 
“코로나가 시련만 준 게 아니더라고요. 줌(zoom) 화상으로 아침비전나라(이하 아비나)라고 이름 붙인 온라인 모임을 열고 있습니다. 6시 20분쯤부터 시작해서 15분 강의하고 20분은 토론을 합니다. 발표도 토론도 서로 하려고 해요. 매번 서른 명 정도가 참여하는데 세대도 다양하고, 열성적인 분들이시죠.”
아비나에서 다루는 주제는 가지각색이다. 인문, 미래, 창업, 문화‧예술, 심리, 청소년, 시니어, 평생교육, 기업 등 10개 분과로 나누어 매일 아침을 뜨겁게 달군다. 이렇게 온라인 모임을 하다 보니 특별한 것을 발견하게 됐다. 

“서울, 인천, 대전, 울산, 전주, 청주, 부산, 순천, 광양 등 지역 한계 없이 아비나 시간에 들어옵니다. 오프라인으로 하면 가깝게 만날 수는 있지만 딱 그 지역 분들만 만나잖아요. 지역과 공간을 초월해 모이니 계속해서 매일 아침을 준비할 수밖에요. 최대한 다양한 이슈와 콘텐츠를 활용하려 합니다. 금요일 아침에는 독서 토론을 하고, 수요일 저녁에는 정회원 대상으로 저녁 강좌도 엽니다.”
무엇보다 아침 모임을 통해 10대부터 할아버지, 할머니 세대가 함께 소통하는 문화를 만들고 싶다고 조 원장은 말했다. 
“저는 유대인의 하브루타(나이 계급 성별에 관계없이 두 명이 짝을 지어 질문, 토론 논쟁하는 교육법)를 따릅니다. 꼭 어른이라서 강의하는 게 아니라 손자세대가 강의할 때 조부모세대도 듣는 문화를 만들고 싶습니다.”

조원식 원장은 청소년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교육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 조원식 원장 제공. 
조원식 원장은 청소년부터 장년층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인재들을 대상으로 미래를 열어가는 교육과 활동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 조원식 원장 제공. 

‘인재’의 의미를 고민하다
조 원장은 원래 서울의 입시 메카인 강남 대치동을 시작으로 전주에서도 학원을 경영하던 입시교육 전문가였다. 
“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했습니다만 적성에 맞지 않았어요. 졸업하고 어떤 일을 할까 하다가 교육 관련 일을 하게 됐습니다. 1990년대 개인 과외를 못 하게 정부가 막으면서 국어, 영어, 수학 교재와 테이프를 판매하며 교육 서비스를 하는 게 유행이었고, 저는 그 일을 하게 됐습니다.”
생각해보니 그때 그 시절 집마다 소설이나 백과사전 등 전집이 많았다. 그만큼 한꺼번에 많은 돈을 지불했다.
“판매로 끝나는 게 아니었어요. 일주일에 한두 번은 학생들을 가르쳤습니다. 과외를 대신해야 했던 학습교재 사업은 호황이었습니다. 1년 열심히 일하면 아파트 한 채를 살 수 있다는 말이 들릴 정도였으니까요.”

조 원장 또한 학습교재를 판매해 100명 중 5위 안에 들 정도로 수익을 올렸다. “1990년대에 접어들면서 다시 사교육 시장이 형성됐고, 강남에서 입시학원을 열게 됐습니다. 저라면 믿을 수 있다는 학부모들이 학원에 투자도 해주었고요.”
말 그대로 승승장구였다. 중‧고등학생 입시학원, 외국어 학원, 어린이 영어유치원 등 사교육이 할 수 있는 영역을 최대한 만들어 갔다. 그러다가 IMF로 찬바람을 맞았지만, 지방에서도 사세를 확장하는 기회를 얻기도 했다. 
“입시학원에서는 학생을 좋은 대학에 보내는 것이 가장 큰 일이었습니다. 학원을 반드시 다녀야만 상위 대학에 갈 수 있다는 불안마케팅을 활용하기도 했죠. 아이들이 상품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교육적 사명감을 느끼고 있었습니다. 학생들을 단순하게 상품으로만 보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인재 양성이 늘 먼저였습니다.”

'현실' 말고 '미래'를 보다
솔직한 말로 지금보다 돈도 많이 벌고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현실에 안주하는 안정적인 삶보다 미래지향적이고 앞으로 나아가기를 조 원장은 원했다. 매너리즘에 빠져 도전하지 않는 삶을 사는 것이 더 고되었다고 했다. 
“언젠가 한 번은 과외로만 16개월 정도를 생활한 적 있어요. 정말 많이 힘들었습니다. 내 안에서 동기 부여가 되지 않았어요. 뭔가 발전적이고 진짜 인재를 만들고 싶었거든요.”
물론 학원을 운영하면서 성과도 있었다. 좋은 학교 선생님, 학부모, 학생 교육에 관심 있는 분들을 만나 도움도 받았다. 미래 세대의 시야를 넓혀주기 위해 미국, 중국, 필리핀, 유럽, 남아프리카공화국 등 다양한 국가를 방문해 문화와 언어를 체험하는 글로벌리더십프로그램도 진행했다. 
“꿈을 발견하고 미래를 찾아간 아이들도 셀 수 없을 정도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학부모는 그 시간에 하나라도 더 공부해서 명문 대학에 합격시키기를 원합니다. 그게 현실이고요.”
학원 사업하면서 회의를 많이 느꼈다는 조 원장은 고민 끝에 중요한 결정을 했다. 2000년대 들어서면서 성인교육으로 지평을 넓히기 위한 준비를 시작했다.
“제가 30대 후반에 접어들고 나서 입시학원과 각종 전문학원 등을 정리했습니다. 각자 맡아서 관리하던 원장에게 위임했어요. 40대가 돼서는 드디어 성인교육을 하게 됐습니다. 어른과 아이가 소통하는 프로젝트를 해보려고요.”

진심을 담은 교육에 한 발짝 다가서고 싶었다. 마침 든든한 지원군을 만나 함께 색다른 교육환경을 만들어 보고자 했다. 
“5차원 전면 교육 학습법의 원동현 박사와 비전 멘토인 강헌구 장안대 교수(경영학)와 손잡고 ‘DIA인재교육원’과 서울비전스쿨을 함께 운영했습니다. 주입식, 암기식 공부 대신 자기주도학습을 지향했어요. 두 분의 교육 콘텐츠를 바탕으로 한 ‘마이라이프, 마이비전’이라는 프로그램도 꽤 반응이 좋았죠. 전국적으로 강사 양성도 했습니다. 어린이와 청소년의 꿈을 설계하는 프로그램이었는데, 청소년단체장 혹은 교회 목사님같이 사명의식을 가지고 계신 분들이 많이 모이셨습니다.”  

그사이 조 원장은 한국기술교육대학교에서 HRD(인적자원 개발) 관련 석사과정을 수료했다. 
“좋은 기회였습니다. 기업의 HRD 담당자와 산업인력공단에서 일하는 분들도 계셨죠. 기업 교육을 받다 보니 문제해결 능력, 창의적 기업, 플립러닝(역진행 수업) 등 좋은 교육을 알게 됐습니다. 청소년들 교육에 접목하면 얼마나 좋을까도 생각했죠. 자기주도학습법, 브랜드러닝, 토론수업도 참 괜찮았어요. 저처럼 초등학생부터 시니어까지 전 세대를 아우르는 교육 분야 전문가도 거의 없을 겁니다(웃음).”

아이들과 학부모를 대하던 입시 전문가의 교육 대상은 장년층까지 점차 넓어지게 됐다. ‘조직문화, 조직 비전’이라는 주제로 중소기업과 대기업을 두루 다니며 강의해왔다. 또한 학생들과 함께하는 외국 방문 프로그램을 하게 되면 그곳의 CEO를 만나는 시간을 만들기도 했다. 서로 위아래 없이 이야기 나누고 꿈을 키우는 좋은 시간을 만들어나가고자 했다.

세대가 어우러지는 세상을 꿈꾸다
조 원장의 교육 철학에는 세대 간 지식 순환과 소통이 깔려 있다. 젊은 세대와 시니어 세대가 서로 지식을 나누어 공유할 수 있다면 큰 시너지효과를 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30년 동안 교육을 해온 입장에서 가장 아쉬운 것이 주입식 공부와 이기적 인재를 양산했다는 겁니다. 명문대에 들어가는 것만이 인재가 아니더라고요. 사회와 기업에서 필요한 인재,  새로운 세상, 미래에 맞게끔 만들어줘야죠.”
점수를 따고 암기를 통해 지식을 방출하는 것은 의미가 없다고 조 원장은 말했다. 창의력 있고, 미래를 통찰할 수 있는 인재를 배출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서로 다른 세대가 함께 교감하는 것이었다.
“교육 용어로 어른의 지능을 결정적 지능(crystallized intelligence)이라고 하고, 젊은이들에게서 나오는 지능을 유동 지능(Fluid intelligence)이라고 합니다. 어른들의 경륜과 지혜, 젊은이의 감각을 융합해 보고 싶은 게 제 생각입니다.”

조 원장은 “현역에서 은퇴했지만, 여전히 전문성과 실력을 갖춘 시니어 인재들이 무궁무진하게 많다”고 했다. 이들이 지금까지 갈고 닦은 경륜과 지혜가 은퇴를 기점으로 사회에서 사장되는 것이 아깝고 또 아쉬웠다고 말했다.

“은퇴자들이 전문 지식을 원활하게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데 이분들이 지금까지 현장에서 일을 잘할 줄만 알았지 강의하거나 코칭을 해보지 못하셨던 거죠. 의욕이 높지만, 본인의 지식을 주입하려다 보니 소통하는 방법을 알 필요가 있었습니다. 대상에 맞게 공감대를 끌어내고 전달하는 능력 말입니다. 눈높이나 재미, 대화 코드도 맞아야 하고요.”
그래서 조 원장이 쓰는 방법은 '아비나' 참석자들이 최대한 강의와 토론을 진행할 수 있게 하고 방향을 잡아갈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조금씩 남들 앞에서 말하는 것에 자신감이라는 근육을 붙게 해주고자 한다. 
“똑똑하고 배울 만한 콘텐츠를 갖춘 분들 주변에 참 많아요. 그런데 펼칠 곳이 부족합니다. 제가 하는 일은 그분들이 자신만의 콘텐츠를 만들고, 모여서 지성 집단화할 수 있게 해드리는 겁니다. 그 속에서 다른 사람의 것도 배우는 거죠.”

2013년 글로벌리더십프로그램에 참여한 문태중학교 학생들과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청 앞에서 기념 촬영. 뒷줄 맨 오른쪽이 조원식 원장. 사진 조원식 원장 제공. 
2013년 글로벌리더십프로그램에 참여한 문태중학교 학생들과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 시청 앞에서 기념 촬영. 뒷줄 맨 오른쪽이 조원식 원장. 사진 조원식 원장 제공. 

좋은 사회 만드는 디딤돌
대상은 조금 달라졌지만 조 원장은 지금까지 교육 현장에서 가고자 했던 방향을 따라 쉼 없이 걷고 있다. 그의 입에서는 ‘인재 양성’과 ‘사명감’이라는 말이 연이어 나왔다. 여기서 드는 궁금증이라면 처음과 비슷하다. 왜 돈 잘 벌 수 있는 학생 입시 분야는 내려놓고 끝 모르는 장년층과 함께하고 있는지 말이다. 이에 조 원장은 종교적 신념이 크게 차지한다고 말했다.
“아버지가 참 독실하셨어요. 교회도 직접 세우시고 법 없이도 살 분이셨는데, 젊은 나이에 돌아가셨습니다. 제 어린 시절 기억으로 아버지는 교회에 봉사하고 사랑으로 헌신하셨던 분이시죠. 저 또한 아버지 뜻을 생각하면서 인재 양성하고, 돈 벌어서 학교도 세우고, 선교센터도 세우고 싶었습니다.”

앞으로 회원들이 각자 고유의 경험을 바탕으로 책을 쓰고 자신의 콘텐츠를 개발하기를 바라고 있다. 무엇보다 책, 강의, 강의 방송 등을 활용하고 공유할 수 있는 온·오프라인 플랫폼을 만들고 싶다고 한다. 
“우리나라에 강사 활동가만 400만 명 가까이 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습니다. 세상을 변화시키려면 시민, 지식인의 힘이 필요합니다. 한 명의 대통령, 정치인들이 아무리 목소리를 높여도 세상 바뀌기는 쉽지 않습니다. 제 삶의 사명으로 받아들이고 있고, 반드시 해낼 거라고 믿습니다.”

조 원장은 마지막으로 데일리임팩트에 “사람 살기 좋아지려면 서로 배려하고, 다양성을 존중해야 한다”면서 “좀 더 부드러운 사람들이 인간적으로 서로 배려하고 기여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대한민국의 자원은 진짜 사람이기 때문에 진짜 미래 사회에 기여할 수 있는 인재를 많이 양성하겠다는 게 그의 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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