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남자’, 페미니스트를 연습하다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아름다운 사랑을 얻기 위해 반드시 극복해야 할 콤플렉스들을 소개했었지요? 그리고 그 방법은 말씀 안 드리고. 어떤 절친 독자가 문자로 그러데요. “이 연재가 대학의 심리학 강의실인 줄 아느냐”고.

하지만, 이번 주 주제인 평생 상남자인 척하고 살아온 제가 어떻게 해서 페미니스트 연습을 시작했는가부터 이야기하고 말씀 드리겠습니다. 제가 페미니스트 연습을 하기 시작한 건 일주일에 원고지 2, 30매짜리 편지 8통씩을 써서 결혼하고 44년 뒤, 후두암으로 성대를 잘라내고 퇴원하던 2017년 봄입니다. 그러니까 완치되었는가 검진을 받다가 만성백혈병에 걸렸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나서지요.

저 죽는 건 둘째치고 집사람이 너무 불쌍하데요. 같이 글 쓰는 사람끼리 결혼해 서로 작품을 읽어주고, 조언해주면 얼마나 좋겠느냐고 꼬셔서 결혼하고, 저보다 더 잘 쓰는 사람이 직장을 나가면서 8남매 맏며느리 역할과 뒤늦게 공부를 시작한 남편 뒷수발과 두 딸을 기르느라고 등단과 동시에 절필(絶筆)하고…

그래서 제주도로 건너와 병원에 있는 동안 누렇게 곰팡이 핀 집안을 새로 도장하고, 화장실 문 위에 인조 장미를 걸었지요. 그리고 걸핏하면 짜다 맵다 투정하던 식사 매너를 바꿔 어지간하면 엄지 척하면서 먹고, 제가 먹은 그릇은 싱크대까지 옮겨 놔주기 시작했지요.

그러나 이내 다시 싸우기 시작했습니다. 평생 쓴 20여 권의 책을 정리하기 시작하니까, 또 어떤 고생을 시키려고 그러느냐며 소나기 잔소리를 퍼붓는 겁니다. 하지만, 입원 전의 싸움과는 같은 종류의 싸움이 아니었습니다. 원고를 놔두고 떠나면 문학을 전공한 두 딸내미와 사위를 괴롭힐 게 분명하고, 펴낸 책이긴 하지만 발견한 흠결을 놔두고 떠나는 것은 자존심 상하는 일이라 쓰고 다듬는 거라서. 그러니까 서로를 위한 싸움이었습니다.

그러자 집사람은 딸들과 공동 작전을 펴기 시작하더군요. 우선 두 딸내미에게 하소연을 했더군요. 제가 퇴원한 후 영국에 교환교수로 나갔다가 북아프리카 어느 오아시스에서 원고를 정리하던 큰딸로부터 톡이 날아오는 겁니다. 독일에서 만나 동유럽을 거쳐 그리스와 터키까지 여행을 하자고. 그리고 둘째딸은 내 항공 마일리지를 조사하고는 몇 십만 원만 보태면 엄마랑 왕복 비행기 삯은 될 것 같다고 유혹하고.

그래도 하루라도 빨리 다듬고 고치고 싶어 하니까 제가 제일 말을 잘 듣는 누님과 동생까지 동원하는 겁니다. 누님께서는 “효도는 한다고 할 때 받아야 한다”며 여비에 보태 쓰라고 돈을 보내주시고, 독일로 출장을 나가서도 ‘소설 예수’를 쓰는 둘째 동생은 건너와 한 번만 글을 봐달라고 문자를 보내오고…

할 수 없이 비행기를 탔지요. 평생 연구과제로 삼아온 동서 시학(詩學)을 대조하면서 통합해 새로운 시학을 마무리 짓기 위해서는 두 대륙의 가교 역할을 한 지역의 문화를 살펴봐야 한다는 명분으로 자신을 속이며.

그런데 이 여행이 저를 문화적 페미니스트로 바꾸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러니까 독일에서 헝가리로 가서 루블라냐(슬로베니아), 아테네를 거쳐 터키 남부 해안 도시 쿠사다시의 모텔에서 에베소(에페수스) 유적을 검색할 땝니다. 에베소는 결혼도 않고 7남매를 낳은 성모 마리아께서 ‘불륜의 여인(mamzer)’으로 낙인 찍혀 그 먼 이스라엘에서 도망 와 최후를 마치신 곳입니다.

하지만, 성모 마리아 때문에 바뀌기 시작한 건 아닙니다. 저를 에베소까지 끌어들이는 역할만 하셨을 뿐. 정작 저를 이끈 건 셀수스 도서관 앞의 대리석 도로 바닥에 새겨진 유곽(遊廓)의 안내문’이었습니다.

그 안내문에는 여인의 발, 하트, 돈을 의미하는 동그라미, 머리를 아름답게 장식한 로마 여인이 새겨져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지금엔 지워져 읽을 수 없지만 “마음에 상처를 받으신 분들은 이 발을 따라 오세요”라고 새겨져 있었다는 겁니다.

그런데, 로마 시대에는 발이 작은 여인을 아름다운 여인으로 평가했다는 설명을 읽는 순간, 우리도 발이 작은 여인을 미인으로 보았다는 사실이 떠오르고, 다시 중국의 티베트 남동부 먼위(門隅) 지구의 먼바족(門巴族)이 떠오르면서 남녀의 성적 특질은 프로이트나 융의 주장처럼 타고나는 게 아니라 문화와 교육에 의해 길러진다는 문화적 페미니스트 쪽으로 바뀌기 시작했습니다.

먼바족은 중국 56개 소수민족 가운데 전체 인구가 9000명 정도로 51위이고, 남녀 성비는 8 : 2라고 합니다. 그리고 여자가 성인(15세)이 되면 어머니가 점찍어 놓은 청년 4, 5명과 결혼을 하고, 1년 후 다시 4, 5명을 더 붙여줘 남편이 7, 8명에서 10명 안팎에 이르고. 남자가 부인 허락 없이 다른 여자를 넘보면 추방당하고, 1년 이내에 아기가 없으면 힘 좋은 남의 남편을 빌려다가 합방시키고, 부인과 자고 싶으면 문밖에서 밤새도록 노래 부르고, 가축을 잘 기르고 사냥을 잘 해야 선택을 받는다는 겁니다.

하지만, 맞아 맞아 하면서도 ‘문학연구방법론’을 정리하느라고 읽은 메리 데일리(M. Daly, 1928∼2010)와 캐럴 길리건(C. Gilligan, 1936∼ ) 같은 사람들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싶지 않데요.

    메리 데일리(왼쪽)와 캐럴 길리건. 
    메리 데일리(왼쪽)와 캐럴 길리건. 

스스로 '과격한 페미니스트’라고 칭하는 데일리의 주장만 해도 그렇습니다. 서구 사회의 남성주의는 하느님을 남성인 ‘아버지’로, 원죄의 근원을 여성인 ‘이브’로 설정한 성경에서부터 비롯되었고, 현대 교회도 전체 신도의 70%가 여성인데도 중요 직책은 남성들에게만 맡기면서 “아멘”하고 외치도록 해서 당연한 것처럼 만들었다는 겁니다.

또 박사학위 논문을 쓸 때 빌려 쓴 뉴욕대학 길리건 교수의 주장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원시시대부터 사회를 이끌어온 남성들은 ‘옳고 그름의 윤리(ethic of justice)’에 의해 행동하는 문화적 유전자가 강하고, 가족을 돌보고 육아를 해온 여성들은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에 의해 행동하는 유전자가 강하다면서 현대처럼 분쟁이 많은 시대에는 여성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이 사회적 지도자로 더 적합하다는 겁니다.

맞는 말입니다. 힘든 일은 기계가 하고, 빅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이용하면 누구나 객관적인 판단을 할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남녀의 만남은 상대의 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라기보다는 사랑하기 때문이고, 여성성이 더 우수하다는 건 남성성이 더 우수하다는 주장과 마찬가로 ‘또 다른 편견’일 뿐만 아니라, 지난 1월 마지막 주 ‘알프스를 넘으며 새로 깨달은 변증법’에서 말씀드렸듯이, 남자와 여자의 장점을 합치면 인공 지능은 물론 하느님보다 더 뛰어날 수 있다는 생각에 ‘합성주의(合性主義)’를 만들어 내려고 노력하기 시작했습니다.

자아, 그럼 지난주에 말씀 안 드린 콤플렉스 극복 방법을 말씀드리고 물러나겠습니다. 우선 좋아하는 사람이 생기거든 ‘사랑이 뭔가’ 다시 생각해본 다음 시작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누구나 사랑은 내가 위해주는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상대의 마음을 얻을 때까지만 위해주고 그 뒤부터는 나를 위해달라고 요구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둘째로, ‘거절’이나 ‘유기’ 콤플렉스가 작동하면 그 사람도 나처럼 하루에 몇 번씩 화장실을 가는 사람이라고 생각한 다음 고백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저도 어려서부터 내가 사랑하는 사람은 하늘나라 들판의 천사이거나 그 천사의 손에 들린 꽃이라고 생각하고 멈칫거리다가 좋은 사람들을 놓치고, 기를 써서 얻고도 나랑 똑같은 사람이라는 데 놀라서 헤어졌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셋째로, 사랑하는 사이가 된 다음엔 매일 남자는 페미니스트 연습을, 여자는 안티 페미니스트 연습을 하라고 권하고 싶습니다. 자연스럽게 위해주는 마음이 생기길 기다렸다가는 저처럼 죽음의 문턱에서야 위해주기 시작하고, 요즈음 젊은이들은 몇 번 만나다가 싸우고 헤어지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제가 이 페미니즘 문제를 여러 주에 걸쳐 논의한 건 지금 새 정부가 여성가족부를 폐지하고 미래가족부로 개편할 경우, 기구만 개편하지 말고 합성주의 이론을 개발하고, 그를 가르칠 교육과정과 시스템을 만들어보라고 권유하고 싶어서입니다. 지금 이대로 놔두면 비혼율이 높아지고 출생률은 계속 떨어져 우리 모두가 몰락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기 때문에 건의 드리는 겁니다.

다음 주에는 앞에서 얼핏 소개한, 제 ‘고쳐 쓰기 방법과 이유’를 함께 생각해볼까 합니다. 지금 이 시대의 문학과 학문 모두가 잘못된 방향으로 진행하고 있다는 생각에서 고른 제재입니다.

안녕, 안녕, 꽃피는 4월에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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