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고 동창 록밴드 '루비밴드'

다시 봐도 놀랍다. 환갑 넘은 여고 동창생이 모여 제대로 된 록(Rock) 음악 한번 해보자며 밴드를 결성했다. 시간이 흐른 만큼 실력도 쌓여 전문 밴드의 여유와 면모까지 갖췄다. ‘생기 있고(Refresh) 흔하지 않은(Uncommon), 아름다움(Beautiful)과 젊음(Young)’이란 뜻을 품은 ‘루비밴드’. 세상 빗장이 열리고 무대에 자유롭게 서게 될 날을 위해 오늘도 앰프 전원을 켜고 마이크 앞에 섰다.

왼쪽부터 원경희(드럼), 이오옥(보컬), 문윤실(일렉 기타), 박순희 (베이스). 최근 합류한 최성희(키보드)는 개인 사정으로 연습에 나오지 못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왼쪽부터 원경희(드럼), 이오옥(보컬), 문윤실(일렉 기타), 박순희 (베이스). 최근 합류한 최성희(키보드)는 개인 사정으로 연습에 나오지 못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이화여고 졸업 40주년에 탄생한 ‘루비밴드’
주말 오후, 서울시 송파구의 한 밴드 연습실. 화려하게 차려입은 만 67세 여성 록밴드 루비밴드 멤버가 모였다. 현재 루비밴드 리더이자 보컬 이오옥 씨, 기타리스트 문윤실 씨, 베이시스트 박순희 씨, 새롭게 합류한 드러머 원경희 씨와 반갑게 인사했다. 

이오옥 멤버 교체가 있었어요. 리더이자 드럼 연주자였던 (박)혜홍이가 개인 사정으로 2020년 1월에 탈퇴하면서 경희가 그 자리에 들어왔습니다. 오늘 못 왔지만 두 달 전부터 (류)은순이를 대신해 최성희라는 친구가 건반을 담당하고 있어요. 원래 초기 멤버로 노래 부르던 친구인데 키보드로 다시 루비밴드가 된 거죠.

최근 밴드 상황에 대해 이오옥 씨가 간단하게 설명해줬다. 코로나로 인해 이전처럼 자주 만나지는 못하지만 언제든지 무대에 오를 수 있도록 연습하고 실력을 점검하고 있었다.

 루비밴드는 이화여고 1974년 졸업생이 모여 2013년에 만든 그룹이다. 졸업한 지 40주년을 기념해 특별한 이벤트를 기획하다가 내금강에 함께 다녀온 동창생 모임 ‘금강산 놀순이 팀’에서 밴드를 해보자고 의견을 모았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졸업 기념행사에서 파격적인 무대를 선보인 루비밴드는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지속적인 활동을 예고했다. 
하지만 각 멤버의 자녀가 하나둘 결혼하고 손주가 생기면서 집안일을 돌보는 멤버가 늘어났다. 그러다 보니 밴드가 모이는 일도 줄어들었다. 2018년 이오옥 씨가 보컬로 루비밴드에 들어오면서 새바람을 일으켰다. 

이오옥 졸업 42주년 행사 때 행운권이 당첨돼 무대에 올라갔는데 노래 불러보라고 해서 부른 게 계기였어요. 당시 리더이던 혜홍이가 저에게 전화번호를 물어봤어요. 시간이 좀 지나서 전화를 걸더니 “루비밴드 다시 시작할 건데 보컬 해볼래?”라고 물었어요. 당연히 하겠다고 했지요.

재결성에 앞서 밴드를 정비하고 새로 조직했다. 약사인 베이시스트 박순희 씨는 시간을 쪼개가며 베이스 연습을 했다. 10년 넘게 클래식 기타를 쳤던 문윤실 씨는 일렉 기타를 손에서 놓지 않았다. 재결성 선언 3개월 만에 시니어를 위한 공연 무대에 올라 다시 한 번 실력을 입증했다. 각종 지역 문화축제에 초청되고, 인터뷰도 하는 등 이들은 점점 바빠져 갔다. 2020년 1월, tvN 경연 프로그램 ‘음악동창회 좋은가요’에 출연해 드디어 만방에 존재감을 드러냈다. 

2020년 1월부터 방영됐던 tvN '음악동창회 좋은가요' 방송 캡처. 사진 제공 루비밴드
2020년 1월부터 방영됐던 tvN '음악동창회 좋은가요' 방송 캡처. 사진 제공 루비밴드
tvN '음악동창회 좋은가요' 연예인 패널로 등장한 이수근과 함께 단체 사진. 사진 제공 루비밴드
tvN '음악동창회 좋은가요' 연예인 패널로 등장한 이수근과 함께 단체 사진. 사진 제공 루비밴드

이오옥 시니어 잡지와 인터뷰한 적이 있어요. 그걸 보고 tvN 작가가 키보드 치던 은순에게 연락했고, 출연 섭외가 들어왔습니다. 그래도 방송에 내보내려면 저희 실력을 좀 알아야 하잖아요. 마침 과천교회 행복나눔바자회 공연을 앞두고 있어서 작가들에게 말했더니 관람을 왔더라고요. 

문윤실 당시 방송 제작팀이 찾고 있던 콘셉트에 딱 맞는 밴드가 우리라고 말해줬습니다. 콘셉트에 맞는 팀을 찾아다녔는데 루비밴드 만나고 나서 반갑고 좋다고 말해줬어요.

2020년 1월 15일부터 방송된 프로그램에서 루비밴드는 인기상을 받으며 승승장구하는 모습을 보였다. 하지만 야속하게도 얼마 가지 않아 코로나19가 전 세계를 뒤덮고야 말았다. 

이오옥 뭔가 잘 될 것처럼 방송은 물론이고 다양한 무대에 초청됐습니다. 그런데 코로나 때문에 저희가 올라갈 무대가 줄어들더라고요. 그 비슷한 시기에 경희가 드럼으로 들어왔어요. 우리는 무대가 아니라도 연주하는 게 좋아 만나면 정말 열심히 연습했습니다. 

드럼 연주자 원경희 씨의 첫 무대가 된 중랑 아티스트 랜선버스킹 공연. 사진 제공 루비밴드
드럼 연주자 원경희 씨의 첫 무대가 된 중랑 아티스트 랜선버스킹 공연. 사진 제공 루비밴드

새 멤버 ‘댐핑녀’ 밴드에 활력 불어넣어
관객과 함께 하는 공연은 잠시 잊고, 무대를 준비할 절호의 기회로 삼았다. 각자의 악기 연주를 더욱 섬세하게 다듬으며 호흡을 맞췄다. 새 드러머 원경희 씨도 기존 멤버와 발을 맞추기 위해 최선을 다해 드럼 실력을 높여갔다. 내과 의사로 병원에 재직 중인 원경희 씨는 마침 오전 시간에만 진료를 보고 있었다. 게다가 병원 건물 옆에 드럼학원이 있었다. 드럼을 칠 수밖에 없는 여건이었다. 바로 수강 신청하고 오후 시간에는 드럼 수업에 매진했다. 밴드에 들어와 1년은 드럼에 집중하고 열심히 배워나갔다고 원경희 씨는 말했다.

원경희 이제 드럼 친 지 딱 2년 됐습니다. 저도 ‘금강산 놀순이 팀’ 멤버거든요. 입단 전에도 가끔 친구들이 음악 잘하고 있는지 그냥 안부를 물어보곤 했어요. 제 생각에 다른 친구들도 나 정도 안부는 물어볼 줄 알았는데, 저말고는 없었다고 하더라고요(웃음). 자리 비었다니까 달리 뭐 할 사람도 없는 거 같아서 들어왔습니다. TV에서 다른 사람이 치는 거나 봤지 할 줄 몰랐어요. 그런데 ‘만 시간의 법칙’이란 게 있잖아요. 무슨 일이건 어느 정도 시간을 들이면 못 해낼 게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여성전문채널 GTV의 ‘젊은 그대 나이야가라' 방송 캡처. 사진 제공 루비밴드
여성전문채널 GTV의 ‘젊은 그대 나이야가라' 방송 캡처. 사진 제공 루비밴드

열심히 따라갔지만, 애로사항이 있었다. 루비밴드가 자주 연주하는 미션 곡을 빨리 마스터해야 했다. 

원경희 ‘누구 없소’, ‘Bad case of loving you’, ‘Keep on running’, ‘나는 나비’, ‘마리아’, ‘바운스’는 반드시 연주해야 하는 곡이었습니다. 뭐든 처음 배울 때는 차근차근 배우면서 쉽거나 느린 곡을 쳐야 하잖아요. 드럼을 가르치는 선생님도 난감해 했습니다. 그리고 공연 섭외까지 받았다고 그러더군요. 까짓것 했습니다. 처음에는 정말 악보도 눈에 잘 안 보이고, 페달도 잘 못 밟았다니까요. 

드럼 스틱에 적응해갈 무렵인 그해 8월 ‘중랑 아티스트 랜선 버스킹’ 공연에 드러머 원경희 씨가 데뷔했다. 첫 공연이었지만 인상적인 연주로 루비밴드 일원으로서 자리매김 할 수 있었다. 

문윤실 드럼 연주에서 힘 있게 단단하게 연주하는 것을 ‘댐핑(Damping)’이라고 해요. 경희가 여성 드러머임에도 파워가 넘쳐서 ‘댐핑녀’라는 별명이 붙었습니다. 처음이었는데 멋지게 잘 마쳤습니다.

새 멤버의 성공적인 무대에 힘입어서일까? 또다시 세간의 관심을 받게 됐다. 작년 하반기에는 글로리사랑나눔재단의 후원을 받게 되어 더욱 안정적으로 밴드 활동을 계속했다.

이오옥 후원 덕분에 연습 시간도 늘리고, 도움이 많이 됐습니다. 

새로 개국한 PBS 인터넷 라디오에서도 게스트 섭외가 들어왔다. 개그맨 김주철이 진행하는 ‘기찻길 옆 약방’에 초대 출연해 청취자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PBS 인터넷 라디오 '기찻길 옆 약방' 포스터 앞에서. 사진 제공 루비밴드
PBS 인터넷 라디오 '기찻길 옆 약방' 포스터 앞에서. 사진 제공 루비밴드

박순희 PBS 인터넷 라디오는 약사를 위한 방송국이에요. 제 본업이 약사라서 또 이렇게 루비밴드와도 연결됐습니다. 방송 때마다 멤버 중 두 명씩 나가 좋아하는 음악도 선곡해 듣고 청취자 반응도 좋았어요. 그런데 두 달만 하고 방송을 접었습니다. 마음은 계속하고 싶었지만, 우리 각자 스케줄도 있고, 방송국이 군포라서 좀 멀었어요. 그래도 좋은 경험이었습니다. 루비밴드 이름으로 게스트 섭외된 거잖아요. 

코로나 시국이라지만 비대면 공연도 점차 생겨나더니 다양한 섭외가 이어졌다. 지역 축제, 방송, 캠페인 등 루비밴드가 필요한 곳이라면 기분 좋게 사람들을 만나고 흥겨운 시간으로 자리를 채웠다. 최근 여성전문채널 GTV의 ‘젊은 그대 나이야가라’를 통해 루비밴드 중심의 휴먼 다큐멘터리도 방영됐다. KBS 시니어 프로그램 ‘황금연못’에서도 출연 섭외가 있었지만 잠시 미루는 중이다. 

문윤실 공중파 방송이잖아요. 너무나 많은 사람이 보기 때문에 밴드 능력이 속속들이 드러나게 될 겁니다. 나가더라도 준비를 잘해서 나가야죠. 

무엇보다 키보드로 다시 합류한 최성희 씨를 기다리고 있다. 어딜 가더라도 멤버 전체가 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원경희 성희가 키보드를 한창 연습하고 있어요. 방송 나가면 재미있고 좋을 수 있지만 그만큼 책임감을 갖고 나가야 한다고 봐요. 빨리 나가는 게 중요한 건 아닙니다. 적절한 때가 찾아오겠죠. 

건반 연주자로 함께해 온 류은실(좌) 씨와 새내기 최성희(우) 씨. 사진 제공 루비밴드
건반 연주자로 함께해 온 류은실(좌) 씨와 새내기 최성희(우) 씨. 사진 제공 루비밴드

67세 신인 가수, 프라다옥
보컬인 이오옥 씨는 최근 ‘프라다옥’이라는 활동명으로 솔로가수로서 두 곡의 앨범을 발표했다. 그간 다른 가수의 노래를 불렀으니 루비밴드의 곡이 좀 있었으면 하던 상황이었다. 

이오옥 코로나 때문에 할 일을 제대로 못 한 것 같은데, 꾸준히 뭘 하면서 살았습니다. 제가 SNS로 팬들과 소통을 좀 하는 편이에요. 인스타그램으로 연락을 많이 받아요. 마침 작곡가 문찬영이라는 분과도 소통하게 됐습니다. 송파문화예술축제 때 제가 SNS로 공연 홍보를 했는데, 그걸 보시고 작곡가님이 행사에 오셔서 만나게 됐어요.

루비밴드 음악을 만들었으면 했는데, 여건이 좀 안 맞아 ‘프라다옥’의 개인 솔로로 방향을 잡았다.

이오옥 인디락 스타일의 ‘레츠 고우’와 발라드곡인 ‘같은 하루’입니다. 작사는 제가 했어요. 아들, 딸과 함께 유튜브에 올라갈 영상도 제작했고요. 노래의 인기 여부를 떠나 60 넘어서 신인가수가 된 것도 굉장한 용기지 않나요. 저도 언제 목소리가 변할지 모르고요. 그리고 다른 장르도 아니고 발라드와 록에 도전한 것은 행복한 일입니다.

송파문화예술축제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는 루비밴드. 사진 제공 루비밴드
송파문화예술축제공연에서 연주하고 있는 루비밴드. 사진 제공 루비밴드

언젠가 루비밴드만의 노래도 나왔으면 한다. 박순희 씨는 마음속으로 노래 제목을 이미 정해 놨다고 했다. 

박순희 우리 여자들 이야기를 담아보고 싶어요. 제가 약국에서 일하다 보니 참 다양한 분들을 만납니다. 할머니라서 할 수 없다는 얘기를 참 많이 들어요. 제 눈에 할머니 아닌 분들이 와서 기운 없는 얘기를 하세요. 좀 희망이 담긴 노래를 하고 싶습니다. 뭘 시작할 수도 있는 나이라고 얘기해주려고요. 우리도 이렇게 밴드 활동하잖아요. 그리고 정식 데뷔한 가수를 모시고 있는 시니어밴드랍니다. 우리는 절대 멈추지 않을 거예요.

합주 연습실 이용자 중 어딜 가든 가장 나이가 많은 루비밴드. 하지만 방음벽으로 완벽하게 차단된 연습실로 들어가는 순간 나이가 무색하게 신나게 연주한다. 

이오옥 씨는 마지막으로 데일리임팩트에 “꿈을 가지고 있으면 나이가 들어도 할 수 있다는 걸 알리고 싶다”머 “우리가 이렇게 시작했으니 나이 들어서 주저하는 모든 분에 동기 부여가 됐으면 한다”고 마무리했다. 

꿈이 있는 그대들에게 나이는 숫자일 뿐. 무대를 찢는 그날까지 루비밴드는 오늘도 신나게 로큰롤! 

함께 맞춰 입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빨갈 루비색으로 맞춰 입고 나온 루비밴드. 이오옥 씨는 모자에 빨간색 테두리가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함께 맞춰 입자고 말하지도 않았는데 빨갈 루비색으로 맞춰 입고 나온 루비밴드. 이오옥 씨는 모자에 빨간색 테두리가 있다. 사진 권해솜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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