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어령 전 문화부장관님을 보내며

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이 세상을 떠났을 때, 처가 쪽의 먼 친척 항해(沆瀣) 홍길주(洪吉周, 1786~1841)는 “수만 권의 서고가 무너졌다.”[數萬卷書庫 頹矣]고 슬퍼했습니다. 다산의 회혼(결혼 60주년)을 축하하는 글에 “다산 정대부는 박식함이 우주를 꿰뚫고 깨달음이 미세한 것에까지 투철했다.[茶山丁大夫 博識貫宇宙 融悟徹纖微] 쌓아둔 것이 드넓고 다룬 분야가 많아 어떤 것이든 환히 알지 못하는 것이 없었다.”라고 썼던 사람입니다.

2월 26일 이어령 초대 문화부장관의 부음을 듣고 맨 먼저 생각난 것이 이 말이었습니다. 이어령 선생님은 항해의 찬탄 그대로인 분입니다. 1934년생이니 올해 우리 나이 89세. 암과 투병이 아닌 ‘친병(親病)’을 하다가 2월의 끝자락에 영면에 들었습니다.

 이어령(1934~2022). 타계 5년 전인 2017년 가을의 모습이다  이투데이 고이란 기자
 이어령(1934~2022). 타계 5년 전인 2017년 가을의 모습이다  이투데이 고이란 기자

그분을 처음 만난 것은 2002 한·일월드컵을 앞두고 한국일보사와 일본 요미우리(讀賣)신문사가 공동 주최한 한일 교류좌담회를 준비할 때입니다. 나는 당시 한국일보 편집국 국차장으로서 1999년 11월부터 2002년 5월까지 여섯 번 양국을 오가며 좌담회를 진행했고, 한국 측 좌장을 맡은 선생님은 일본 측 좌장 우메하라 다케시(梅原猛, 1925~2019) 당시 일본펜클럽 회장과 함께 두 나라 지식인 교류의 전범을 보여주었습니다.

소문 그대로인 해박한 지식과 달변·다변에 놀라고, 기획의 담론부터 보도까지 전 과정의 중요한 요소요소를 배려하는 감성에 감탄하면서 천재가 어떤 건지, 지성이 무언지, 도저(到底)하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보고 배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그 뒤 언론사를 옮기거나 일이 있으면 수시로 만나 뵙고 인터뷰를 하거나 도움을 받았습니다. 특히 내가 자유칼럼그룹의 공동 대표로서 창립 2주년(2007) 축사를 부탁했을 때 ‘마르지 않는 붓’이라는 글로 우리들에게 튼실한 등뼈를 심어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주었습니다. 일본 사무라이들이 집[屋敷·야시키] 앞에 작은 모래더미를 두고 급한 일이 생길 때 칼로 모래더미를 쑤셔 녹을 벗기고 바로 출진하듯 붓이 마르지 않고 펜이 녹슬지 않게 늘 갈고 닦으라는 당부였습니다. 

 2014년 5월 이어령 선생님과 필자.
 2014년 5월 이어령 선생님과 필자.

2014년 5월, 내가 창립한 한국언론문화포럼의 1주년 행사 때는 ‘언론과 문화는 어떻게 만나야 하나’라는 주제로 알찬 특강을 해주었습니다. 그리고 이미 병이 깊어진 2017년 10월에는 이투데이 주필로서 인터뷰를 하러 가 컴퓨터 7대가 아스라이 펼쳐지고 온갖 서적이 책상에 즐비한 서재의 장관을 보게 해주었습니다.

스스로 ‘우물을 파는 자’라고 말했던 선생님은 늘 청신하게 솟아나는 샘물 같았고, 여여(如如)하고 장구한 현하(懸河) 같았습니다. 물이 솟아나 온갖 생명을 적시고 기르면서 땅을 휘감고 돌아 드디어는 대해로 이르는 모습을 보는 듯했습니다. 좌중을 이끄는 유머도 마르지 않는 샘 같았습니다. 내가 유일하게 선생님보다 나은 건 술뿐입니다.

선생님을 형용하는 찬사가 많지만, 시인 고은의 ‘만인보’가 적실(的實)합니다. “한국에 있으면 그대가 세계였다/세계 어디 가 있으면 그대가 한국이었다/단 한 번도 그대는 뒤가 아니다/언제나 그대는 맨 앞이다//아날로그 스무 살도/디지털 예순 살도/디지로그 백 살도/그대의 불면증의 연주 끝날 수 없다.”

10여 일 전 꿈에 선생님을 뵈었습니다. 어떤 한옥의 마루에 빨간 마고자 차림으로 앉아서 소매 속에 두 손을 넣고 먼 산을 바라보던 선생님은 오른쪽으로 고개를 돌려 마루 끝에 앉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뭐라고 말을 했습니다. 그러더니 만화처럼 팔을 길게 뻗어 내 앞쪽의 무슨 벌레인가를 잡았는데, 그다음은 생각나지 않습니다. 꿈을 꾼 날 연락 한번 드리고 싶었지만 끝내 하지는 못했습니다.

그분이 가시던 26일 낮 12시 30분 무렵, 나는 당 시인 유상(劉商)의 ‘왕영을 보내며’[送王永]를 읽고 있었습니다. 처음 접하는 시였습니다. 그때 하필 왜 그 시를 읽게 됐는지... 이게 무슨 일인가 싶었습니다.

그대 가면 봄 산을 뉘와 함께 노닐까 君去春山誰共遊

새 울고 꽃 지는데 물은 하염없이 흐르네 鳥啼花落水空流

지금 냇가에서 그대를 보내노니 如今送別臨溪水

뒷날 그리우면 이 물가로 오겠네 他日相思來水頭

마지막 행은 그대에게 오라는 건지, 내가 오겠다는 건지 좀 어렵고 역자마다 번역이 엇갈리지만, 나는 위와 같이 옮기고 싶습니다.

봄이 오는데 선생님은 먼 길을 떠나가셨습니다. 이 세상 모든 것에 대해 듣고 싶은 말씀이 많고 무엇을 어떻게 생각해야 하는지 알고 싶은 게 많아도 이제는 다시 만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을 알고 가까이 접할 기회가 있었다는 것만으로도 행복했습니다. 하늘에서도 새로운 영성과 감성의 우물을 파 목마르고 갈급한 영혼들에게 맑고 시원한 물을 맛보게 해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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