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경민족이 조급한 까닭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지난주에는 지금 우리의 ‘해체‘가 농경문화 때문이라고 이야기하고, 그 까닭을 말씀드리지 않고 이번 주로 미뤘지요?

그런데 편집부를 통해 아주 중요한 조언을 해주시는 분들이 있었습니다. 한 분은 ‘총ㆍ균ㆍ쇠(Guns, Germs, and Steel)’(1999)의 저자 다이어몬드(J. M. Diamond, 1937~ ) 교수의 이론을 넌지시 소개하면서 우연히 겪은 일화를 일반화하려고 하는 게 아닌가 살펴보라고 하시고, 또 한 분은 프랑스가 영국보다 산업화가 뒤늦은 농경국가였는데 식사 시간이나 여름휴가를 보면 오히려 여유만만하던데, 농경문화를 ‘빨리빨리’로 보는 건 잘못 본 게 아니냐는 귀띔이었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그의 저서 '총, 균, 쇠'.
 재레드 다이아몬드와 그의 저서 '총, 균, 쇠'.

고맙습니다. 그 조언을 전달 받는 순간 너무 황홀해 바다 건너 북쪽 하늘을 바라봤지요. 몸도 정신도 여유가 없는 제가 이 연재를 받아들인 것은 여러 분들의 귀띔을 듣고 평생 마련하고 싶은 ‘동서 시학(詩學)’을 합쳐 새로운 시학을 만들고 싶어서였는데 ‘집단 지성’이 작동하면서 도와주기 시작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저도 두 분의 조언처럼 본 대학 그 교수님의 말씀을 너무 일반화하는 게 아닌가 하고, 그 말씀을 들은 뒤부터 환경론에 대한 책들을 읽기 시작했지요. 그리고 시간이 나는 대로 독일 내는 물론 유럽 대륙과 바다 건너 영국과 스코틀랜드까지 구경하면서 생각해봤지요..

이와 같이 유럽 사회에서 환경과 문화 관계를 주목하기 시작한 것은 19세기 중엽부터더군요. 그러니까 실증주의 철학자 콩트(A. Comte, 1798~1857)와 진화론을 발표한 다윈(C. R. Darwin, 1809∼1882)부터더군요. 그리고 이런 환경론은 자연환경이 인간의 체질은 물론 의식구조와 생활방식과 문화를 결정한다는 ‘환경 결정론’, 선택의 가능성을 제공할 뿐 이용자의 의식구조와 능력에 따라 달리 이용한다는 ‘환경 가능론’, 거꾸로 문화가 환경과 개인을 지배한다고 보는 ‘문화 결정론’으로 나눠지더군요.

   오퀴스트 콩트(왼쪽)와 찰스 다윈.
   오퀴스트 콩트(왼쪽)와 찰스 다윈.

하지만 동의할 수 없데요. 현대로 접어들면서 거주 지역을 바꾸는 사람이 많고, 그렇게 바꾸면 환경도 문화도 바뀐다는 사실을 발견하고. 그래서 겉으로 드러나지는 않지만 바뀌지 않을 ‘문화 인자(meme)’를 찾기 시작했지요.

고민하다가 ‘주업(主業)과 주식(主食)’이 아닐까 생각하기 시작했지요. 주업과 주식이 같은 사람들은 사고와 전달의 수단인 같은 언어를 쓸 테고,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도 비슷한 지역으로 이동할 테고, 그렇게 모여 사는 모습이 문화고 역사고, 그 과정에서 보고 듣고 느낀 걸 표현한 게 예술이고, 세월이 흐르면 문화적 유전인자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데 말입니다. 제가 이런 착상을 한 것은 2004년 8월,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한국식당에 갔다 돌아올 땝니다. 지구 반대쪽인 독일까지 와서 한겨울도 아닌 한여름에 김치찌개가 먹고 싶어 2Km 넘는 곳까지 걸어갔다 걸어온다는 생각을 하면서 참 신통한 생각을 했다고 제 머리를 쓰다듬어주다가 그만 길을 잃고 말았습니다.

아무리 집으로 오는 길을 찾아도 얼마쯤 걷다보면 제자리로 되돌아오데요. 유럽의 도시들은 우리처럼 직사각형 블록의 ‘시티(city) 형’이 아니라 도심 한복판에 성당, 관공서, 은행, 시장을 배치하고, 그 둘레에 주택을 짓는 ‘타운(town) 형’이라서.

당황스럽더군요. 택시는 주차장이 아닌 곳에서는 만날 수 없고, 밤 아홉시만 되면 가족들과 함께하는 풍조 때문에 평양 거리처럼 썰렁해 물을 사람도 없고.

밤하늘을 바라보며 히죽이 웃었지요. 다행히 저편에서 노인 한 분이 밤 운동으로 자전거를 타고 오시대요. 물었지요. 자전거에서 내려 곧바로 몇 백 미터 가서 좌측으로 몇 십 미터, 우측으로 몇 미터 가라고 아주 자세하게 가르쳐주시다가 그래도 안심이 안 되는지 집까지 데려다 주겠다고 하시는 겁니다.

얼마쯤 가니까 아는 길이 나오데요. 이제 혼자 갈 수 있다고 했더니 당신이 현관 안으로 들어가는 걸 봐야 안심하겠다며, “노스 코리아 범, 범!” 하면서 한 열흘 전에 일어난 북한 ‘신의주 역 폭파 사건’을 말하다가, 영어를 잘못해서 미안하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날 저녁부터 세계 문화의 유형을 주식과 주업을 기준으로 나누기 시작했지요. 그 결과 인도는 ‘혼업(混業)과 혼식(混食)’의 문화권이고, 인도 동쪽은 ‘농경(農耕)과 곡식(穀食)’, 중동으로 이어지는 서쪽과 유럽으로 이어지는 북쪽은 ‘유목(遊牧)과 육식(肉食)’ 문화권으로 나눌 수 있겠더군요. 그 이외 수렵과 채취와 어로 문화권이 마음에 걸렸지만, 문화적 세력이 매우 약한 곳인 데다가 다른 나라 언어를 공용어로 쓰는 곳이라서 제가 하려는 시학 연구에서는 굳이 고려할 대상이 아니라는 생각에 접어뒀지요.

이런 분류가 타당한가 인도를 중심으로 다시 전 세계의 언어분포를 살펴봤지요. 인도에서 코카서스 산맥을 넘어 유럽까지는 ‘인도-유럽어’ 어족(語族)이고, 이란 고원 너머 중동까지는 ‘아프로-아시아’ 어족이고, 천산 산맥 너머 동쪽은 ‘중국–티베트’ 어족이고, 인도 북쪽 몽골에서 우리나라를 거쳐 일본까지는 ‘알타이’ 어족인 겁니다.

그래서 그런 어족의 특성과 각 지역의 가치관 내지 의식구조를 알아보기 위해 주된 종교와 세계관을 살펴봤지요. 인도는 힌두교, 자이나교, 불교, 시크교를 탄생시킨 ‘다신교’ 지역이더군요. 그리고 그 옆 아래쪽 동남아 국가들은 ‘불교와 범신론’ 지역이고, 동쪽 중국에서 우리나라 일본까지는 ‘불교, 유교, 노장 사상과 인본주의’ 지역이고, 서쪽인 중동은 이슬람, 북유럽은 원래 다신교 지역이었는데 로마 황제 네로(37∼68) 이후 기독교가 국교로 자리를 잡고 ‘신본주의적 세계관’으로 바뀌었더군요.

왜 이렇게 주업에 따라 세계관이 달라지는가 인도부터 살펴봤지요. 한여름에도 눈과 얼음이 미끄러져 내리는 히말라야 산맥에서부터 열대 다우림으로 이어지는 기후인 데다가, 고원과 평야와 밀림과 섬으로 이어지는 다양한 지리적 조건 덕분에 안 나오는 산물이 없고, 그걸 탐해 BC 15세기경부터 20세기 중반까지 3500년 동안 유럽인들까지 침입해오고, 가난한 인접 국가의 주민들이 이주해와 다민족, 다종교, 다언어의 사회가 됐더군요.

다시 인도 북쪽과 서쪽의 유목 지역을 살펴봤지요. 이 지역은 화산암이 아직 덜 풍화된 사력질 토양인 데다가 날씨가 건조해 목초조차 자라지 않는 사막이거나 초원지대더군요.

이런 지역에서 5인 안팎의 직계 가족 생계를 유지하려면 일정한 기간마다 말 15마리, 낙타 2마리, 소 6마리, 양 50마리 이상을 몰고 몇 백 Km에서 몇 천 Km까지 새로운 초지를 찾아 이동해야 하고, 부모 형제끼리도 일정한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아야 한다는 겁니다. 그리고 이동하다가 마실 물이 떨어지면 타고 가던 말의 정맥을 잘라 한 마리당 1.5L씩 피를 마시고, 식량이 떨어지면 한 놈을 잡아 모닥불에 구워먹고, 그마저 떨어지면 인육을 먹는…….

이런 상황에서 이동하다가 갑작스러운 날씨 변화나 험한 지역을 만나면 신이 놓은 덫이 아닌가 기도할 수밖에 없겠지요. 물론 농경민족도 갑작스러운 자연의 변화를 만나지요. 그러나 자기 집에서 가족을 비롯해 이웃과 함께 만나고, 잠시 후에는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고, 농사에 도움이 될 것임을 알기에 오히려 반가워할 수밖에 없겠지요. 서양의 신화와 동화에서 산과 숲이 ‘악마의 소굴’로 묘사되는 반면에, 한자 문화권에서 신선들이 사는 무릉도원(武陵桃源)으로 보고, 이런 산과 물을 좋아하는 것(樂山樂水)을 선비나 군자가 즐겨야 할 풍류라고 보는 것도 이와 같은 ‘장년기 산과 노년기 산’의 차이 때문이라고 생각이 들더군요.

이런 환경과 주업의 차이는 인간의 의식구조와 가치관으로 이어지더군요. 가축을 몰고 이리저리 이동해야 하는 사람들은 ‘힘’과 ‘분석적 능력’을 중시할 수밖에 없겠더군요. 힘이 없으면 좋은 곳을 빼앗기고 죽음의 나락으로 떨어질 수밖에 없을 테니까요. 이 세상 사람들을 다스린다는 올림포스의 신들이 부모와 자식 간은 물론 형제끼리도 죽이고 죽으면서 경쟁을 벌이는 것도 이 때문이더군요.

하지만 함부로 힘을 쓰면 혼란에 빠지겠지요. 그래서 서구인들의 스승이라고 할 수 있는 소크라테스가 “악법이라도 국법이라면 따라야 한다”며 ‘법’과 ‘질서’를 강조하고, 근대 이전까지 무술이 능한 사람을 ‘기사(騎士)’, 그 이후 능력이 있으면서 질서를 존중하는 사람을 ‘신사’라며 존경하고, 규칙을 지키면 약자를 살해해도 무방한 ‘결투 제도’를 허용해온 것도 이런 가치관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하지만 농경민족은 가급적 이웃과 화합해야 합니다. 농업은 마을 사람 전체가 협조해야 하는 산업이고, 이웃으로부터 외면을 당하면 논밭을 지고 이사 갈 수도 없으니까요. 농경 문화권에서 자연의 질서를 ‘도(道)’로 보고, 인내와 겸손을 미덕으로 삼으며, 주변과 조화를 이루는 사람은 ‘군자’, 현실의 이해를 초월하는 사람은 ‘도인’이라며 추앙하고, ‘삼강오륜(三綱五倫)’을 공동의 윤리로 내세운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렇게 추론하는 과정에서 이해 안 되는 것은 일본의 문화와 역사였습니다. 우리와 같은 인종이고, 어족이고, 주업도 같은데 20세기 초반까지 ‘신도(神道)’라는 국교가 있었고, 서구의 교황과 비슷한 천황제를 유지하면서 독립국가라고 할 수 있는 260개의 번(藩)과 세습제 제후가 다스리는 나라였고, 2차 대전 때 서구 유목 국가의 대표라고 할 수 있는 독일과 동맹을 맺고 ‘가미가제(神風)’라는 인간 폭탄 부대까지 조직한…….

그런데 어쩌지요? 벌써 예정한 지면이 훨씬 넘었네요. 지난주에 미뤄둔 제 견해를 말씀 드리지 않으면 무례일 테니, 일본이 여타 민족과 다른 것은 전 인류의 최초 세계관은 신본주의였을 테고, 그 시절에 일본인들이 일본 열도에 입도(入島)했을 테고, 섬이라는 ‘닫힌 지역’이라는 데 원인이 있다고 말씀드리고, 지난주에 미뤄둔 농경민족이 ‘빨리빨리’인 까닭을 말씀드리고 물러가겠습니다.

정말 말씀드리기 싫습니다만, 유목민처럼 뚝뚝 떨어져 사는 게 아니라 모여 살기 때문에 내심으로는 시기와 질투와 경쟁의식이 더 심하고, 현대로 접어들면서 더 심해진 것은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삼강오륜을 서구 사회에서 출발한 ‘민주주의’ 내지 ‘자유’라는 이름으로 부정하기 때문이라는 게 제 생각입니다. 댓글이나 메일로 모자라는 생각을 보태주시길 ‘복망(伏望)’하며 이만 물러가겠나이다.

다음 주 주제는 ‘농경민족인 우리 어법’을 함께 살펴볼까 합니다. 목요일에 또 만나요, 안녕, 안녕!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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