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데일리임팩트 주필

-김명수 대법원장은 지난해 3월 "최근에 저의 불찰로 법원 가족 모두에게 실망과 걱정을 끼쳐드린 점에 대해 다시 한 번 사과의 말씀을 드립니다.“라고 말했다.

-천대엽 대법관 후보자는 지난해 4월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지방세를 28차례 늦게 납부하고, 스쿨존 속도 위반으로 과태료를 부과 받은 데 대해 “불찰은 모두 제게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7월 김의겸 열린민주당(당시) 의원은 과거에 기자들이 경찰을 사칭해 취재하는 일이 흔했다고 말한 것을 “제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조국 법무부 장관 후보자는 2019년 9월 국회 인사청문회를 앞두고 기자들에게 "불찰이 있었던 점은 몇 차례라도 사과 말씀 올리겠다"고 말했다.

불찰(不察)은 사전에 ‘조심해서 잘 살피지 아니한 탓으로 생긴 잘못’이라고 나온다. 불찰을 언급한 공인들의 위와 같은 사과 발언은 적절한 것일까. 우리나라에서는 유명 연예인이나 스포츠 스타들도 다 공인으로 치부되는데, 그런 공인들의 경우도 살펴보자.

가수 홍진영은 2020년 11월 논문 표절 의혹에 대해 “이 모든 게 저의 불찰이고 잘못”이라며 석사·박사 학위를 반납하겠다고 밝혔다. 땅 투기 의혹에 휘말린 축구스타 기성용도 지난해 4월 모두 자신의 불찰이라고 했고, 개그맨 정형돈도 2013년 6월 ‘함량 미달 돈가스’에 자신의 불찰이라고 사과했다.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어법

‘불찰’이 유행이다. 유명한 이들이 자기 잘못으로 생긴 문제를 수습하는 과정에서 ‘유식하게’ 끌어다 쓰는 말이다. 그러나 잘못했다는 게 아니라 살피지 못했다는 것이니 사실은 책임을 인정하지 않는 비겁한 어법이다. 본질적인 의미의 잘못이 아니라 ‘주의를 기울여 챙겨야 했는데 그러지 못한 데서 생긴 일’이라는 뉘앙스다. 온전한 사과가 아니다.

찰찰불찰(察察不察)이라고 한다. 흔히 “찰찰이 불찰이다.”라고 쓰는 말인데, “밤새 궁리한 꾀가 제 죽을 꾀”라는 속담과도 통한다. “잘못했습니다.”라고 분명하게 말하면 될 것을 “제 불찰입니다.”라고 사과 시늉만 하다가 오히려 반감을 사는 경우다. “장고 끝에 악수”라는 바둑 격언과 비슷하지만, 엄밀히 말하면 장고가 아니라 잔꾀 끝에 악수라고 해야 할 것이다.

  윤석열(왼쪽)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금 '불찰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윤석열(왼쪽) 이재명 대선 후보는 지금 '불찰 경쟁'을 하고 있는 것 같다. 사진 구혜정 기자

대선 후보와 그 아내들도 마찬가지

대선 후보와 그 아내들도 예외가 아니다. 정책 경쟁이 아니라 ‘불찰 경쟁’을 하고 있으니 안 그래도 비호감인 이번 대선을 더 싫어지게 만든다.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의 아내 김건희 씨는 지난해 12월 허위이력 의혹 등에 대해 고개를 숙이면서 '죄송'이나 '송구'는 6번, '잘못'이나 '불찰'은 5번 반복해서 말했다. 윤 후보도 문제가 터질 때마다 불찰을 언급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의 아내 김혜경 씨는 지난 9일 ‘불법 의전’ 의혹과 법인카드 사용(私用) 등이 모두 자신의 불찰이라고 했지만, 구체적 잘못은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 잡아봐라”하고 약을 올린 거라는 비아냥(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의 말)을 샀다. 이 후보 역시 불찰이라는 말을 반복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1월 “이 모든 (국정농단)사태는 저의 잘못이고, 저의 불찰로 일어난 일”이라며 “저의 큰 책임을 가슴 깊이 통감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 경우는 불찰이라는 말이 제대로 쓰였다고 본다. 자신의 잘못과 함께 대통령으로서 제대로 살피지 못한 점을 인정했다.

문재인 대통령은 그동안 부동산 문제를 비롯해 추미애 법무부 장관과 윤석열 검찰총장의 갈등 등에 대해 여러 번 사과했지만 불찰이라는 말은 한 번도 쓰지 않았다. 국정 최고 책임자이니 온갖 문제를 살피지 못한 불찰을 언급할 만한 위치에 있는데도 전혀 그러지 않았다. 왜 그랬을까. 그 말을 모르나. 아니면 평소에 모든 일을 잘 살피지 않은 탓으로 해석해야 할까.

‘맹자’ 진심 상(盡心上)에 이런 말이 나온다. “행하면서도 밝게 알지 못하고 익히면서도 살피지 못한다. 그러므로 평생토록 행하면서도 그 도를 모르는 자가 많은 것이다.[行之而不著焉 習矣而不察焉 終身由之而不知其道者衆也]” 공인들은 맹자의 이 말씀을 불찰에 관한 깊은 성찰, 넓은 명찰을 주문하는 글로 받아들여야 할 것이다.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지 못하고 사람이 지나치게 따지면 따르는 사람이 없다.[水至淸即無魚 人至察即無徒]"는 말도 있다. 불찰을 옹호하는 말로 들릴 수 있겠지만, 공인이라면 오히려 이런 말을 들어야 마땅하다.  

2주 후면 20대 대선인데, 선거가 끝난 뒤에도 대선 후보들은 불찰이라는 말을 할까. 설마 대선에 진 것도 불찰 때문일까. 어떤 경우든, 어떤 위치에 있는 사람이든 이제 “불찰”을 삼가라. 보고 듣기에 갈수록 역겨워지는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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