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두유(me too)에 안 걸리는 법

尹石山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尹石山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창밖 매화나무 가지에 쌓인 봄눈이 바람이 불 때마다 솨르르 쏟아지네요. 그래 설 연휴는 잘 보내셨나요?

이번 주에는 ‘젠더(Gender)’와 ‘나두유(Me too)’ 문제를 함께 논의해보자고 했지요? 자칫하면 시비에 휘말릴 수 있는 주제를 같이 논의해보자고 한 것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면 해체는 막을 수 없다는 생각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제를 객관적으로 논의하려면 오스트리아의 정신과 의사인 지그문트 프로이트(S, Freud, 1856~1939)의 견해부터 살펴봐야겠네요. 그는 인간의 정신을 세 영역으로 나누고, ‘의식(意識)’ 속에는 현실의 경험에 의해 움직이는 자아(ego), ‘전의식(前意識)’ 속에는 교육과 종교적 가르침에 의해 형성된 초자아(super-ego), 무의식 속에는 리비도(libido)에 의해 움직이는 ‘원초적 자아(archaic ego)’가 들어 있다고 주장합니다.

하지만, 라틴어의 ‘애욕’에서 빌려온 리비도는 ‘성욕’만 의미하는 건 아닙니다. 플라톤이 말했던 ‘에로스’를 비롯해 기독교적 사랑인 ‘아가페’, 생존 욕구와 정반대인 ‘죽음의 본능’까지 포함된다고 합니다. 남자가 기를 쓰고 출세하려고 하는 것도, 여자가 예쁜 얼굴에 다시 화장을 하는 것도 모두가 이 리비도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서라고 합니다.

이와 같이 ‘쾌락의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리비도를 그냥 방치하면 사회적 제재를 받을 수밖에 없겠지요? 그래서 현실적인 자아와 도덕적인 초자아가 통제하고, 그 때문에 콤플렉스(complex)가 형성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콤플렉스라고 다 나쁜 건 아니라고 합니다. 근친상간적인 속성을 지닌 ‘오이디푸스 콤플렉스’와 ‘엘렉트라 콤플렉스’는 성의 정체성을 확립하도록 만들어준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성의 부모를 독차지하고 싶어 하는 욕망 때문에 동성의 부모를 닮으려 하는 ‘동일시(同一視) 현상’이 일어나고, 사춘기로 접어들어 그게 잘못이라는 걸 깨달으면서 비슷한 짝을 찾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이와 같이 출발한 심리 연구를 같은 방향에서 보완해 체계화한 사람이 스위스 출신 칼 구스타프 융(C. G. Jung, 1875~1961)입니다. 그는 1907년부터 프로이트와 함께 5년 동안 무의식을 연구하다가 노이로제에 대한 견해 차이로 국제정신분석학회 회장에 선출되었으면서도 탈퇴해 분석심리학을 연구합니다.

그러면서 프로이트가 설정한 무의식을 ‘집단무의식’과 ‘개인무의식’으로 나누고, 집단무의식 속에는 인류가 원시시대부터 욕망을 억누르고 살아온 과정에서 형성된 ‘원형’이 들어 있다면서, 신화비평의 이론적 근거를 제시합니다. 그리고 개인 무의식 속에 담겨 있는 노이로제는 불쾌하고, 비도덕적이며, 성적 내용을 담고 있는 ‘연상 작용’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이들과 같은 관점에서 출발해 전혀 다른 관점을 제시한 사람이 ‘욕망의 이론’을 주장한 자크 라캉(J. Lacan, 1901~1981)입니다. 그는 파리 생트 안 병원에서 정신병자들을 치료하면서 ‘편집증’에 대한 논문을 써 박사학위를 받고, 무의식을 ‘들끓는 가마솥’과 같다고 한 프로이트와 달리 “언어처럼 구조화되어 있다”면서 그 구조를 밝히면 인간의 내면세계를 이해할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왼쪽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자크 라캉.
 왼쪽부터 지그문트 프로이트, 칼 구스타프 융, 자크 라캉.

그러면서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대신 언어 습득 과정을 주목하고, 정신의 발달 단계를 ‘상상계’와 ‘상징계’로 나누고, 자아는 탄생과 더불어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 상징계로 접어들면서 형성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생후 6개월부터 18개월까지는 자신과 타자를 어렴풋이 구분하는 ‘거울의 단계’로, 거울에 비친 자신의 모습이나 같은 또래의 다른 아이를 나라고 착각한다는 겁니다.

그러나 그는 이 ‘거울의 단계’를 제시하면서 1938년에 국제 정신분석학회로부터 제명을 당하고, 그래서 ‘파리 프로이트 학교’라는 연구회를 조직해 매주 병원 안에서 세미나를 열다가 에콜 노르말로 옮겨서도 계속 엽니다.

이와 같은 상상은 어머니와 아이 사이에서도 일어난다고 합니다. 아이가 모태에서 분리되는 순간 어머니와 합일하려는 욕망을 갖고, 어머니도 그러리라고 상상하고, 가부장사회에서 어머니들이 남아를 선호하는 것도 아이의 고추를 남편의 남근과 동일시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아이는 언어를 통해 타자와의 관계를 이해하면서 상징계로 진입하고, 주체성을 확립하기 시작한다고 합니다. 이 시기에는 ‘아버지의 법’에 복종해야 하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하고, ‘남근’은 아버지의 권위의 상징으로, 가족 내의 위치는 아버지에 의해 정해지고, 어떤 남자도 아버지의 위치를 대신할 수 없다고 생각하며, 어머니와는 ‘삼자 관계’로 바뀐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결핍’은 본질적인 것이라서 끊임없이 욕망이 일어나며, 완전히 채울 수 없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니까 남자들은 여자만 소유하면 더 이상의 욕망이 없으리라고 생각하지만 또 다른 욕망이 생기고, 그 여자는 ‘실재’가 아니라 ‘허상’이며, 이에 대한 집착이 불행의 원인이 되고, 어울리지 않는 상대를 선택하여 불행해진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대부분의 정신질환은 ‘선택의 오류’에서 비롯된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주체가 상징계의 질서에 순응하려면 타자로부터 인정을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그러자면 타자의 욕망부터 알아야 하고, 자신도 그에 알맞은 욕망을 가져야 한다며, 정상적인 자아는 ‘순응하는 자아’가 아니라, ‘욕망을 포기하지 않는 자아’이므로 치료의 목표는 포기한 욕망을 되살려내는 거라고 주장합니다.

그의 업적은 혼란스러운 무의식의 세계를 언어의 발달 단계와 연관지어 구조적으로 보았다는 점입니다. 그의 이런 연구는 노드롭 프라이(1912~1991)와 필립 휠라이트(1901~1970)가 이어 받아 원형비평으로 발전시키고, 구조주의 언어학과 결합함으로써 구조심리학을 엽니다.

1970년대부터 세력을 떨치기 시작한 페미니즘 역시 프로이트와 융의 견해를 바탕으로 성과 사회의 관계를 살피되, ‘주변부’로 보아온 여성의 위치를 남성과 동등하거나 우월하다고 생각하는 점에서 차이가 납니다.

하지만, 페미니즘의 연원은 17세기 후반에 일어난 청교도혁명과 명예혁명 직후로 잡아야 합니다. 이 두 혁명을 거치는 동안 평민의 권리와 여권 신장을 주제로 하는 작품과 논설들을 출발점으로 잡아야 합니다.

그러나 18세기로 접어들면서 상업주의가 발달하고, 자본가들이 ‘장식적인 부인’을 이용해 신분을 과시하려는 풍조가 만연되면서 고귀한 여성일수록 연약하고 섬세해야 한다는 가부장적인 이데올로기가 자리를 잡고, 그런 속박을 ‘숙녀’ 대접을 받는 대가로 받아들이면서 다시 흔들리기 시작합니다. 그러다가 18세기 말 유럽 전역에 계몽주의와 만민평등의 사상이 번지고, 미국의 독립과 프랑스 혁명으로 평등사회의 실현에 대한 기대가 고조되자 다시 고개를 들기 시작합니다.

이와 같이 출발한 페미니즘은 지역에 따라 영미와 프랑스 페미니즘, 논리적 근거에 따라 생물학적, 언어학적, 심리학적, 문화적 페미니즘, 여권 확보 방법에 따라 자유주의적, 급진적, 마르크시즘적, 실존주의적, 포스트모던니즘적 페미니즘, 시기에 따라 전기 중기 후기 페미니즘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꼭 생각해보라고 권유하고 싶은 것은 미국의 문화적 페미니스트인 캐롤 길리건(C. Gilligan, 1936~)의 주장입니다. 남성은 상황에서 독립해 옳고 그름을 따지면서 ‘시비의 윤리(ethic of right or wrong)’에 의해 행동하고, 여성은 관계를 중시하면서 ‘보살핌의 윤리(ethic of care)’에 의해 행동한다는. 이 세상은 이 두 윤리에 의해 유지되고 운영되기 때문입니다.

왜 ‘나두유’에 안 걸릴 방법을 귀띔해주겠다더니 계속 딴 소리만 하느냐고요? 네, 그러지 않아도 말씀드리려고 하고 있습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꽤 껄떡대는 인간이었습니다. 그러면서도 나두유에 안 걸린 것은 어머니의 가르치심 덕분이었습니다. 그러니까 중학교 2학년 땝니다. 우리 학교는 남녀 공학이었는데, 저는 우리 반 C라는 여학생을 참 좋아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밤을 꼴딱 새우면서 좋아한다든지 사랑한다는 소리는 못하고 “밤이 깊었습니다, 쑥꾹새 울음소리가 들려옵니다” 어쩌구 하면서 길고 긴 편지를 썼습니다.

그러나 보낼 수 없었습니다. 집으로 보내면 그애 부모님이 뜯어보시고, 학교로 보내면 학생과 선생님들이 뜯어보시고, 어떻게 처신했길래 이런 편지가 날아오느냐고 날벼락을 치던 시절이라서.

그러던 주말입니다. 어머니는 동생들을 밖으로 내보내시더니 아주 의외의 말씀을 하시는 겁니다.

“너, 장가 보내주랴?”

“……?”

어이가 없어 그냥 쳐다봤지요. 어머니는 다시 말씀하셨습니다.

“지나가는 놈이 네 에미나 누나를 희롱하면 어떻게 할래?”

다시 쳐다봤지요. 교복을 빨려고 호주머니를 뒤지다가 발견한 편지를 내미시며 책임질 수 있을 때까지는 사랑해서도 안 되고, 받아들여서도 안 된다고 하시는 겁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 말씀이 제 인생을 바꿔놓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러니까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 시험 때마다 노트를 정리해 빌려줘 F학점을 면하게 해준 그녀 고향으로 발령을 받고, 외로울 때마다 술 한잔 하다가 차가 끊기면 그녀네 집으로 찾아가 재워달라고 했으면서도 이 사람을 책임질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돌아섰는데도 나두유를 안 당한 건 물론, 지금까지도 카톡으로 안부를 묻는 사이입니다.

그리고, 지난해 가을에 떠나간 집사람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크리스마스이브에 데이트를 하고 밤늦게 집에 데려다줬지요. 그런데 그 이튿날 아침 제가 자는 여관 옆방에서 나오는 겁니다. 아무리 대문을 두드려도 안 따줘 제가 자는 여관으로 왔다는 겁니다. 그래서 손목 한 번 잡아보지 못하고 결혼을 했지요.

도대체 요지가 뭐냐고요? 네에 말씀드리지요. 사랑한다는 것은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너를 위한 거고, 한 번 약속하면 죽을 때까지 지키면 미투는커녕 영원한 사람을 얻을 수 있다는 걸 말씀드리려 했습니다. 그러니까 온몸이 부르르 떨릴 때마다 ‘너를 위해서인가’를 생각해보시라는…….

다음 주에는 진짜 해체를 막는 방법을 말씀드릴 테니 그때 뵈어요. 사랑해요. 안녕, 안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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