윷놀이연구소 조광휘 소장

윷놀이연구소 조광휘 소장이 윷을 던지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윷놀이연구소 조광휘 소장이 윷을 던지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전통놀이 하면 쉽게 윷놀이가 떠오른다. 하늘을 향해 높이 윷가락을 던져 나오는 도‧개‧걸‧윷‧모 모양에 따라 윷판에 말을 놓는다. 앞서 나간 말을 잡을 수도 있다. 엎치락뒤치락 흥미진진함에 박장대소하며 모두가 즐길 수 있는 놀이가 윷놀이다. 신명 나게 웃고 즐기는 우리나라 대표 전통놀이에 한 사람이 푹 빠져버리고 말았다. 윷놀이 문화를 지키고 새롭게 발견해 나가는 제1호 윷놀이전문 강사 윷놀이연구소 조광휘 (59) 소장이다. 

평범한 샐러리맨, 윷놀이 전도사 되다

조 씨는 5년 전까지만 해도 말끔하게 차려입고 고객을 맞이하던 KB국민은행 소속 금융맨이었다. 27년 6개월, 아무 탈 없이 다니던 직장에 희망퇴직을 신청하고 2017년 1월 자유의 몸이 됐다. 퇴사의 홀가분함이 사그라지는 데 채 한 달이 걸리지 않았다고 조 씨는 토로했다.

“초고령화 시대가 다가오고 있잖아요. ‘인생 2막에 대한 준비와 대책 없이 직장을 그만뒀구나!’ 하는 후회가 쓰나미처럼 밀려왔습니다. 아내와 아이들이 받은 충격도 말할 수가 없죠. 마치 나 자신과 가족을 보호해주던 망토를 던져버린 기분이라고나 할까요.”

위기가 닥쳤으니 기회를 찾아야만 했다. 실업급여를 받는 동안 수령에 필요한 ‘교육확인서’도 받을 겸, 사당동 KB 경력컨설팅센터 퇴직직원 직업 찾기 프로그램에 참여했다.

“교육 기간 3일 동안 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가 주관하는 심화 과정을 소개받았습니다. step 1에서 4까지 차례로 이수했습니다. 교과목 중 (사)한국창직협회 이정원 회장이 직접 강의하신 ‘창직&창업 과정’이 저에게 잘 맞았어요.”

직업군은 줄어들고 베이비부머는 계속해서 퇴직하는 상황. 모든 은퇴자가 현직에 있을 때처럼 수준급 직업을 구하기 어려운 현실을 깨닫는 시간이었다. 결국 즐겁게 도전하고 적성에 맞는 일자리를 찾을 방법은 ‘창직’ 말고는 없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제가 평소에도 윷놀이를 좋아하고 즐겼습니다. 2013년 서울 마포 광흥창지점에서 근무할 때는 마포문화원 주관 ‘동 대항 윷놀이’도 있었고, ‘마포지킴이’ 회원 주관으로 주민 대항 윷놀이가 자정까지 이어지기도 하고요.”

지더라도 뒤끝 없고 승패에 집중력이 강한 윷놀이에 매료됐다. 조 씨가 윷놀이에 빠져버린 결정적 계기는 2015년 정월대보름에 있었던 교회 행사였다.

“제가 다니는 남영동 삼일교회에서 전도회 주관 윷놀이 한마당 행사 진행을 맡은 적이 있습니다. 300명 정도 되는 교인이 참여하는 큰 행사였어요. 스물아홉 개의 밭으로 이루어진 윷판 위에 성경 키워드를 담은 ‘성령 윷판’을 만들었습니다. 함께했던 모든 사람이 다들 행복한 모습으로 윷놀이를 즐겼습니다.”

윷놀이를 더 많은 사람들이 향유하고 나눌 수 있도록 강의 프로그램을 개발한 조 씨. 퇴직을 결정한 그해 11월, 윷놀이프로그램으로 노사발전재단 금융센터의 ‘호모 루덴스 상’을 수상했다. 이를 계기로 노사발전재단이 인정한 대한민국 제1호 윷놀이 전문 강사가 됐다.

“한민족 역사와 함께 남녀노소가 언제 어디서든 즐기는 윷놀이의 확장과 보급을 위하여 윷놀이연구소를 창업했습니다. 성경 윷판에서 착안해 24절기, 김구 선생, 안중근 열사 일대기, 훈민정음, 세계 철도역 등 17종이나 되는 윷판을 만들어 학교 등 다양한 곳에 보급했습니다.”

코로나 시국에도 윷놀이는 운명이다

2020년 2월 ‘서울특별시 윷놀이 한마당’이 예정돼 있어 총괄 심판장으로 나설 계획이었으나 코로나 때문에 무산됐다. 상황이 조금 나아지면서 지난해 11월부터 다시 윷놀이에 대한 관심이 살아나기 시작했다.

“응암노인복지관에서 ‘윷놀이 건강 강사 & 심판 양성 프로그램’을 열었습니다. 이틀에 걸쳐 2시간씩 총 4시간 과정이었습니다. 자격증이 아닌 수료증 취득 과정이었는데 기대 이상으로 반응이 좋았어요.”

빠듯하지만 사무실 월세를 내야 하고, 윷판을 어떻게 만들어야 할지 고민할 시간도 필요했다. 윷놀이에 빠져 살다 보니 생각을 놓을 수 없다. 그러다 보니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일도 잦아졌다. 우리 전통놀이 하면 생각나는 대표 놀이가 '윷놀이'다 보니 조 씨를 만나겠다고 연락하는 이들이 많다.

"윷놀이를 어떻게 하면 다양화시키고 다른 전통놀이와 융합할 수 있을지 생각합니다. 저는 윷놀이에만 심취하다 보니 깊이만 있지 넓지는 못합니다. 이런 만남을 통해서 많은 사람과 소통하고 저 또한 넓어지게 되더군요.”

윷놀이 심판 양성과정을 마찬 수강생들과 기념 촬영. 사진 조광휘 소장 제공.  
윷놀이 심판 양성과정을 마찬 수강생들과 기념 촬영. 사진 조광휘 소장 제공.  

윷놀이, '뉴 스포츠가' 될 수 있을까?

최근 한복이나 김치, 심지어 태권도에 이르기까지 중국이 우리 문화를 자기 것인 양 은근슬쩍 편입하려는 행위가 계속되고 있다. 중국 헤이룽장(黑龍江)성은 윷을 ‘조선족 윷놀이’라고 이름 붙여 2014년 성(省)급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바 있다.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준비한다는 소식도 들려오니 불편한 마음은 이루 말할 수 없다.

2021년 11월부터 경기도를 시작으로 제한적으로 윷놀이 한마당 행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행사에는 윷놀이를 우리보다 먼저 무형문화재로 지정한 중국의 동북공정에 대응하자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조 씨는 말했다.

윷에 대한 자료를 발굴하고 연구, 보전하는 ‘한국 윷 문화연구소(대표 임채우 국제뇌교육종합대학원대 교수)’와 협업해 4월 2, 3일 충남 예산시 내포 보부상촌에서 ‘전국 윷놀이 한마당 대회(주최 문화체육관광부‧충청남도, 주관 충남 문화재단)’를 열기로 해 한창 준비 중이라고 조 씨는 말했다.
“남북이 함께하는 윷놀이대회를 열거나,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 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를 추진하겠다는 큰 틀에서 움직이고 있습니다. 개인사업자로 운영 중인 '윷놀이연구소'를 ‘윷놀이 문화원’으로 이름을 바꿔 임의단체 설립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전국에서 진행될 윷놀이 한마당 행사 진행 전담기구를 만들 생각입니다. ‘神나는 윷판 인생’ 저자이신 김홍석 박사님과 준비하고 있어요.”

윷놀이는 아프리카 케냐에도 전파됐다. 윷놀이를 즐기는 현지인들. 사진 조광휘 소장 제공.  
윷놀이는 아프리카 케냐에도 전파됐다. 윷놀이를 즐기는 현지인들. 사진 조광휘 소장 제공.  

조 씨는 윷놀이를 뉴 스포츠화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 중이라고 했다. 북한은 윷놀이를 방송으로 중계한다. 우리도 윷놀이를 새롭게 인식하면 모두가 화합하고 즐길 수 있는 스포츠로도 새롭게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윷놀이가 스포츠화되면 게임마다 심판 한 명이 필요하고, 시시비비를 가리지 못하거나 진행을 책임지는 총괄 심판이 있어야 한다. 공식 스포츠가 되려면 심판 수화(手話)도 필요하다. 절도 있는 구호와 행동 언어가 경기를 신속하고 정확하게 진행시켜주기 때문. 말을 놓는 시간은 30초 안에 할 것 등 다양한 경기 규칙을 만들어나가야 한다.

각 구의 노인복지관에 윷놀이 건강 강사와 심판 양성과정을 만들어 윷놀이 인재를 확보해 나가고 있다.  지난해 7월부터 윷놀이 연구소와 응암노인복지관을 통해 현재까지 30명 조금 넘게 수료했다.

“새로운 차원에서 윷놀이를 인식했으면 합니다.  그러려면 지도사도 있어야 하고, 심판도 양성해야 해요. 태권도도 지금 준세계화가 됐잖아요. 윷놀이에 교육적인 가치를 더해서 콘텐츠를 잘 만들면 60대, 70대 시니어들이 부업으로 할 수 있는 자리가 생기지 않을까 싶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윷놀이에 몰두하면서도 아쉬운 것이 있다고 했다. 윷놀이연구소 네이버 밴드에 260명 정도가 회원으로 가입돼 있고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많아 보이지만, 실무를 함께 진행하고 함께 발전시키고 이어갈 후배가 양성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가 만든 콘텐츠에 대한 욕심이 없습니다. 콘텐츠를 공유하고 함께 만들어가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나만 혼자 해서 끌어나길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내 아이디어, 내 이야기를 듣고 발전시켜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합니다.”

통일염원 대륙철도 윷판을 들고 서울역 앞 서울로에 선 조광휘 소장. 사진 구혜정 기자.
통일염원 대륙철도 윷판을 들고 서울역 앞 서울로에 선 조광휘 소장. 사진 구혜정 기자.

최근 케냐에서 선교 활동을 하는 박찬수 목사를 통해 윷놀이를 보급하고 있다는 조 씨. 그는 윷놀이가 현재 그곳에서 ‘오징어 게임’보다 더 인기를 얻고 있다고 했다. 'K 컬처' 혹은 'K 놀이'의 선두주자로 윷놀이가 이름을 높일 날도 머지않았다.

“윷놀이를 탐색, 확장 그리고 보급에 집중하며 알면 알수록 그 매력에 푹 빠져 있습니다. 이 모든 노력의 종착점은 세계화입니다. 태권도가 인성교육을 바탕으로 다양한 나라에서 큰 호응을 이끌고 전파된 것처럼 윷놀이에 여러 각도로 교육적 가치를 담아낼 수 있다고 믿습니다.”

바람이 있다면 정부가 나서서 인사동이건 사람들이 많이 모일 수 있는 곳에 윷놀이 박물관을 만드는 것이라고 했다.

“윷에 관한 소장품을 전시하고 스토리텔링을 입혀, 자라나는 어린이와 청소년을 위한 교육적 공간을 만들었으면 합니다. 윷놀이의 우수성을 알고 연구하는 이들이 중도 하차 없이 연구를 마치고 또 더 많은 연구를 할 수 있으면 해요. 윷놀이는 중요한 우리 전통이자 살아 있는 문화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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