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윤석산 시인, 제주대 명예교수

안녕하세요? 이번 주에는 ‘우리 모두 쉽게 행복해지는 방법’을 생각해보자고 했지요? 제가 이 방법을 깨달은 과정을 말씀드리려면 좀 엉뚱하지만 1960년대 중반부터 우리 사회를 지배해온 사르트르(1905~1980)의 실존주의 사상에 대한 제 견해부터 말씀드려야 할 것 같습니다. 당시 우리 사회는 그의 사상에 커다란 영향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그의 ‘참여 이론’은 ‘해체’와 ‘통합’의 양면성을 지니고 있어 어느 쪽으로 해석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방향으로 우리들의 삶을 이끌고 갈 수 있으니까요.

저만 해도 그랬습니다. 대학 1학년 때 무슨 소리인지도 모르면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를 읽고 그해 가을 학내 학술발표회 때 철학의 의무는 삶의 방향과 가치 기준을 제시하는 건데 이를 제시하지 않고 ‘선택의 자유’만 강조했다는 비판론을 발표하고, 그가 ‘물러남(degage)’도 ‘또 다른 참여(engage)’라고 주장한 것을 테마로 삼아 ‘자유인의 죽음’이라는 소설을 써서 교지(校誌)에 응모했다가 지난가을에 죽은 집사람에게 밀려 입선에 그치고 말았으니 말입니다.

    사르트르와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사르트르와 그의 저서 '실존주의는 휴머니즘이다'.

풋내기 문학청년인 제가 그를 그렇게 좋아했던 것은 ‘자아’에 대한 정의 때문이었습니다. 그냥 관념적으로 보던 앞 시대와 달리 나를 ‘존재 자체로서의 나, 즉자(卽自, en-soi)’와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은 나, 대자(對自, pour-soi)’로 나누고, 내 가치는 ‘관계의 질(質)’에 의해 결정되며, 그러자면 사회에 ‘참여’해야 한다는 주장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시사해줬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살면서 몇 년 더 생각해보니까 관계는 ‘질’로만 이뤄진 게 아니라 ‘서열’도 함께 가지고 있다는 생각이 들데요. 가난한 농사꾼 8남매의 장남이 기를 쓰고 문단에 나서고, 서른 살 애아버지가 다시 공부해 대학 강단에 선 것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해 보다 많은 사람들과 좋은 관계를 맺으면서 영원히 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습니다.

이런 욕망은 “나 여기 있어요”라고 나서게 만들더군요. 어느 해 봄이던가 모 방송사 헬기를 타고 “여기는 마라도 상공, 수평선 넘어 아슴아슴 봄기운이 다가오고 있네요”라며 전령사 노릇까지 한 것도 이 욕망 때문이었을 겁니다.

그런 사람은 언제나 미움을 받기 마련이지요. 그렇게 하는 말이 곧 그의 존재 증명이고, 그런 증명 행위는 타인의 기회와 얼굴을 가로막으니까요.

그러면서도 객지에서 크게 배척당하지 않고 살아왔던 것은 시도 때도 없이 사랑한다는 멘트를 날렸기 때문일 겁니다. 신문 칼럼을 쓰면서도, 방송에서도, 1980년대 중반 학생 운동 시대에 반정부 운동에 앞장서는 놈들을 붙잡아다가 야단을 칠 때도, 학생들이 교수 평가를 하던 시절에도 걸핏하면 쌍권총을 쏴대고, 노트 검사까지 하면서도 대자보에 오르지 않고, 수강 신청자들이 넘쳐흐른 것은 상대와 다른 소리를 하기 전에 “사랑햐”라는 이 코맹맹이 소리 덕분이었을 겁니다. 

제가 이렇게 이 말을 남발해온 것은 그때는 아직 이론화되지 않았지만 ‘초두(初頭) 효과(Primacy effect)’를 어렴풋이 짐작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인지심리학에서 말하는 초두 효과는 대상을 접할 때 처음 3초간의 인식 가운데 가장 강한 것이 ‘각인’되면서 ‘인식의 틀’을 만들고, 그에 의해 해석하고 행동하는 현상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상대에겐 네가 미워서 하는 말이 아니라는 걸 암시하고, 제 자신에겐 사랑한다고 했으니 그에 적합한 말을 하도록 방향을 설정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이 전략은 일상적인 관계인 경우에는 아주 큰 효과를 봤습니다. 하지만, 같은 분야의 비슷한 사람들은 “까다롭다”든지 “잘난 척한다”며 소외시키더군요. 그리고 아래 사람들한테는 큰 손해를 본 적도 있었습니다. 관계는 곧 서열이고, 말은 행동으로 입증해줘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한 3, 4년 전부터 아주 편하면서도 누구에게나 저를 인정하고 좋아하도록 만드는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그러니까 이번 주에 여러분들과 함께 살펴보려는 방법입니다.

제가 이 방법을 깨달은 것은 후두암으로 성대를 잘라내고 인공성대를 이용해 말하는 연습을 하다가 꼭 필요한 것은 종이나 패드에 써서 소통하면 되지 이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겠느냐고 제거한 뒤부터입니다. 자존심 상하데요, 윙윙거리는 기계음이 저를 대변한다는 게.

한동안은 답답했었지요. 어떤 때는 벙어리라고 깔보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에 부르르 떨 때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 일년 동안 꼭 소통할 것만 필담으로 하면서 사니까 훨씬 편하고, 좋은 점이 많은 겁니다. 우선 말을 안 하니까 책임질 일이 줄어들고, 그렇게 들으면서 좀 괜찮다 싶은 이야기면 ‘엄지척’하거나 ‘손가락 하트’를 날리니까 그 까다로운 선생님이 좀 편해졌다며 만나자는 사람들이 늘어가고, 일일이 패드에 써서 전달하기가 힘들어 아주 중요한 것만 적어 귀띔을 해주니까 고맙다며 다시 생각하고….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면 어떻게 하느냐고요? 그럼 더 득이 되지요. 그냥 참고 들으며 이 사람이 왜 이러나 생각해보는 동안에 내 사유의 폭이 넓어지고, 어렴풋이 짐작되면 웃으며 끄덕여주고, 그래도 안 되면 돌아오는 길 휴대폰을 열고 사랑의 이모티콘이나 힘내라는 멘트를 날릴 경우 틀림없이 내 사람이 되니까요.

제가 왜 이런 이야기를 하는지 짐작하시지요? 대부분의 사람들은 “너를 위해서”라며 말하지만 기실은 ‘자기 표현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하고, 그런 욕구가 이 사회를 해체 쪽으로 몰고 간다는 걸 말씀드리고 싶어서였습니다. 오늘 오후엘랑 휴대폰으로 사랑의 이모티콘을 날려보세요. 받은 사람보다 날린 사람이 더 편안해지는 소통이니까요.

다음 주 함께 생각할 주제는 ‘마음의 순결을 잃은 뒤의 세상’입니다. 사랑해요. 다음 주에 만나요. 안녕, 안녕, 안녕…. (♥)

▢ 尹石山(본명 錫山) : ○1972년 ‘시문학’으로 등단. ○작품집 ‘아세아의 풀꽃’ 등 7권, ‘자서전을 덧붙여 고쳐 쓴 尹石山 시전집’ 4권, 문학이론서로는 ‘화자시학’ 등 6권 있음. ○제주대 명예교수 ○1999년부터 한국문학도서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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