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소설보다 시 쓰기가 쉽다거나, 소설 쓰기보다 시 쓰기가 쉽다는 말은 문예를 모독하는 말이다. 시를 쓰거나 소설을 쓰는 행위는 절대로 쉬운가 어려운가의 난이도로 가늠해서는 안 된다. 문예를 창작한다는 것, 더 나아가서 예술 행위를 한다는 것은 창작을 뜻하는 것이며, 창작은 가장 순수하고 아름다운 상태에서 이루어져야 하는 까닭이다.

지금까지 열아홉 번의 강의를 통해서 자전적 소설을 어떻게 하면 빠르게 쓰는지를 이야기해왔다. 퇴고하지 않은 소설이 꽃망울이라면, 퇴고 과정을 거친 소설은 활짝 핀 꽃이라 할 수 있다. 꽃망울이 졌다고 해서 무조건 꽃이 활짝 피는 것은 아니다. 기후 변화나 영양의 불균형으로 꽃망울에 머문 상태에서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미국 작가 어니스트 헤밍웨이(1899~1961)는 “모든 초고는 쓰레기다”라고 말할 만큼 퇴고의 중요성을 역설했다. 등단 50주년을 맞은 소설가 조정래(1943~)는 “등단 50주년을 맞아 ‘태백산맥’(1989년 전 10권으로 첫 출간)을 마지막 퇴고했다.”라고 말할 만큼 이미 발표한 유명 작품도 꾸준히 퇴고를 해왔다.

대체로 원고가 완성되자마자 퇴고를 하는 것보다는 한 달이나 두어 달 정도 발효과정을 거친 후에 퇴고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소설가 양귀자(1955~)도 초고를 완성한 후에 5~6개월 동안 책상 서랍에 묵힌다고 말했다. 초고를 묵힌 후에 퇴고 과정을 거치게 되면 새로운 시선으로 작품을 보게 되는 장점이 있다. 초고를 완성한 후에 곧바로 퇴고하게 되면 초고를 쓸 때의 감정과 시선이 유지되는 까닭이다.

퇴고하기에 앞서 반드시 지켜야 할 점은 원고 프린트다. 원고는 모니터 화면으로 살펴보면 잘못된 부분이 그냥 넘어가는 경우가 많다. 반드시 프린트해서 빨간색이나 파란색 펜으로 퇴고를 해야 틀리거나 빠지는 부분들이 줄어든다.

인터넷이나 작법서를 읽어보면 갖가지 다양한 퇴고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첨가한다면 시점, 문장, 맞춤법 등을 한꺼번에 보게 되면 처음에는 눈에 잘 보인다. 그러나 20여 페이지만 읽어나가다 보면 고쳐야 할 부분들이 보이지 않게 된다. 한 번에 한 가지씩 고쳐가는 방법이 매우 효과적이다.

예를 들어 ‘시점’을 살필 때는 다른 내용들은 일절 보지 말고 시점의 통일 여부만 본다는 것이다. 문장이 맞거나 틀린 것을 점검하는 것도 같은 방법으로 하면 더 빠르고 효율적으로 할 수 있다. 덤으로 퇴고를 하는 과정에서 시점이며 문장, 맞춤법 등에 대하여 저절로 학습이 된다는 것을 알 수가 있다.

기차를 타고 여행을 갈 때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계속 새롭게 펼쳐지면 잠이 오지 않는다. 소설도 그렇다. 똑같은 관용구가 몇 번씩이나 반복해서 나오면 독자들은 짜증을 낸다. 예를 들어서 ‘재수가 좋은 놈은 엎어져도 동전을 줍고, 재수가 나쁜 놈은 뒤로 넘어져도 코가 깨진다’라는 관용구는 원고지 1000매 분량에서 단 한 번만 사용해야 한다. 두 번을 사용했다가는 독자들이 알레르기 반응을 일으키게 될 것이다.

소설이 잘 읽히는 요인 중에 아름다운 문장이나 신선한 묘사가 한 몫을 차지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초보자에게는 ‘님은 먼 곳에’일뿐이다. 문장이 아름답거나 묘사를 신선하게 하지 않더라도 계속 새로운 장면이 펼쳐지면 소설은 잘 읽힌다.

자전적 소설에서 작가의 경험을 어떻게 풀어나가는지는 중요한 부분이다. 따라서 원고지 1000매라는 한정된 지면에 가능한 한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하는 것이 좋다. 초고를 쓸 때는 원고 분량을 채우는 데 급급한 나머지 여러 경험이 어떻게 배분되었는지 살필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퇴고 과정에서는 각 에피소드의 배분량을 어느 정도 맞춰 줘야 한다. 예를 들어서 ‘결혼을 하게 된 동기’는 원고지 50매 이상을 썼을 수도 있고, 처음 주택을 구입했을 때의 기쁨은 5매 정도로 간단하게 썼을 수도 있다.

초고를 눈으로 읽지 않고 큰 소리로 읽으며 퇴고를 하는 것도 매우 효과적이다. 시어에만 리듬이 있는 것이 아니고, 소설에도 리듬이 있다. 큰 소리로 원고를 읽다가 숨이 막히거나, 지루하다는 느낌이 들면 100% 만연체로 써진 문장이다. 이럴 때는 적당한 부분에서 문장을 끊어 줘야 한다.

퇴고 과정을 거쳤다고 해서 작품이 완성된 것은 아니다. 인쇄돼서 책으로 읽어 보면 잘못된 부분들이 부끄럽게 민낯을 드러내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퇴고의 끝은 작가가 절필을 선언하였을 때일 것이다.

지금까지 ‘자전적 소설 쓰는 법’에 대해 이야기해왔다. 이 글을 읽은 것으로 그치면 그냥 잡문일 것이다. 당장 소설을 쓰기 시작했다면 훌륭한 자양분이 될 것으로 믿는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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