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소설에서는 이야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을 서술자라고 한다. 서술자가 특정한 어느 각도나 위치에서 이야기하는 관점을 시점(視點)이라고 한다. 소설에서는 똑같은 주제나 사건이라도 어느 시점으로 이야기하느냐에 따라 독자가 받아들이는 입장이 다르게 된다.

시점은 소설 쓰기 서두에서 거론해야 할 만큼 매우 중요한 요소이다. 그런데도 퇴고를 앞둔 시기에 시점을 논하는 것은 시점을 통일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처음 소설을 쓸 때는 이야기를 이어나가는 것만 해도 쉽지가 않다. 여기에다 시점까지 따져가면서 쓰려면 더 혼란스러워서 소설 쓰기가 어렵다.

소설은 완성해야 비로소 ‘소설’이 된다. 완성하지 않은 원고는 그냥 소설 습작품일 뿐이다. 소설을 완성해 가는 과정에는 정해진 규칙이 없다. 대체로 일반 소설작법에서 ‘발상→구상→아우트라인 작성→구성→인물 창조’ 순서로 완성하라고 요구하고 있다. 문제는 초보자들이 이를 실전에 적용하기가 쉽지 않다는 점이다.

하지만 죽이 되든 밥이 되든 소설에 필요한 분량을 완성하고 나면 일반적인 소설작법에서 요구하는 점들을 적용하는 것이 어렵지가 않다. 시점도 그렇다. 시점은 염두에 두지 않고 완성한 원고의 시점을 통일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주제라든가 작품의 완성도를 떠나서 시점을 통일하고 나면 읽는 느낌이 확연하게 달라진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렇게 하여 퇴고 과정을 거쳐 한 권의 소설을 쓰게 되면 ‘소설작법 이론’은 자연스럽게 학습이 된다.

예컨대 이론을 완벽하게 학습 받은 후에 소설 쓰기를 하는 기간이 1년이라고 가정한다면, 실기를 바탕으로 이론을 습득하는 과정은 6개월도 걸리지 않는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처음 소설을 쓰려는 사람들 대다수가 이야기를 소설처럼 쓸 수 있는 수준에 도달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론을 대입해 쓰다 보면 이야기의 맥이 자꾸 끊어지게 되어 안 좋은 경우는 포기하기도 한다.

시점은 어려운 것이 아니다. 소설작법 이론에서 제기하는 방법도 있겠지만 ‘어항 속의 세 마리 금붕어’를 예로 들면 금방 익숙해질 수 있다.

어항 안에 빨간색, 노란색, 검은색 금붕어 세 마리가 있다. 빨간색 금붕어가 노란색 금붕어와 검은색 금붕어를 바라보면서 느끼거나 생각하는 시점을 1인칭 주인공 시점이라고 한다. 순전히 빨간색 금붕어의 생각과 느낌만 쓰는 까닭에 독자들에게 친밀감을 줄 수 있다. 또한, 빨간색 금붕어의 생각과 느낌을 비교적 내밀하게 표현할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김유정(1908~1937)이 1935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봄봄’은 주인공 ‘나’가 고약한 주인의 딸인 점순이와 결혼하고 싶어 하는 내용이다.

‘봄봄’처럼 1인칭 주인공 시점은 주인공인 빨간색 금붕어가 노란색 금붕어는 어떻게 먹이를 먹는지, 검은색 금붕어를 어떻게 대하는지를 관찰하면서 생각한 점을 쓰는 것을 말한다.

1인칭 관찰자 시점은 빨간색 금붕어는 주인공 노란색 금붕어의 내면을 읽을 수 없어서 행동하는 모습만 관찰할 수 있다.

윤흥길(1942~)이 1977년에 발표한 중편소설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어렵게 집을 마련한 ‘나’가 문간방에 세든 권 씨를 관찰하며 벌어지는 사건을 다루고 있다.

3인칭 관찰자 시점은 어항 밖에 있는 작가가 어항 안에 있는 금붕어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지 객관적으로 관찰하며 쓰는 글이다. 작가는 어항 밖에 있으므로 세 마리의 금붕어가 지금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지는 알 수가 없고 그저 객관적으로 관찰만 할 수 있다. 작가의 관찰력이 객관적이어서 독자들이 상상력을 발휘하기가 쉽다는 장점이 있다.

황순원(1915~2000)이 1956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학’은 6·25 당시 삼팔선 근처인 산골동네에 사는 어릴 적 단짝 덕삼과 성삼 사이에 벌어지는 이야기다.

전지적 작가 시점은 말 그대로 작가가 조물주처럼 전지전능한 신이 되는 것이다. 작가는 빨간색 금붕어가 될 수도 있고, 다른 금붕어가 될 수도 있다. 어항 밖에서 관찰자가 될 수도 있고, 검은색 금붕어가 되어서 빨간색 금붕어나 노란색 금붕어를 지켜볼 수도 있다. 장편소설에서 흔히 쓰는 방식으로, 작가의 사상이나 철학을 직접 드러낼 수 있다. 작가가 신과 같은 존재여서 독자가 개입할 여지가 없다,

한만수(1955~)가 2015년에 발표한 장편 소설 ‘천득이’는 지능이 모자라는 주인공 천득이가 변동시장 사람들 사이에서 부닥치며 벌어지는 이야기다. 다음 제20강은 ‘퇴고, 그 아름다운 이별’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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