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소설뿐만 아니라 모든 예술작품의 제목은 얼굴이자 상징이다. 똑같은 예술작품이라도 어떻게 제목을 붙이느냐에 따라서 예술적 가치가 높아지기도 하고 낮아지기도 한다. 따라서 제목 짓기는 작품을 완성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한 과정이다.

특히, 문예 작품은 미술이나 음악 등 타 장르보다 제목이 주는 영향이 월등하게 높다. 예술 감상자인 독자들이 타 장르보다 문예 작품에 쉽게 접근할 수 있게 해주는 것이 바로 제목이다.

제목을 짓는 시점은 작가들의 개성에 따라서 각양각색이다. 제목을 정해놓고 쓰는 쪽이 있는가 하면, 작품이 완성된 후에 제목을 정하는 예도 있다. 전자와 후자 모두 장·단점이 있다. 장점으로는 전자는 주제를 심도 있게 끌고 갈 수가 있다. 후자는 작품의 내용과 적합한 제목을 정할 수 있다는 점을 장점으로 들 수 있다.

제목의 중요성이 큰 만큼 인터넷이나 소설작법 책을 보면 제목을 짓는 법이 많이 나와 있다. 대부분 이론적인 측면을 앞세우고 있어서 실제로 초보 작가가 제목을 짓는 데 실질적인 도움을 받기는 쉽지 않다. 처음 소설을 쓰는 작가들이 제목의 중요성을 알고 있으면서도 실제로는 평이하고 모호한 제목을 많이 사용하는 이유도 그 점에 있다.

자전적 소설에서 정치인들이나 경제적으로 성공한 사업가들이 흔히 사용하는 제목으로는 ‘동행’. ‘나의 길’, ‘〇〇〇의 꿈’ 등을 들 수가 있다. 일반이 출간하는 자전적 소설도 정치인들과 거의 대동소이(大同小異)하다.

러시아의 작가 톨스토이가 1869년에 발표한 ‘전쟁과 평화’나 미국 작가 헤밍웨이가 1929년에 발표한 ‘무기여 잘 있거라’는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예술은 시대를 반영한다. 우리도 6·25라는 전쟁의 아픔을 경험했다. 오상원(1930~1985)이 1955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 단편소설 ‘유예(猶豫)’, 선우 휘(1922~1986)가 1957년에 발표한 단편소설 ‘불꽃’, 최인훈(1936~2018)이 1960년에 발표한 장편소설 ‘광장’도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이다.

외국 작가의 소설은 제목만 봐도 전쟁을 주제로 한 소설이라는 점을 누구나 알 수가 있다. 국내 작가들이 발표한 제목은 작품의 주제를 은유하거나 상징하고 있다.

자전적 소설은 생애를 아우를 수 있는 제목이 좋다. 누구나 자신의 삶은 세계의 중심이다. 내가 있으므로 세상이 존재한다는 점을 누구나 알고 있지만, 현실의 삶은 상대가 있으므로 내가 존재한다는 쪽으로 기울어진다. 상대가 있으므로 내 존재 여부를 확인하는 배경에는 물욕(物慾)에 대한 욕망이 깔려 있다.

자신이 살아온 지난 삶을 들여다보는 기준도 위와 같은 존재론적 삶의 기준이 적용된다. 삶을 여유 있게 살아온 사람은 전자 쪽이고, 바쁘게 살아온 사람은 후자 쪽의 세계관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자전적 소설의 전체적인 분위기도 같은 이치가 적용되었을 것이다. 제목도 단순하게 삶의 기준을 바탕으로 뽑아낼 확률이 높다. 이런 경우 상당히 모호하거나 관념적이거나, 독자의 시선을 무시해 버린 주관적인 제목이 나올 수 있다.

예를 들어서 ‘나의 생애’, ‘꿈을 찾아서’, ‘고향 느티나무’, ‘흙에서 얻은 희망’ 같은 제목은 언뜻 굉장한 의미가 있어 보인다. 하지만 가만히 곱씹어보면 소설의 제목하고는 거리가 멀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좋은 시는, 저자인 시인이 가장 완벽하게 이해하고 해석할 수 있는 작품이다. 소설의 제목도 작가가 독자들에게 완벽하게 이해시켜 줄 수 있는 것이 좋다.

자전적 소설은 작가가 만들어 낸 ‘상상의 세계’가 아니다. 작가가 살아온 ‘생애’가 배경이다. 그 ‘생애적’ 배경은 오직 작가 혼자만 알고 있는 세계이다. 제목도 작가의 애증이 녹아 있는 낱말이나 문장을 선택하는 것이 좋다.

예를 들어서 아버지와의 애틋한 기억으로 남아 있는 ‘아버지의 손목시계’, 고향 노루골에서 서울로 상경하여 살게 된 ‘노루골 신화’, 일년 내내 어머니의 머리에서 떠나지 않던 ‘삼베 수건’, 어린 나이에 취직한 ‘누이의 초상’ 등 작가의 생애를 버티게 해주는 제목을 선택하면 효과적이다. 다음 제19강은 ‘시점 통일하기’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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