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임철순 주필] 조성은이라는 젊은 여성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고발 사주’ 의혹 제보자다. 제보 이후 박지원 국가정보원장과 친밀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배후에 박 원장이 있는 거 아니냐는 의심을 샀다. 조 씨가 박 원장의 옆에 붙어 앉아 귀엣말을 하는 사진도 공개됐다.

그러자 조 씨는 이상돈 전 국회의원과 귀엣말을 하는 사진을 페이스북에 공개했다. 조 씨의 주장은 “나는 박 원장님하고만 귀엣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라는 것이다. “언론인들과 카메라 때문에 주변이 어수선하고 소음도 많으면 어쩔 수 없이 귀엣말을 해야 한다”는 말도 했다.

그럴 수도 있을 거다. 귀엣말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꼭 그렇게 해야 할 이유가 여러 가지일 수 있다. 중요한 것은 공개석상에서의 귀엣말은 남들에게 보이려고 하는 행위인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뭔가 은밀한, 또는 중요한 이야기를 한다는 걸 남들에게 보여주는 게 귀엣말이다. 주위에 사람이 없고 단 둘이 있다면 굳이 귀에 대고 속삭일 이유가 없지 않은가.

국회를 취재하는 기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아무것도 하지 않던 국회의원들이 카메라를 들이대면 갑자기 뭔가 메모를 열심히 하거나 옆사람과 귀엣말을 주고받는 경우가 많다. 중요한 국정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알고보면 시답잖은 술약속이거나 특정인에 대한 뒷담화에 불과하다. 또 회의 도중 보스한테 다가가 귀엣말을 할 수 있어야 실세로 인정해준다.

귀엣말도 기본 실력이 있어야 제대로 알아듣는다. 김영삼 전 대통령은 대선 유세를 할 때 대만의 이등휘(李登輝) 총통이 보내온 메시지를 공개하면서 “좋은 소식이 있습니다. 대만의 이붕 총리가…”라고 읽었다. 이붕(李鵬)은 당시 중국 총리였다. 당황한 측근이 귀엣말로 정정해주자 YS는 이등휘도 이붕도 아닌 '이등 총통'이라고 읽어버렸다.

귀엣말은 ‘남의 귀 가까이에 입을 대고 소곤거리는 말’, 즉 ‘귓말’이다. 그러면 귓속말은? 귓속말은 귀 속에다 하는 말이니 조금 다르긴 하다. 귓속말은 귀엣말보다 더 널리 쓰이면서도 방언으로 다루어져 오다가 1989년 귀엣말과 함께 복수 표준어로 승격됐다. 표준어 규정에는 방언이던 단어가 표준어보다 더 널리 쓰이면 그걸 표준어로 삼고, 원래 표준어는 그대로 남겨 둔다는 규정이 있다. 그러니 귀엣말, 귓속말 다 맞는 말이다.

  귀엣말을 경계하라. 유익하고 듣기 좋은 귀엣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귀엣말을 경계하라. 유익하고 듣기 좋은 귀엣말은 그리 많지 않다.

귀엣말이라는 단어를 보면 ‘사바사바’라는 말을 떠올리게 된다. 어원은 모르겠지만 ‘뒷거래를 통해 떳떳하지 못하게 은밀히 일을 조작하는 짓’이 사바사바다. 사바사바는 담합이나 ‘짬짜미(남모르게 자기들끼리만 짜고 하는 약속이나 수작)’로 연결된다. 특정 지역 정치인들이 파벌을 만들고 ‘우리가 남이가’ 또는 형님 동생하면서 나라를 좌지우지하는 과정에는 반드시 귀엣말이 등장한다.

그래서 예부터 생각이 바른 사람들은 귀엣말을 경계해왔다. 연암 박지원의 ‘중옥에게 답함[答仲玉]’이라는 편지 글에 이런 말이 있다. “귀에 대고 속삭이는 말은 애초에 듣지 말아야 할 것이요, 발설 말라 하면서 하는 말은 애초에 하지 말아야 할 일이니, 남이 알까 두려운 일을 무엇 때문에 말하며 무엇 때문에 들을 까닭이 있소? 말을 이미 해 놓고 다시 경계하는 것은 상대방을 의심하는 일이요, 상대방을 의심하면서도 말하는 것은 지혜롭지 못한 일이오.”

율곡 이이의 문하생인 홍귀상, 홍치상 형제는 스승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어려서부터 모시고 글을 배웠지만 평소 한 번도 남과 소곤소곤 이야기하는 것을 본 일이 없다. 언제나 제자들에게 군자는 일에 처하고 마음 가지는 것을 마땅히 저 청천백일같이 해야 한다고 당부하셨다,”

이 앵무새는 뭐라고 속삭이는 걸까. 혹시 “우리 인간들에게 속지 말자”?
이 앵무새는 뭐라고 속삭이는 걸까. 혹시 “우리 인간들에게 속지 말자”?

한번 생각해보자. 공자나 맹자 부처님이 귀엣말을 했을까. 세종대왕, 퇴계 이황 이런 분들이 귀엣말로 소곤소곤했을까. 귀엣말은 원래 소인배나 정상배, 모리배, 간신배, 투기배가 특정한 목적을 가지고 하는 일이다.

듣기 좋은 귀엣말도 있다. 피천득의 명수필 ‘나의 사랑하는 생활’에는 아래와 같은 문장이 나온다. “나는 젊은 웃음소리를 좋아한다. 다른 사람 없는 방안에서 내 귀에다가 귓속말을 하는 서영이 말소리를 좋아한다. 나는 비 오시는 날 저녁 때, 뒷골목 선술집에서 풍기는 불고기 냄새를 좋아한다.”

조선의 명재상 황희가 젊은 시절에 검은소와 누런소가 밭을 갈고 있는 것을 보고 어느 소가 일을 더 잘하느냐고 농부에게 물었다. 그러자 농부가 달려와서는 “검은소가 누렁소보다 일을 잘합니다”라고 귀엣말로 알려주었다. 왜 귀엣말을 하느냐고 묻자 농부는 “소가 말을 못 한다고 말을 못 알아듣는 것은 아닙니다. 아무리 짐승이라 해도 자기가 남보다 못하다고 하면 기분이 좋겠습니까?”라고 했다. 이 말에 크게 깨달은 황희는 그뒤 매사에 언행을 조심하고, 남을 배려하는 마음을 잃지 않았다고 한다.

나는 최근에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인터넷에서 읽었다. 어느 수의사가 견주에게 강아지가 살짝 비만일 수 있다고 귀엣말로 알려주었다. “누가 봐도 뚱땡이인데 왜 이렇게 하느냐”고 묻자 “9년차 강아지는 귀가 밝아서 다 알아듣는다”며 “뚱뚱해서 살빼야 한다는 말 듣고 그날 저녁 굶은 강아지도 있다”고 알려주더라는 것이다.

다음 글은 어떤 분의 블로그에서 그대로 옮겨온 것이다. 이 글에 더 보탤 게 없다. ”귀엣말을 하는 놈이나 그 말을 들으려 하는 놈과는 상종하지 마라. 귀엣말을 하는 놈은 본성이 사악한 놈이고, 귀를 가까이하고 그 말을 듣는 놈 또한 귀엣말을 하는 습성을 가진 사악한 놈이다. 살면서 절대로 귀엣말 하지 마라. 귀를 가까이 대고 그 말을 들으려고도 하지 마라. 둘 다 사악한 본성을 가진 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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