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 헤이리예술마을 모티프원 이안수, 강민지 부부가 사는 법

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이자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운영하는 이안수 씨(오른쪽)와 부인 강민지 씨(왼쪽). 사진 구혜정 기자
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이자 북스테이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운영하는 이안수 씨(오른쪽)와 부인 강민지 씨(왼쪽). 사진 구혜정 기자

이안수(64), 강민지(61) 부부는 꽤 유명인사다. 일반인 부부의 삶이 이렇게도 많이 매스컴을 타기란 쉽지도 않을 것 같다. 이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지금까지 꽤 특이했다. 사정상 따로 떨어져 살게 됐고, 부부는 서로의 취미와 하는 일에 깊게 관여하지 않았다. 하지만 따로 떨어져 살면서도 가족의 의미에 집중했고, 서로를 존중했다. 이들 모습은 참으로 이상적이기까지 하다.

함께 모여 살아야 부부이고 가족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다복하고 화목한 가정을 일궈온 부부의 삶에 변화가 찾아왔다. 아내 강민지 씨가 정년을 맞이한 것. 13년 별거 생활을 접고, 동거에 들어간 이들의 이야기를 데일리임팩트가 직접 들어봤다. 

이안수 씨는 경기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서 ’글로벌 인생학교‘라는 별칭이 있는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motif#1)을 운영한다. 지난해까지 6년 동안 헤이리예술마을 촌장을 맡아왔다. 사진작가이자 기고가로 꾸준하게 글도 쓴다. 게스트하우스를 방문한 사람들과 나눈 대화를 엮어낸 ‘여행자의 하룻밤’ 저자이기도 하다. 요즘은 11월에 출간할 단행본의 원고 마무리와 퇴고로 바쁜 하루를 보내고 있다. 

아내는 은퇴 전 서울 도봉구 쌍문동에서 생활했다. 이들 부부의 가족은 게스트하우스 운영을 위해 2005년에 모두 파주로 이주했다. 하지만 자식들의 학교생활과 강 씨의 직장을 위해 자연스럽게 이 씨만을 파주에 남겨놓고 가족 모두 동거 3년 만에 상경했다. 

강 씨의 은퇴는 또다시 집안 분위기에 많은 변화를 몰고 왔다. 삼남매는 성인이 돼 각자의 삶을 살고 있으니 돌볼 일은 더 이상 없게 됐다. 양가 부모님도 강 씨가 은퇴하기 몇 해 전 유명을 달리했다. 이제야 비로소 부부가 합쳐 살 때가 온 것이다. 13년 만에 부부가 동거에 들어갔다. 

강민지 저 은퇴하고 남편이랑 쌍문동 집에서 6개월 반 정도 동거했습니다. 그 사이 파주 모티프원은 연극하는 첫째 딸이 운영했고요. 

강 씨는 남편과 함께 살기 전까지만 해도 걱정이 컸다. 어떻게 매일 매일 함께 살 수 있을까. 하지만 생각보다 괜찮았다고 말했다. 

강민지 함께 있으면 하루 세 끼 밥을 해줘야 되고, 이게 보통 일이 아니잖아요. 전에는 직장인이라 안 해줬지만 전업주부가 된 마당에 핑계가 없었어요. 그래도 다행히 제가 챙겨주면 먹고, 제가 어디 나가도 뭐라고 얘기 안 해요. 다행이다 싶었습니다. 올해부터 은퇴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부부는 지금까지 상대의 삶을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사진 구혜정 기자
  부부는 지금까지 상대의 삶을 존중하며 독립적으로 살려고 노력해 왔다. 사진 구혜정 기자

이 씨는 부부가 따로 사는 것에 대해 늘 긍정적으로 말해왔다. 이미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오랫동안 살았고, ‘같이’ 보다 ‘따로’ 있는 게 더 창조적이라고 말했다. 

이안수 부부가 각각 독립적으로 사는 훈련도 필요합니다. 따로 있으면서 자기가 원하는 것에 집중할 수 있잖아요. 각기 다른 새로운 경험을 하고 나중에 만났을 때 새로운 서로에게서 새로운 발견이 계속 일어나니까 관계가 더 좋은 거죠. 만나면 할 얘기가 너무 많아요. 

함께 사는 6개월 반 동안 강 씨는 남편을 위해 삼시세끼를 제대로 챙기겠다고 했다. 하지만 밥 먹기 위해서 함께 사는 게 아니기 때문에 이 씨는 원하는 바가 아니었다. 동거는 하지만 실질적으로 서로 스트레스가 될 일이 없었다. 한 지붕 아래에서 떨어져 살았기 때문이다. 

이안수 제 처가 쓰던 방을 제가 쓰고, 기도와 명상을 하던 방을 아내가 썼습니다. 내방, 건넌방, 공유 공간, 삼각점 독립을 한 거죠. 같이 모든 것을 섞는 것이 아니라요. 밥 먹을 때 거실에서 만났어요. 각자 생활하다가요. 

강민지 부부라도 독립적인 공간에 있으니까 좋았습니다. 그림 그리다가 책을 읽다가 요가도 하고요.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어서 좋아요. 제 또래에 은퇴하신 분들은 잘 모르는 거 같아요. 우리는 살면서 연습이 된 거죠.

2005년 파주 헤이리 마을에 연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을 늘 쓸고 닦고, 여행자와 만나 이야기 나누며 살아온 이안수 씨. 이제 이 일도 첫째 딸과 나눠 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2005년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 연 게스트하우스 모티프원. 이안수 씨는 이곳을 늘 쓸고 닦고, 여행자와 만나 이야기 나누며 살아왔다. 아내의 은퇴를 계기로 이 일도 첫째 딸과 나눠 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남편의 은퇴와 아내의 은퇴는 색깔이 달랐다

이 씨는 여행, 음악, 디자인 잡지에서 기자와 편집장 생활을 하다가 40대 중후반에 직업을 내려놓고 1년 남짓 미국 여행을 했다. 아이들이 크고 있는 마당에 가장이 일을 버리고 외국으로 여행을 간다고 하면 보낼 여자가 얼마나 될까?

강민지 남편이 여행 간다고 해서 가라고 했어요. 그때는 내가 젊었으니까 충분히 남편이 은퇴를 해도 지원이 가능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특히 아이도 키워야 했어요. 지금 제가 맞이한 은퇴는 진짜 완전히 자유로울 수 있어서 좋습니다. 

남편 이 씨의 은퇴는 인생 전반기 언론사 생활을 마치고 다른 삶을 위한 선택이었다. 노동에서의 해방을 뜻하는 게 아니었다. 지금껏 조직 속의 삶을 살았다면 스스로 주도하는 삶을 살기 위한 새로운 모색을 하는 일차 은퇴였다. 전환이었다. 

이안수 제 처는 이번에 국가가 보장하는 은퇴를 했습니다. 노동 자체를 은퇴할 수 있는 입장인 거죠. 아이들로부터의 자유, 그리고 노동으로부터의 자유. 공식적으로 그렇게 된 것이죠. 저 또한 올 초에 모티프원을 딸한테 맡겨 놓고 아내의 집으로 갔죠. 나도 이젠 노동으로부터의 자유를 선언한 겁니다. 아내 따라서 은퇴하겠다고요.

치매 엄마와 시부모를 모신 참 착한 아내

이들이 따로 떨어져 살면서 개인적인 삶에 치중한 것처럼 보이지만 강 씨는 시부모는 물론 치매질환을 앓던 어머니를 한집에서 모시기도 했다. 

강민지 부모님이 연로하시니까 모시는 시간이 있었죠. 제가 정년하면 모시려고 했는데 그전에 돌아가셨어요. 자식 된 도리로서 당연하다고 생각했어요. 언니, 오빠 다 있는데 제가 모셨어요. 시부모님도요. 내 마음이 닿기만 하면 할 수 있다고 봐요. 

누군가 강 씨에게 부모들을 모시지 말라고 했다. 강 씨는 속으로 ‘이것도 내 인생’이라고 했다.

강 씨가 시부모를 모시게 된 것은 우연한 기회였다. 경북 김천에서 농사를 지으시던 시부모는 가을 추수를 하고 나면 서울로 와서 강 씨와 함께 살다가 땅이 녹는 봄이 되면 다시 시골로 내려갔다. 농사를 그만두게 하고 싶어 모시게 됐다. 강 씨는 친정어머니도 모시기로 했다.  

 올 추석 풍경. 모이지 못하는 가족과 실시간 인터넷 라이브를 통해 차례를 지냈다. 사진 이안수 씨 페이스북
 올 추석 풍경. 모이지 못하는 가족과 실시간 인터넷 라이브를 통해 차례를 지냈다. 사진 이안수 씨 페이스북

강민지 시부모님 모시고 한 해, 두 해가 됐을 때 시골 친정에 갔어요. 어머니 혼자 사셨는데 한겨울에 기름이 보일러에 한 가득 있는데도 보일러를 때지 않고 계시더라고요. 냉장고에는 먹을 반찬도 없었고요. 그래서 시아버님께 “엄마 모시고 가도 되냐”고 여쭸어요. 당연히 모시고 오라고 하시죠. 그때는 이태원에 있는 작은 아파트에 살았어요. 아들은 좁은 거실에서 생활했고요, 친정어머니는 그곳에 2년을 모셨습니다. 

치매기가 있는 어머니를 모시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었다. 좀 더 증세가 심해져 치매 환자 등급도 받고 직장을 다니면서 어머니까지 돌봤다. 

강민지 데이케어센터에서도 오셔서 도와주셨어요. 다행히 예쁜 치매였어요. 폭력 이런 거 없고 조용한 편이었어요. 아들네 집에 간다 그러기도 했고요. 굉장히 심했을 때는 두 번이나 집을 나갔고요. 어떤 때는 6·25 때 신혼시절로 막 돌아가기도 했어요. 저는 잘 알아봤는데 손자를 잘 못 알아봤어요. 

한 지붕 아래 시부모와 사돈이 함께 사는 건 보기 드문 일이다. 게다가 사돈이 치매이니 불편하지는 않았을까. 다행히 사돈끼리 우애가 좋아 함께 공원에 가기도 했다. 

강민지 그때도 남편은 파주에 있었어야 해서 따로 있던 상황이었어요. 남편이 있었다면 엄마가 서울에 와서 살았을까도 싶어요. 

강 씨의 어머니는 잠시 어른들만 집에 있던 어느 날 집을 나갔다. 이태원 거리를 활보하던 어머니는 한 시민의 신고로 찾을 수 있었다고 한다. 

강민지 어머니가 차고 있던 팔찌와 목걸이에 오빠 연락처가 있었어요. 바로 오빠가 모시고 갔고, 6개월 더 사시고 돌아가셨어요. 친정어머니는 그래도 행복하셨어요. 신랑 이름은 안 잊어버리더라고요. 어머니 보면서 살아온 삶대로 치매가 오는 건가 했습니다. 친정어머니 가시고 나서 시아버지, 시어머니도 1, 2년 사이에 떠나셨습니다. 병원에도 안 가셨어요. 두 분 모두 고운 모습으로 남아 계세요. 

강 씨가 시부모와 치매 어머니를 모셨다면 남편인 이 씨는 파주에서의 생활을 해야 했기에 전적으로 부모를 모시지 못했다. 그가 살면서 가장 아쉬운 부분이라고 말했다. 

이안수 내가 욕구하는 것을 그때그때 선택했습니다. “나 이제 회사 그만 다녀야겠다”해서 관뒀어요. 내 욕구를 실행했기 때문에 후회하지 않아요. 모험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실패도 내 인생에 있어서 점수이죠. 후회스러운 것이 있다면 부모님하고 많은 시간을 보내지 못한 것입니다. 아쉽죠. 내 삶이 먼저였기 때문에 부모님 삶을 배려하며 살지는 않았어요. 결국은 한 번도 제대로 부모님과 공유한 삶이 없었어요. 내가 너무 독립적인 삶을 추구하다 보니 그거 하나가 늘 후회됩니다. 그분들은 나만을 위한 삶을 살았는데 그분을 배려하는 삶을 살지 않았어요.

 은퇴 후의 삶이 너무 궁금한 두 사람. 강민지 씨는 고향인 김천까지 단독 도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면 부부가 함께 섬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사진 구혜정 기자
 은퇴 후의 삶이 너무 궁금한 두 사람. 강민지 씨는 고향인 김천까지 단독 도보 여행을 준비하고 있다. 여행을 마치면 부부가 함께 섬 여행을 떠날 계획이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육지에서 가장 먼 곳으로 여행을 준비하다

이제 은퇴 이후 모실 부모도 안 계시고, 자식은 자식대로 잘 살고 있으니 남은 건 60대 부부이다. 따로 살면서 등산, 자전거, 서핑, 그림 등 다양한 취미 부자가 된 강 씨는 걷거나 자전거 타기를 좋아한다. 남편과는 생활에 차이가 있고 취향도 많이 다르다고 한다. 
코로나로 인해 여행도 쉽지 않고 무엇을 할까 고민하고 있다. 우선 강 씨는 혼자서 고향인 김천까지 도보여행할 계획을 세웠다. 매일 조금씩 걷기 연습을 하고 있고 곧 출발할 계획이다. 그다음은 섬 여행. 이 씨의 책 작업이 마무리되고 인쇄에 들어가면 그때 어디로 여행을 갈지 구체적으로 생각해볼 것이다. 섬 여행을 언제, 어디로, 얼마나 할지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강민지 은퇴하기 두 달 전인 작년 11월 1일부터 자전거 종주여행을 했어요. 여행 말미에 고흥 녹동항에서 남편과 만나서 같이 여행했습니다. 이번에 섬에 가게 되면 숙소만 정해놓고 각자 따로 지낼 생각입니다. 

이 씨는 육지에서 가장 먼 곳에 있는 섬이 가장 유력한 여행 후보지라고만 말했다. 그는 섬을 여행지로 정한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이안수 지금 세태, 특히 정치적으로 너무나 보수냐 진보에 따라서 극명하게 다릅니다. 자꾸 섬으로 나뉘는 것 같아요. 이런 환경을 나는 어떤 자세로 임해야 하고,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생각해 보면서 섬 여행을 택했습니다. 풍랑이 오면 좋고, 아니어도 좋고요. 또 섬에서 풍랑을 경험하면 그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겁니다. 각자가 점점 더 먼 섬이 되어 가고 있습니다. 어떤 식으로 막고, 극복하는가가 중요합니다. 개별화 사회화도 좋지만 진보 사회에서는 어쩔 수 없는 것 같습니다. 개성이 강해지기 때문에 개별화가 더 심해지죠. 개별화의 삶을 부담되지 않게 살아야 할 것 같아요. 우리는 그런 부분에서 너무 좋습니다. 훈련이 잘 돼 있죠. 

그곳에서 이들은 사람들을 만나 이웃을 만들 계획이라고 했다. 부부지만 서로의 독립과 의견은 존중하며 이웃 안에서 여행의 재미를 찾을 거라고 말한다. 

이안수 부부가 따로 살면서도 고립된 삶이 아니고 간혹 만나면 일상을 공유할 겁니다. 사회에서의 완전한 은퇴는 예전 삶과 다른 삶이 펼쳐지기 때문에 내가 살아온 방식만 고집하면 안 됩니다. 예를 들어 은퇴한 남편이 부엌에 안 들어간다고 하면 그 사람만 외로운 겁니다. 아들딸도 자기가 낳았더라도 이웃이자 독립된 개체로 인식하면 편합니다.

이들은 과거도 지금도 앞서가는 부부다. 사랑은 당연하고 늘 믿을 수 있는 동지이자 친구, 동반자로서 은퇴 이후의 삶을 조심스럽게 이어가고 있다. 미지의 섬에서 좋은 친구와 인연 맺고 여행자 부부로서 소중한 추억과 함께하기를 기대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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