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일리임팩트 임철순 주필]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라는 책이 있었다. 1965년 대동문화사가 발간한 ‘전봉구(全鳳九)의 인생수기 자서전’인데, ‘여기 한 지겟군(요즘 표기는 지게꾼)이 사회의 양심을 묻는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었다.

중학교도 가지 못한 봉구는 아버지가 머슴을 살던 집의 소녀 초희와 첫사랑을 하게 된다. 그러나 초희는 서울로 떠나고, 대를 이어 머슴살이하던 봉구도 서울로 와 청량리 역전 지게꾼이 된다. 힘겹게 살면서도 봉구는 틈틈이 공부해 고입 검정고시에 합격했다. 어느 날 부자집에 식모살이하러 가는 시골 처녀의 짐을 지고 간 봉구는 15년 만에 초희를 만난다. 초희는 품삯도 받지 않고 뛰쳐나간 봉구를 찾아내 외무부 관료인 남편에게 부탁해 독일 광부 취업을 주선한다. 봉구는 출국하면서 그동안 써온 수기를 주고 갔고, 초희는 이걸 출판했다. 책이 히트하자 이듬해인 1966년 이를 모티프로 ‘4월이 가면’이라는 패티 김 노래가 나왔다. 1967년엔 내용이 딴판이지만 문희 주연의 영화도 나왔다.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1965)의 표지.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1965)의 표지.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라는 제목이 좋아서 그런지 그 뒤 같은 이름의 책이 여러 권 나왔다. 2009년에 나온 김순자 수필, 2016년에 나온 윤윤석 시집이 같은 제목이다. 2019년에 발간된 권오규 자전에세이는 ‘아버지 꿈 가슴에 안고 내 인생 내 지게에 지고’였다.

지게꾼의 삶은 오늘날 배달라이더의 삶으로 이어졌다. 이제는 ‘내 인생 내 짐칸에 싣고’다. 예전에 지게가 생활수단이었다면 지금은 이륜차가 필수 장비다. 어깨와 등으로 지게에 얹힌 삶의 무게를 고스란히 견디던 노동은 바퀴 달린 기계의 도움으로 육신의 부담은 줄고 이동은 비할 데 없이 빨라졌다. 그러나 경쟁과 속도의 압박, 교통의 위험으로 인해 목숨이 위태로운 나날이 계속되고 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사고가 잇따르고 있다.

8월 26일, 서울 강남구 삼성동 선릉역 네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던 42세의 오토바이 배달원이 화물차에 치여 숨졌다. 자식의 직업이 배달라이더여서 라이더에 관한 소식은 뉴스에서 꼭 본다던 어머니는 사고 6시간이 지나서도 아들의 죽음을 모르고 카톡을 보낸다. “전화 안 받네. 내일 백신 맞는다며 어디 갔냐.” 전화도 하고 문자도 보내며 걱정했을 어머니를 생각하면 정말 가슴이 아프다. 길거리에서나 어디에서나 배달원들을 보면 이 사건 생각이 난다.

    주문 출동을 기다리는 오토바이들. 주인들은 어디서 쉬고 있나. 사진 임철순 주필.
    주문 출동을 기다리는 오토바이들. 주인들은 어디서 쉬고 있나. 사진 임철순 주필.

그런 배달원들이 오토바이의 짐칸에 글이나 그림을 써붙이고 다니는 경우가 많다. 그중엔 내가 왕년에 일진이었다거나 이 오토바이를 어떻게 어떻게 장만했다고 과시하는 사람도 보았다. 우습거나 재미있는 글과 그림은 목숨을 걸고 살아가는 이들의 한 가닥 유머일까, 긴장과 압박을 견디는 일종의 한숨 돌리기일까. 내가 거리에서 만나 사진에 담은 것들 몇 가지를 소개한다.

    아기가 타고 있다니? 대체 무슨 뜻인지. 사진 임철순 주필.
    아기가 타고 있다니? 대체 무슨 뜻인지. 사진 임철순 주필.

왜 아기가 타고 있다고 그러지? 자동차 뒷 창에 ‘아이가 타고 있어요.’라고 스티커를 붙이고 다니는 사람들은 많이 봤다. 어떤 사람은 ‘초보운전에다 아이까지 타고 있어요.’라고 써놓았더라. 그런데 오토바이 짐칸에 아이가 타고 있다는 건 무슨 뜻일까? 아이가 타고 있는데 뚜껑을 덮고서 달려? 설마 유괴 약취범은 아니겠지?

   화장실 그림이 붙어 있는 짐칸.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임철순 주필.
   화장실 그림이 붙어 있는 짐칸.  도대체 이유를 모르겠다. 사진 임철순 주필.

이 사람의 짐칸엔 왜 화장실 그림이 그려져 있을까? 설마 응가를 담고 달리나? 이곳에서 저곳으로 응가를 배달하는 사람? 화장실이 아니라 엘리베이터 표지 아닌가 싶어 다시 살펴봤지만 역시 화장실 표지다. 알 수가 없다. 그냥 두기 밋밋하고 심심해서 아무 그림이나 떼어다 붙였다 치더라도 하필 왜 이걸... 어휴, 냄새야.

‘   소중한 바리스타’. 이건 아마도 광고전략일 것이다. 사진 임철순 주필.
‘   소중한 바리스타’. 이건 아마도 광고전략일 것이다. 사진 임철순 주필.

이건 이륜차는 아니지만 인생을 담고 다니는 짐칸인 건 마찬가지다. 바리스타는 ‘바 안에서 커피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이탈리아어다. 미각이나 후각이 뛰어난 사람이라야 성공할 수 있다는데, 커피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누가 훌륭한 바리스타인지 잘 알 것이다. 그러니 스스로 소중한 바리스타라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은 직업정신에 투철한 전문가임에 틀림없다.

나는 애시당초 바리스타 되기 틀렸다. 커피를 내리려고 물을 따르다 보면 그놈의 ‘졸졸’로 인한 육체적 연상작용 때문에 소변이 마려워 화장실에 꼭 가야 되니 어느 세월에 커피를 만들겠어?

그래서 달리 생각해봤다. 내 차에 ‘소중한 언논인(언론인이 아니다)이 타고 있어요.’라고 써붙이고 다니면 사람들이 알아줄라나? 뭐라고 할라나? 보나마나 정상이 아니라고 하겠지?

   안전운전을 해야지. 공복도 주의하고. 사진 임철순 주필
   안전운전을 해야지. 공복도 주의하고. 사진 임철순 주필

무엇을 내 짐칸에 담고 다니든, 무슨 일을 하고 사는 사람이든 과속은 금물, 안전 제일을 되뇌고 실천하며 살아야 한다. ‘비스타리’는 산에 다니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네팔 말이다. 천천히, 여유를 갖고 산에 오르자는 뜻이다. 세상살이도 또한 그렇게 비스타리로 해야 하는 거 아닌가.

저작권자 © 데일리임팩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