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질그릇이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났다고 들렸는데, 마당에는 아무도 없다. 부엌에 쥐가 들었나? 샛문을 열어 보니까, ’아 아 아이 아아 아야!‘ 하는 소리가 뒤란곁으로 들려온다. 샛문을 열려던 박 씨는 뒷문을 밀었다. 장독대 밑, 비스듬한 켠 아래, 아다다가 입을 헤 벌리고 납작하니 엎뎌져 두 다리만을 힘없이 버지적거리고 있다. 그리고 머리 편으로 한 발쯤 나가선 깨어진 동이 조각이 질서 없이 너저분하게 된장 속에 묻혀 있다.”

위 내용은 소설가 계용묵(1904~1961)이 1935년 ‘조선문단(朝鮮文壇)’에 발표한 단편소설 ‘백치 아다다’의 도입부 부분이다. 임권택(1936~ )감독이 ‘아다다’라는 제목으로 영화화(1987년)한 소설이기도 하다. 독자들은 소설의 도입부에서 오감(五感)이 반응하게 된다. 예를 들어서 굳이 질그릇이 땅에 부딪히며 ‘쨍그랑!’ 거리는 의성어를 언급하지 않아도 귀에 들리는 것 같은 환청에 젖어들게 된다는 것이다.

대체로 소설을 영화화하는 데는 문학적인 측면보다는 관객들에게 감동을 안겨 줄 수 있느냐가 기준이 된다. 물론 문학적으로도 성공한 소설을 영화화하여 많은 관객을 동원한 경우도 많다.

이청준(1939~2008)의 단편소설 ‘서편제’, 박영한(1947~2006)의 연작소설 ‘우묵배미의 사랑’, 조세희(1942~ )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등 많은 소설작품들이 문학성과 영화의 흥행성을 지녔다.

관객에게 감동을 주려면 일단 영상미가 좋아야 한다. 영상미가 좋다는 것은 소설의 묘사가 잘되었다는 말과 같다. 이론적인 설명은 집어치우고, 현실적으로 이제 소설의 첫걸음을 걷기 시작했는데 묘사를 어떻게 하느냐 하는 반문이 일어날 수도 있다.

소설을 오랫동안 쓰다 보면 묘사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지 않아도 중요한 부분에서는 저절로 묘사가 된다. 이를테면 소설의 도입부라든지, 갈등이 최고조를 향해 치달을 때라든지, 주인공이 심리적으로 어려움에 빠졌을 때 등은 상황을 더 생생하게 끌고 갈 수밖에 없어서 저절로 묘사가 된다는 것이다.

소설을 처음 쓰면서 소설은 묘사를 잘해야 한다는 말에 빠져서, 일부러 묘사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쓰면 뽕 따러 갔다가 뽕도 못 따고 임도 못 보는 결과가 될 수가 있다.

혼자 프랑스 파리를 다녀온 친구가 커피를 마시면서 여행 경험을 이야기한다고 가정해 보자. 파리의 아름다운 풍경만 이야기한다면 듣는 쪽에서 금방 하품을 하게 될 것이다. “북부 플리마켓(벼룩시장)을 갔더니 오물 냄새가 지독해서 손수건으로 코를 막고 다녔다. 거리 청소를 서울처럼 하지 않아서 곳곳에 버려진 쓰레기나 먹다 버린 음식물에는 파리가 앵앵거렸다.” 하는 식으로 이야기해주면 친구의 눈은 반짝반짝거릴 것이다.

소설은 작가가 쓰긴 했지만 ‘살아 있는 세계’를 보여주어야 한다. 살아 있다는 것은 영혼이 있다는 말과 같다.

어떠한 예술 장르이든, 예술 행위를 하는 작가의 영혼은 진실하다. 진실하지 않은 작가의 예술품은 영혼이 없으나, 작가의 영혼이 진실하면 예술품도 영혼이 깃들게 마련이다. 영혼이 있다는 것은 살아 있다는 것이고, 살아 있다는 것은 숨을 쉰다는 것이다. 죽어 있는 존재물들은 절대로 숨을 쉬지 않는다. 그냥 존재만 할 뿐이다.

프랑스 여행담을 들려주면서 단순히 자신의 취향에 맞는 경험만 늘어놓는다면 반쪽짜리 여행담이 될 수밖에 없다. 현지에서 보고 느낀 경험을 그대로 여과 없이 이야기해 줄 때 온전한 여행담이 된다.

소설을 쓰는 데 있어서도 작가가 진실로 아프게 쓸 때 독자도 아픔에 동반하게 된다. 진실하게 써야 한다고 해서 느낌과 감정을 송두리째 털어놓으라는 말은 아니다. 느낌과 감정은 어디까지나 주관적 요소이지, 객관적 요소가 될 수 없다.

형제가 사흘 굶은 끝에 짜장면 곱빼기를 먹을 때도 각자 느끼는 감정은 같을 수가 없다. 형은 ‘이 짜장면을 먹고 돈을 벌러 가야겠다.’고 생각하며 먹을 수도 있다. 동생은 그동안 배를 곯았던 설움만 떠올리며 눈물 젖은 짜장면을 먹을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건의 전개 과정이라든지, 상황이 벌어지게 된 동기나 배경을 꾸미거나 덧칠하지 말고 있는 그대로 써야 아팠을 때는 아픈 글이 되고, 기뻤을 때는 기쁜 글이 저절로 된다. 다음 제17강은 ‘묵은 김치가 맛있다’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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