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소설은 이야기이고, 시는 노래라고 하면 대체로 맞는 말이다. 이야기를 잘하는 사람들은 단순한 정보만 전해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보고 느낀 점을 곁들여서 전해준다. 정보만 전해주면 나도 알고 있는 이야기가 된다. 똑같은 정보라도 화자(話者)의 느낌이나 견해를 곁들여 듣게 되면 전혀 다른 정보처럼 받아들여져 기억에 저장된다.

노래를 부를 때도 가성(假聲)을 내지 말고 가슴에서 우러나오는 대로 부르면 박수를 받는다. 사람마다 사물을 받아들이는 감정이 달라서 알고 있는 노래도 특별하게 들린다. 시를 쓸 때도 시적 대상을 진실한 시선으로 볼 때 좋은 시가 나올 수 있다.

소설 읽기에 빠져든다는 것은 현실 세계가 아닌 소설 세계에 이주하는 것이다. 소설 세계는 현실과 환경은 같지만, 허구의 세계이다. 자전적 소설은 작가의 경험에 작가의 사상과 느낌을 접목한 것이다.

자전적 소설 세계를 움직이는 존재는 소설의 캐릭터여야 한다. 작가 자신은 철저하게 숨어야 한다.

잘 쓰인 자전적 소설은 작가의 분신이 캐릭터 안에 내재되어 독자의 눈에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렇지 않은 소설은 캐릭터에 작가의 얼굴이 겹친다. 캐릭터에 작가의 얼굴이 겹치면 현실 세계와 소설 세계를 오락가락하는 격이라서 소설 읽는 재미가 없어지고, 소설 세계에 몰입하기도 어려워진다.

일부 소설가들은 “소설은 재미로 읽는 것이 아니라, 문학적으로 읽는 것이다. 따라서 독자와 타협하는 것은 작가 정신에 어긋나는 것.”이라고 주장한다. 문학적 소설 읽기라는 말도 모호하지만, 문학을 이해하려고 소설을 읽는 사람들도 없을 것이다. 그 덕분에 오늘날 문학판이 나날이 줄어들고 있다.

작가가 경험한 사건을 소설화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작가가 경험한 사건을 구구절절 ‘그랬었다’라고 쓰면 현실 세계다. 작가의 경험을 타인(캐릭터)이 경험한 것처럼 재구성하는 것이 소설 세계다. 과거형으로 쓰게 되면 경험과 작가의 거리가 가까워서 자칫 자서전이 될 수가 있다. 작가와 경험을 연결해 주는 사이에 이야기꾼이 있으면 소설이 될 수밖에 없다.

초보자가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쓰면 경험담만 쓰게 되지만, 내 경험을 타인이 경험한 것처럼 쓰려면 저절로 경험담에 살이 붙게 된다.

예를 들어서 자신의 경험담을 그대로 쓰면 ‘갑자기 비가 내려서 옷이 모두 젖었다’라는 수준으로 쓰게 된다. 타인의 경험담을 쓰는 투로 쓰게 되면 ‘하늘이 컴컴해지더니 갑자기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나는 비를 피할 곳을 찾아서 무작정 뛰기 시작했다’라는 식으로 써지게 된다는 것이다.

소설가 양귀자(1955~ )의 자전적 작품인 단편 ‘한계령’에서 가수가 된 친구 은자가 자신의 노래를 들으러 나에게 서울에 오라고 한다. 나는 몇 번이나 약속을 어기게 되는 사이에 세월은 흐른다. 다시 친구가 이번이 마지막 무대니 꼭 오라는 말에 서울로 간다. 친구가 마지막에 부른 노래는 ‘한계령’이다.

‘한계령’은 고향에서 둥지를 틀고 사는 사람이라면 한두 번쯤은 경험했을 법한 이야기다. 친구가 가수는 아니더라도, 고물상으로 돈을 벌어 빌딩 주인이 된 친구, 고학으로 열심히 공부해서 고급공무원이 된 친구, 평범하게 살고 있지만 맨몸으로 상경해서 자기 집을 갖게 된 친구 등 비슷한 유형의 경험은 많다.

양귀자의 ‘한계령’이 소설로 성공할 수 있었던 점은 은자가 온힘을 다하여 부르는 한계령의 노래에서 아버지를 일찍 여윈 탓에 큰오빠가 생계를 꾸려가던 어린 시절의 추억에 잠긴다는 내용이 접목되어 있기 때문이다. 독자들은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경험에서 ‘한계령’이라는 노래를 통해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게 되는 것이다. 제14강은 ‘남기고 싶은 일은 꼭 써라.’에 대하여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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