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일반적인 소설작법에서는 ‘소설을 쓰는 작법론’에 대해서만 언급을 하고 있다. 이같은 커리큘럼은, 정해진 분량을 완성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춘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다.

소설을 처음 쓰는 초보자들을 위한 작법론이라면 ‘원고 분량 채우기’에 최소한 50% 이상을 할애해야 한다. 원고를 완성할 능력도 없는 초보자들에게 이론적인 작법론은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천자문도 못 외우는 학동에게 사서삼경(四書三經)을 강의하는 것과 다를 바가 없다. 산 정상에 오를 준비와 자신감이 있어야 길옆에 서 있는 꽃이나 나무를 살피고 하늘도 보게 되는 것과 같다. 제11강까지의 주요 내용이 ‘원고 분량 채우기’인 까닭이 바로 이 점에 있다.

자, 에베레스트산은 오르지 못할망정 한라산 정도는 충분히 올라갈 자신이 있으면 어떤 식으로 소설을 써야 할지를 알아볼 차례다. 여기서 말하는 어떤 식이라는 것은 ‘소설의 콘셉트(concept)’를 말한다. ‘소설에서 웬 컨셉?’ 소설을 처음 쓰는 분은 물론이고, 어느 정도 써 본 분들도 의아해하는 말일 것이다.

흔히 컨셉이라고 말하는 콘셉트는 ‘어떤 대상의 이미지를 전달하기 위해 선택한 일관된 주장’을 뜻한다. 건물을 짓거나, 상품 개발, 패션에서도 일관된 콘셉트가 매우 중요한 것처럼 소설도 마찬가지다. 콘셉트가 희미하면 주제 전달이 희미해진다.

소설의 콘셉트는 소설 전체를 아우르는 분위기이다. 소설에서 분위기는 언어와 배경을 어떤 방향으로 이끌어 나갈지를 결정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언어와 배경을 어떤 분위기로 말하느냐는 작가의 어조(語調)와 직결된다.

작가의 어조는 소설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소재, 주제를 바라보는 태도이다. 예컨대 윤흥길(1942~  )의 중편 ‘아홉 켤레의 구두로 남은 사내’는 소외되고 병든 인간에 대한 연민의 정으로 주인공을 그려내고 있다. 전상국(1940~  )의 단편 ‘우상의 눈물’은 ‘완곡한 비판과 풍자적’ 태도로 주인공을 관찰하는 소설이다.

문예 작품을 쓰는 것도 아니고, 초보자가 자전적 소설을 쓰면서 거창하게 ‘작가의 태도’ 운운하는 것은 시기상조 아니냐는 반문이 생길 수도 있다. 작가의 태도는 어려운 것이 아니다. 가족이나 지인들에게 추억을 말해 주는 말투가 슬픔이냐 기쁨이냐, 분석적이냐 냉소적이냐를 따지는 것과 같다.

모든 예술의 감상 대상은 사람이다. 개나 소를 위한 예술은 없다. 소설을 읽는 대상도 사람이다. 조지 오웰(1903~1950)이 쓴 ‘동물농장’에 등장하는 동물들도 사람을 동물로 치환한 것이다. 말하자면 역의인화(逆擬人化)라고나 할까. 

소설은 작가가 만든 가상의 세계관을 독자에게 보여주는 것이다. 작가가 상상으로 만든 세계는 인간의 현실세계와 같다. 그런데도 소설을 읽는 이유는 작가가 만든 세계는 현실세계와 다르게 더 진실해 보이거나, 더 슬퍼 보이는 요소들이 있기 때문이다.

작가의 세계관에 독자가 참여하는 것을 공감대라고 한다. 공감대를 형성하게 하려면 소설의 도입부에서 설정된 콘셉트를 결말 부분까지 유지하여야 한다.

아무리 재미가 없는 이야기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되게 하면 최소한 기억에 남는다. 충격적인 소재도 중구난방(衆口難防) 식으로 이야기를 하면 감동이 무디어는 이치와 같다.

소설의 콘셉트를 유지하는 것은 절대 어렵지 않다. 인간은 감정의 동물인 만큼 생은 굴곡이 있기 마련이다. 따라서 누구나 지나온 생애가 100% 불행으로 이어졌거나, 100% 행복으로만 이어지지 않았다. 징검다리를 건너는 것처럼 인생은 불행과 행복으로 교직(交織)되어 있다.

자신의 생애를 소설화하는 데 있어서, 소설을 쓴다는 생각 없이 단순하게 스토리를 이어가는 데 급급하거나, 지난 생애를 기록한다는 생각으로 쓰면 주관적일 수밖에 없다.

소설을 쓴다는 것은 내 경험을 독자들에게 보여주겠다는 의도의 발로이다. 자전적 소설도 작품성을 떠나서 독자들이 읽을 수 있도록 써야 한다. 내 생각을 독자도 고개를 끄덕이며 공감할 수 있게 하려면 주관적인 시선을 벗어나서 객관적으로 써야 한다. 즉, 소설의 콘셉트를 유지하려면 객관적인 시선으로 자신의 생애를 더듬어야 한다는 것이다. 제13강은 ‘내 경험을 타인의 경험처럼 써라.’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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