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미산마을공동체& 은혜공동체

도시와 국가가 형성되는 과정을 보면 씨족을 중심으로 부족을 이루고 서로 도우며 성장해왔다. 작은 단위 마을공동체는 국가가 세워진 뒤에도 기초가 되고 생산 뿌리가 되는 원동력이었다. 하지만 현대사회로 접어들면서 개인 이기주의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마을의 의미는 퇴색돼 갔다. 척박함 속에서 다시 부족을 이루고 사는 사람들이 있다. 한 곳은 마을을 이루고, 또 한 곳은 한집에 모여 산다. 비슷한 듯 다른 이들. 함께 사는 이유는 뭘까?

성미산마을공동체, 마을공동체의 표본이 되다

성미산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모이는 성미산 마을회관.
성미산마을공동체 사람들이 모이는 성미산 마을회관.

서울시 마포구 성미산 일대에 있는 성미산마을공동체는 완전하게 삶을 공유하는 형태가 아니다. 마을공동체의 특성을 활용해 협동조합을 만들고 공동육아, 대안학교 등에 관심을 쏟는 형태라고 생각하면 된다.

지역 안에 있다고 공동체가 아니라 각 집단에 들어가 활동하고 생활하는 의미의 공동체라고 보면 된다. 예를 들어 지금 막 결혼을 해서 자녀를 키워야 하고 육아에 집중해야 하는 사람들은 공동육아에 관심을 갖는다.

아이들이 성장하면 초등학교를 보내야 하니 대안학교를 중심으로 모이게 된다. 국영수 가르치고, 피아노 다니는 사교육은 싫으니 방과후 교실도 성미산마을 공동체만의 방식으로 만들어 갔다. 그렇게 자신들만의 커뮤니티를 형성하게 됐다.

공동육아에서 청년으로 아이들이 성장하고 난 뒤 육아 커뮤니티를 벗어난 부모세대. 이들은 다른 것에 눈길을 돌려 마을에서 즐겁게 생활하기 위한 것을 찾아가게 된다. 한마디로 성미산마을공동체는 다양한 커뮤니티 결속으로 성장하고 다녀진 사회이다. 

재난 시대에 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전환마을이나 기후위기, 환경에 대한 공부를 하며 모임을 갖거나  생활협동조합을 통해서 친환경 공부도 해나간다.  최근에는 고령화에 대한 관심도 생기기 시작했다. 성미산마을공동체가 생기던 30년 전만 해도 고령화에 대한 대안을 갖고 있지 못했다. 이제는 조금씩 복지 영역에서 활동하는 그룹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NGO단체인 마포희망나무는 독거어르신,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구호활동을 하고 있다.

의료사회복지 영역인 마포의료사회적협동조합 무지개의원은 어르신 관련 돌봄 영역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다. 울림두레생활협동조합은 먹거리로 시작했는데 땅을 살리고 환경을 살려야 건강하게 산다는 마음을 통해 먹거리에서 돌봄까지 영역을 넓혔다. 어린이부터 어르신까지 돌봄 영역을 확장, 어르신 돌봄 케어에 집중하는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마포희망나눔, 무지개의원, 울림두레돌봄사회적협동조합이 합쳐서 어르신의 영역을 좀 더 어르신 중심적으로 케어하는 시스템을 민간으로서 시도하고 있다. 

성미산마을공동체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
성미산마을공동체 아이들이 다니는 대안학교.

거주가 아닌 커뮤니티가 공동체를 이룬다

성미산마을에는 ‘사람과마을’이라는 운영체계가 있다. 공동육아로 시작했던 어린이집, 학교, 마을 방과후 희망나눔, 의료사협, 돌봄사업 같은 단위, 발달장애 중심 역할을 하는 민간단체인 사부작, 동네 책방 개똥이네 놀이터 등 각 단위가 고유 영역을 가지고 있다. 단위를 모아서 마을에서 좀 더 공동체성을 가지고 함께하는 중심축이 ‘사람과마을’이다. 

함께 사는 공동체라기보다는 조합생활을 하므로 사람마다 생각이 다르고 성미산마을공동체를 대하는 온도 차이도 있고 수준도 다르다. 그중에는 일반 육아에서 폭행이나 문제가 많기 때문에 안전한 곳을 찾아 선택해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어떤 누군가는 먹거리 안전성 때문에 성미산마을공동체로 들어온다. 물론 조합원 활동을 제대로 해보고 싶어서 들어오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공동체를 이루려고 하는 각자 개인차와 시각, 이루고자 하는 것이 상당히 다르다. 

그런 차이를 계속 좁혀야 하는 것도 성미산마을공동체가 해결해야 하는 숙제다. 서로의 생각을 맞추기는 쉽지 않지만, 그 또한 해나가는 것도 성미산마을공동체만의 힘이다.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공동체가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마을회관 앞의 각양각생 전단지 게시판.
마을회관 앞의 각양각생 전단지 게시판.

성미산마을공동체의 시작은 육아와 교육에 초점이 맞춰져 있었다. 지금은 아이뿐만 아니라 주민과 함께 하고 돕는 형태에도 관심을 갖고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마포희망나눔의 경우 홀몸노인들과 함께 다양한 활동을 한다. 한 달에 두 번 반찬 지원을 하고 일주일에 한 번 만나서 ‘청춘살롱’이라고 날을 정해 같이 놀기도 한다. 상근자가 고작 두세 명이기 때문에 마을 주민이 함께해야 성장하고 봉사에도 의미가 생긴다.

성미산마을 공동체에는 성산1동 주민 2만5000여 명 중 10%가 함께 하고 있다. 사람들의 경제적 수준도 차이가 크다. 월세 사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부자도 있다. 

물론 조합으로 형성된 공동체이기는 하지만 마음 맞는 사람들과 공통주택을 지어 사는 사람들도 있다. 소행주(소통이있어행복한주택 건설사가 지은 공간)와 공동주택이 있다. 배우 고창석 씨 같은 경우 공동주택에서 살고 있다.  

 

은혜 공동체, 건물 안에서 함께 살다

은혜공동체 외부 전경. 
은혜공동체 외부 전경. 

은혜공동체는 주소는 서울이지만 의정부와 완전히 맞닿아 있다. 도봉산 절경에 감탄하며 고즈넉한 동네 안으로 들어오면 마치 딴 세상으로 온 느낌이라고나 할까. 문을 열고 은혜공동체 안으로 들어가면 다시 또 다른 세상이 열린다. 시니어타운이 아닌, 아이들의 기숙사도 아닌 정말 사람들이 모여 사는 집안이다.

성미산 공동체가 마을 공동체를 중심으로 다양한 방식의 네트워크로 연결됐다면, 은혜공동체는 온전하게 한 건물 안에서 가족의 형태를 이루고 살고 있다. 집 안에 아이들이 공부하는 대안학교가 있고, 각자 역할을 나누고 생활한다. 안에서 창업도 하고 공부도 하고 쉴 수도 있다. 공동체 자체가 집이고, 학교이며 은행이 될 수도 있고 일정 부분 국가의 형태도 갖고 있다.

주방과 거실을 중심으로 3개 그룹으로 나뉘어 생활하는데 첫 번째 그룹은 아이를 양육하는 부부 모임이다. 두 번째는 아이를 낳지 않는 이른바 딩크족 그룹이다. 마지막으로 여성 그룹이 있는데 싱글과 한부모 가족 엄마가 함께 산다. 평균 30대 후반에서 40대 중반, 50대도 함께 생활하고 있다.

개인이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은 물론 그룹마다 주방과 거실 형태가 색다르다. 지하에는 아이들의 대안학교로 사용하는 공간과 대형 단체 주방 등이 있다.

은혜공동체 내 주방.
은혜공동체 내 주방.

심지어 취재를 하러 갔을 때 건물 안을 투어하는 프로그램 담당자도 따로 있었다. 코로나가 아니면 따로 예약하고 숙박할 수 있는 게스트룸도 있다. 적당한 선에서 조직화, 분업화가 되어 있고 이 속에서 아이들이 자라고 꿈도 키워나간다.

이 건물 안에는 50여 명이 함께 살고 있다. 아이부터 어른까지 시끌벅적 대가족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혈연보다는 삶의 형태, 세대, 성별 다양한 형태로 부족을 이뤘다.

도봉산으로 오게 된 가장 컸던 이유는 아이들 때문이었다. 교회에서 청년 모임으로 만나 시간이 흘러 결혼하고 아이를 낳고 키우다 보니 아이를 척박한 도시에서 키우는 것이 맞을까 고민하게 됐다. 아이들이 뛰어놀 수 있는 곳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산 밑으로 왔다고 한다.

두 번째 이유는 좀 더 자연과 가까이 살아야겠다는 마음이었다. 함께하던 모두가 서울시 동대문구에 모여 살고 있었고 좀 더 한적한 곳을 찾아보자며 마음을 모았다.

청년 기도 모임으로 만나 성경 공부를 하다 보니 사회에 이바지해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어 맺은 결실이 은혜공동체였다. 물론 어떤 이는 다르게 볼 수도 있지만, 성경에서 말하는 궁극적인 사회의 형태는 더불어 사는 사회라는 결론을 내렸다. 잘살고 못살고가 아니라 모두가 좋은 사회, 가난한 자가 없고 경제 공동체로서의 모습도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
   공동체 사람들이 함께 찍은 단체 사진.

경제 공동체를 이루다

처음에는 소득의 얼마를 떼어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돈을 모으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고 친밀감과 신뢰가 높아지면서 보편 복지를 실현하기 위해 은혜공동체만의 기금을 만들었다. 교육 의료비 지원 명목의 보험 시스템을 공동체 내에서 만들었다. 무상교육 무상 의료 복지 시스템을 7~8년 전에 마련했다. 2000년부터 모여서 공부했고, 2013년부터 복지 시스템을 이미 마련해서 운영하고 있다.

함께 모여 살아서 좋은 것은 주거 위기에서 해방됐다는 점이다. 함께하던 청년들 대부분이 전세 아니면 월세를 살았다. 월세나 전셋값이 오르면 많이들 버거워했다. 어렵겠지만 집을 같이 지어서 살면 어려움을 겪지 않으리라 생각했다. 경제적 압박에서 밀려나지 않고 쭉 살고 싶은 주거를 만들고 싶었다고 한다.

같이 살아보자는 마음이 70%였고 30%는 안정적인 주거를 이루고 싶은 마음이 있었다. 그래서 협동조합을 만들었다. 법인이 건물을 소유하고 있다. 모두 이 집의 주인이고 이 집에서 임대로 사는 소비자이기도 하다. 주택비용이 전혀 늘어나지 않는다.

   계단에 꽂혀 있는 책들. 
   계단에 꽂혀 있는 책들. 

공동육아로 자라난 아이들

동대문에 있을 때는 저녁이 될 때까지 학원에 있거나 혹은 집에서 혼자 노는 시기를 보냈다. 처음에는 학교 갔다가 오면 모이게 했다. 시간만 보내는 식의 학원을 보낼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게 됐다. 아이들도 다니고 싶어 하지 않았다. 그 시간에 아이를 모이게 하고 공동체에서 교사를 채용하고 아이를 관리하자고 했다. 그렇게 1년 정도 프로그램을 제공했다.  프로그램은 교사가 했다. 공부 말고 놀이 위주로 시간을 보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아이들 성적은 제각각이다. 그러나 아이들이 행복하길 바라는 마음에서 선택했다. 사람과 잘 어울려 살아가는 사람이면 좋겠다는 게 성장의 목적이었다. 아이들이 성장할 수 있었으면 했다. 아이들까지 정말 잘 지내고 큰아이들은 대학생이 됐다. 이곳아이들은 평생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소리를 들어보지 않고 살았다. 자기가 어느 단계에서 공부해야겠다는 마음이 들면 열심히 하는 자발적 에너지가 있었다. 대학을 가기는 했다.

집을 지을 때는 나이가 들어 노인이 되는 것을 미리 상상한다. 그 때문인지 앞으로는 세대융합형의 삶이 예상되기도 한다. 이들이 지향하는 마을 형태가 바로 그러할 것이다.

누구나 마을에서 태어나고 죽을 때까지 마을에서 살다가 생을 마감한다. 물론 같은 마을이 아닐 수는 있다. 은혜공동체 사람들은 신기하게도 부모세대의 케어를 받으며 살다가 결국에는 이웃세대의 케어를 받으며 삶을 마감하는 식의 인생을 꿈꾸고, 생각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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