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임철순 주필] 오바마 전 미국 대통령이 마스크도 쓰지 않고 환갑잔치를 벌여 미국이 며칠동안 시끄러웠다. 지난 7일 매사추세츠 주의 고급 휴양지 마서스비니어드섬의 저택에서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과 오프라 윈프리, 비욘세를 비롯한 연예인 등 수백 명이 참석한 가운데 열린 행사에서는 마스크를 쓴 사람이 거의 없었고, 사회적 거리두기도 지켜지지 않았다고 한다.

미국은 지금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10만 명을 넘는데 백신을 맞으라, 마스크를 쓰라며 국민 설득에 앞장서던 전직 대통령이 이런 행사를 벌이고 하루 종일 춤을 추었다니 시끄러울 수밖에 없다. 사진 촬영을 금지했는데도 일부 참석자가 찍은 동영상이 유출되기도 했다.

뉴욕타임스의 백악관 담당 애니 카니 기자는 행사 직전 CNN방송에 출연해 참석자들에 대해 "교양있고 백신접종을 마친 사람들"이라며 "안전 수칙을 지킬 것"이라고 옹호했다가 뭇매를 맞았다. 이를 보고 퓰리처상 수상자인 언론인 글렌 그린월드는 자신의 트위터 계정에 "방역 위기이지만 교양있는 사람들은 즐거운 시간을 갖도록 허용하자"고 비꼬는 글을 올렸다. 공화당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백신 접종과 마스크 쓰기를 거부해온 사람들은 “(마스크와 백신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그들의 위선이 드러났다”고 비난했다. 오바마 행정부에 몸담았던 인사들조차 환갑잔치를 강행한 데 대해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나도 놀랐다. 평소 사려 깊은 관용의 정치를 해왔고 퇴임 후에도 인기가 높은 사람이 이 엄중한 시국에 웬일인가 싶었다. 그날 하루 종일 춤을 춘 것도 평소에 보기 어려운 모습이었다니 뭐에 씌었나, 뭔가 인생관이 달라졌나 싶기도 하다.

오바마는 1961년 8월 4일생이니 올해 환갑인 건 틀림없다. 환갑이 노년의 시작이거나 새로운 인생의 출발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있는 것도 틀림없는 일이다. 그런데 미국 사람들이 언제부터 이렇게 동양인들처럼 환갑 진갑이나 칠순 같은 걸 따졌던가.

       환갑은 우리 나이로 61세이지만 누구나 60이 되면 삶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환갑은 우리 나이로 61세이지만 누구나 60이 되면 삶이 크게 달라지기 시작한다.  

환갑은 우리 나이로 61세를 말하는데, 지내놓고 보니 내게는 별것도 아닌 것 같다. 어릴 때 보았던 할머니의 환갑은 대단한 동네 잔치였다. 차일을 친 마당에 멍석을 깔고 하루 종일 손님을 맞았다.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시끌벅적 즐거운 명절처럼 보냈던 기억이 난다. 평균수명이 지금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큼 짧았던 시절에는 환갑이 큰 의미가 있었다.

하지만 지금이야 어디 그런가. 해외여행을 가거나(코로나 때문에 요즘은 그것도 날샜지만) 가족들과 밥이나 먹고 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나는 11년 전 고교 동창회에서 졸업 40년을 기념해 합동 환갑잔치를 했는데, 이미 환갑이 지났거나 아직 1년 더 있어야 하는 친구들까지 앞뒤 3년을 다 뭉뚱그려 환갑이라고 함께 어울렸다.

이제 한 달 남짓 지나면 칠순을 맞는다. “나이 칠순이 되면 신선이 되는 줄 알았더니 그게 아니더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는데, 나도 같은 생각이다. 신선이 되기는커녕 말과 행동과 마음이 아직도 어리고 덜 익어 체통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이름엔 ‘철’이 들어 있는데 철들려면 아직 멀었다. 내가 애용하는 말 그대로 철 들자마자 노망나게 생겼다.

하긴 지금은 칠순도 젊다고 말하는 세상이다. 기운이 뻗쳐서 그런 걸까, 70대가 며느리를 성폭행하고 엽총을 마구 쏴대는 각종 노인범죄가 비일비재하다. 아니 매년 더 늘어가고 있다. 나이 칠순을 종심(從心)이라고 한다. 공자의 ‘종심소욕불유구’(從心所欲不踰矩, 하고 싶은 대로 해도 법도를 어기지 않는다)라는 말에서 따온 별칭이다. 그러니 종심은 종심인데 범죄를 저지르는 종심이라면 공자님한테 불려가서 혼나야 마땅하다.

칠순을 수백(垂白) 또는 수로(垂老)라고 말하기도 한다. 백발이 드리워지는 나이, 늙음이 드리워지는 나이다. 드리워진다는 말은 어둠, 그늘, 그림자 따위가 깃들거나 뒤덮는다는 뜻이며 아래로 늘어지는 모습이다. 차분한 안정과 함께 기력의 쇠진(衰盡)을 형용한다. 하지만 드리워지는 것은 어둠과 그늘만이 아니다. 빛과 명예도 드리워진다고 말할 수 있다.

    "나잇값을 하라"는 말에는 세대간의 갈등과 부조화가 담겨 있다. 
    "나잇값을 하라"는 말에는 세대간의 갈등과 부조화가 담겨 있다. 

나이가 들면 당연히 나잇값을 해야 한다. 나이가 벼슬이냐고 말하지만, 나이는 벼슬이 돼야 마땅하다. 다만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을 수 있는 품격과 행동을 갖춰야 한다. 환갑잔치가 육갑잔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지미 카터 전 미국 대통령은 퇴임 후에 더 명예가 드리워지고 있는 사람이다. ‘사랑의 집 짓기’ 봉사 등으로 존경을 받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게 부부가 해로하고 있으니 참 부러운 일이다. 그의 저서 ‘나이 드는 것의 미덕’ 그대로다. 올해 96세인 그는 부인 로잘린(93) 여사와 함께 가까운 친지들만 초청해 7월 7일에 결혼 75주년 모임을 했다. 오바마 환갑잔치가 열리기 딱 한 달 전이다.

어떤 사람이 유명 방송인을 비판하면서 “생각이 어리다”, “나잇값 좀 해라”라고 했다가 고소를 당했다는데, 이런 말로는 모욕죄가 성립되지 않는다는 판례가 있다고 한다. 이걸 참고해 오바바 전 대통령에게 “나잇값 좀 하시오.”, “호감을 가진 사람들을 실망시키지 마시옷!”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하지만 오바마도 카터처럼 나이들어 할 수 있는 좋은 일을 곧 찾아낼 거라고 생각한다. 아직 젊으니 시간이 충분하고 창창 넉넉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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