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철순 미디어SR 주필

[미디어SR 임철순 주필] 대선 출마 선언에 이어 한 달 여 만에 국민의힘에 입당한 윤석열 전 검찰총장의 활동 폭이 한층 더 넓어졌다. 그런데 고개를 너무 많이 돌린다거나 실언이 잦다거나 ‘쥴리’ 논란으로 조용한 날이 거의 없다. 지지율도 오르락내리락 하는 것 같다.

하지만 그런 것보다 내가 더 궁금했던 건 그가 자기 이름을 어떻게 발음하느냐였다. 그동안 아나운서나 기자들이 방송에서 부르는 이름이 윤서결, 윤성녈 등으로 계속 엇갈렸기 때문이다. 지금 이 글의 독자들도 맨 첫 문장을 읽으면서 자기가 익숙한 대로 발음을 했을 것이다.

그는 유튜브에서 분명하게 “국민 여러분 안녕하세요? 윤성녈입니다”라고 인사를 했다. 첫 방송치고는 여유가 있고 편안해 보였다. 그런데 나는 그걸 들으면서 ‘왜 윤서결이 아니고 윤성녈이지?’ 하고 고개를 갸우뚱했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려면 한자를 따져보아야 한다. 그의 한자 이름은 ‘尹錫悅’이다. 가운데 글자는 항렬이니 그렇다치고 마지막 글자 悅이 문제다. ‘기쁠 열’이라고 훈독하는 ‘悅’은 기분이 좋아 입이 여덟 팔(八)자 모양으로 벙긋 벌어지는 모양을 나타낸 글자라고 한다. ‘논어’ 학이편의 첫 구절인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學而時習之不亦說乎]”에 나오는 ‘說(=悅)’이 바로 그런 기쁨에 해당하는 글자다. 마음이 풍요롭고 편안한 상태를 나타낸 글자 悅은 ‘열’이지 ‘렬’로 읽을 수 없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윤석열 전 검찰총장. 사진. 구혜정 기자

그런데 본인을 포함해서 윤성녈이라고 읽는 사람들이 많다. 심지어 어느 방송에서는 앵커가 ‘윤서결’이라고 했는데, 바로 그 뒤를 이어 보도를 하는 기자가 ‘윤성녈’이라고 발음하는 경우도 있었다.

언론인 중에 김창열(金昌悅, 1934~2006)이라는 분이 있었다. 한국일보 사장, 방송위원장을 역임한 분인데 사람들은 그를 김창녈이라고 불렀고, 문자 그대로 김창열이라고 부르는 사람은 없었다. ㅇ과 ㅇ이 만났을 때는 문제가 없다. 하지만 ‘ㄱ · ㅋ · ㄲ’이 ‘ㄴ · ㄹ · ㅁ’을 만나면 ‘ㅇ’으로 소리가 바뀐다. 닿소리 이어바뀜, 이른바 자음접변 때문이다. 그런데 ㄱ과 ㅇ이 만나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는 것이다.

      '윤서결'로 발음하라고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송진형씨.
      '윤서결'로 발음하라고 1인시위를 하고 있는 송진형씨.

1주일 전에 송진형 씨라는 사람이 국립국어원과 방송통신심의위원회, 청와대 앞에서 “윤석열은 ‘윤서결’로 읽어야 맞다. ‘윤성녈’은 잘못된 발음이니 더 이상 국어 파괴 행위를 방관하지 말고 멈추어 달라”는 1인시위를 했다.

뭘 하는 분인지 잘 모르겠지만 송씨는 “방송은 국민들의 언어생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 말 한마디를 하더라도 어법에 맞게 바르게 해야 한다”며 “지금이라도 방송은 윤석열 후보의 이름을 바르게 읽어달라”는 주문을 했다.

윤석열 전 총장의 이름은 여주지청장 시절부터 방송에 자주 언급됐고, 검찰총장 인사청문회 때도 어떻게 발음해야 하는지 논란이 벌어졌다. 국립국어원에는 “윤석열 이름을 어떻게 발음해야 하나요?”라는 문의가 계속 올라왔다. 국립국어원은 “윤서결로 발음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한자의 발음에 의해 ‘윤성녈’로 발음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라고 답했다. 그러다가 답변을 정정해 “윤석열’의 ‘석열’은 복합어도 아니며, 한자 구성을 고려해도 ‘성녈’로 발음될 이유가 없다. ‘윤서결’로 발음하는 게 적절하다.”고 밝혔다.

국어학자들도 ‘윤서결’이 맞다고 한다. KBS 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부장인 유지철 아나운서는 한국일보 칼럼을 통해 “이름의 표기에서는 한글맞춤법에 맞지 않더라도 개인 의사를 존중해 이름을 표기하고 있다”면서도 “발음은 본인이 원하는 발음으로 불러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다. 표준발음은 ‘윤서결’이다”라고 말했다.

본인들의 희망에 따라 이름을 다르게 표기하는 경우도 있다. 김응용 전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 회장은 한자로 ‘金應龍’, 선동열 전 야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宣銅烈’인데, ‘龍’과 ‘烈’의 본음이 ‘룡’, ‘렬’이므로 ‘김응룡’, ‘선동렬’로 쓰는 게 맞다. 히지만 본인들의 의사대로 ‘김응용’, ‘선동열’로 표기하고 있다.

뽀빠이 이상용도 한자가 ‘李相瀧’이니 이상룡이 맞지만 본인이 이상용이라고 쓴다. 내가 아는 사람은 한자가 ‘鄭在龍’이다. 그래서 정재룡이라고 했더니 본인이 정재용으로 쓴다고 했다. 잘 이해가 안 되지만 원하는 대로 그렇게 불러주려 하고 있다(趙在鏞은 조재용이 맞는다. 그러나 鄭在龍이 왜 정재용이란 말이란 말인가? 나 원 참!).

앞서 인용한 송진형 씨는 “윤석열 후보가 자기 이름을 ‘윤성녈’로 발음해달라고 했더라도 한 개인이 국어의 음운규칙을 공공연히 어길 것을 요구하는 것은 제왕적 행태”라며 “윤성녈로 불리고 싶으면 ‘석’을 ‘성’으로, ‘열’을 ‘렬’자로 개명할 일이지 타인에게 ‘발음 오류’ 행위를 강요해서는 안 된다”는 말도 했다. 그는 ‘윤석열의 이름 발음을 바로잡아 주십시오’라는 청와대 국민청원도 했다. 이 청원은 사전동의 100명 이상의 요건을 충족했으나 청원 요건에 위배돼 관리자에 의해 비공개 처리된 상태다.

이름 발음은 결국 본인의 선택이 중요한데, 만약 그가 대통령이 된다면 대통령 이름 때문에 국민의 편이 갈리는 일이 생기는 게 아닐까 괜히 걱정스럽다.

悅은 참 좋은 글자다. 悅近來遠(열근내원) 또는 近悅遠來(근열원래)는 가까이 있는 사람들을 기쁘게 하고 먼 곳의 사람들을 오게 한다는 뜻이니 이것 이상의 정치가 있겠는가. 松茂柏悅(송무백열), 소나무가 무성한 걸 보고 측백나무가 기뻐한다는 뜻이다. 벗이 잘 되는 걸 기뻐하니 훌륭한 태도다. 行仁悅民(행인열민), 인(仁)을 행하고 백성을 기쁘게 한다. 정치란 모름지기 이렇게 해야 된다.

悅使(열사), 남을 위해 힘쓰기를 즐거워한다는 말도 참 좋다. 悅下(열하)는 아랫사람에게 잘 한다는 뜻이다. 安上在於悅下 爲己在乎利人(안상재어열하 위기재호이인), ‘윗자리에서의 편안함은 아래를 기쁘게 함에 있고 자신을 위함은 남을 이롭게 함에 있다.’ 본받고 따라서 실행해야 할 일이다.

이름은 자기 것이지만 남이 불러줘야 그 의미가 제대로 살아난다. 공인일수록 더욱 그렇다. 윤성녈 그대로일 것인가, 윤서결이 될 것인가. 결국 그 자신의 선택에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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