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한만수 소설가, 한국문예창작진흥원 원장

일기는 경험하지 않은 일을 가식적으로 쓰거나 좋은 말만 찾아서 꾸며 쓰지 않는다.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생각을 한마디도 여과 없이 진실하게 쓴다. 그래서 일기 쓰기는 단순한 글쓰기를 떠나서 자신과 일기장과의 은밀한 교감이 이루어지는 일이다. 일기장에는 내밀하게 간직하고 있던 비밀도 풀어놓을 수 있다. 이런저런 이유로 부모님이나 친구들에게 말하지 못했던 서운한 감정이나 힘들었던 일들도 일기장은 아무런 조건 없이 받아 준다.

일기 쓰기가 글쓰기에 많은 도움이 되는 이유 중 첫 번째도 진실하게 쓰는 습관을 기른다는 점에 있다. 두 번째는 꾸준하게 쓰는 습관이다. 일기 쓰기뿐만 아니라 어떤 일이든지 꾸준하게 계속하면 실력이 늘게 되어 있다. 세 번째가 자유롭게 글을 쓰는 습관에 길들여진다는 점이다. 소설가 김연수(1970~ )는 “일기는 잘 쓰기를 위한 글쓰기가 아니라, 자주 쓰기 위한 글쓰기”라고 말했다. 자유롭게 글을 쓰면 글은 잘 써야 한다는 강박관념에서 벗어나 어휘력이 늘어나게 된다.

실제로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1828~1910)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내고도 세계적인 대문호가 될 수 있었던 원동력은, 열아홉 살부터 시작해 평생 이어진 ‘일기 쓰기’다. 평범한 일기 쓰기가 톨스토이를 세계적인 대문호로 만든 출발점이었다고 할 수 있다.

일기는 써 보지 않은 사람들이라도 어떻게 써야 하는지는 알고 있다. 당장 오늘부터 일기를 쓰겠다는 계획만 있으면 얼마든지 실현 가능한 부분이기도 하다.

장편소설을 쓰려는 많은 사람들은 “인터넷으로 메일을 보내는 것도 어려운데, 원고지 일이백 장도 아니고, 천장이 넘는 분량을 어떻게 쓰느냐?” 는 질문을 많이 한다. 그런 분들에게 “1년 동안 하루도 쉬지 않고 일기를 쓸 자신은 있느냐?”라고 질문을 하면 “그 정도는 결심만 하면 얼마든지 쓸 수 있다.”라고 자신감을 드러낸다.

일반적으로 일기는 단행본 크기의 일기장에 쓴다. 하루에 대략 200자 원고지 5매 분량을 쓴다면 1년에 200자 원고지 1825매를 쓴다는 결론이다. 1000매 정도는 우습게 쓴다는 계산이 나온다.

자전적 소설도 일기를 쓰는 것처럼 창작일기를 바탕으로 꾸준하게 쓰면 누구나 쓸 수가 있다. 일기를 쓸 때처럼 꾸며서 쓰지 말고 생각나는 대로 쓰면 되는데도 독자의 시선을 의식해서 과장되게 쓰거나 미문(美文)으로 써야 한다는 잘못된 생각이 소설쓰기를 어렵게 만들 뿐이다. 바꿔 말해서 일기 쓰기처럼 쓴다면 장편소설 쓰는 것은 누워서 떡 먹기라는 말과 같다.

문제는 방법론이다. 일기 쓰기는 독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주관적으로 써도 되지만, 소설 쓰기는 독자를 염두에 두고 써야 한다. 독자는 작가를 배려하며 글을 읽지 않는다. 객관적인 시선으로 소설을 읽는다.

일기장에는 3년째 백수 생활을 하고 있지만, 올해는 돈을 많이 벌어서 내년에는 세계 여행을 가겠다고 써도 상관이 없다. 소설에서는 전세를 월세로 바꾸고 보증금으로 확실하게 돈을 벌 수 있는 증권에 투자하겠다거나 보증금으로 세계 여행을 하겠다는 등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여야 한다.

소설을 쓰면서 어떻게 쓰는 것이 주관적인지, 객관적인지 생각을 하면서 쓰려면 진도가 나가지 않는다. 단순히 지금 소설을 쓴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다 보면 대부분 객관적으로 써지게 된다.

소설은 일기와 다르게 작가가 경험한 현실에 상상력을 덧붙여서 완성을 한다. 작가의 상상력은 ‘그럴듯한’ 혹은 ‘있을 법한’ 거짓말이다. 있을 법한 거짓말은 독자들이 의심을 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준의 거짓말이다. 아침에 자고 일어났더니 갑자기 영어 방송이 귀에 들어오고, 하늘을 나는 능력이 생겼다는 등의 허무맹랑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아버지는 과묵한 성격이셨다. 웬만한 일에는 입을 열지 않으셨다."라는 글은 작가의 경험이다. 소설의 긴장미와 재미를 덧붙이기 위해 "아버지는 형이 군대 가는 날도 배웅하지 않으시고 나무하러 가셨다."라며 상상력을 동원한 거짓말로 경험을 부풀려 쓰면 사실보다 훨씬 읽는 재미가 있다. 제10강은 ‘막히는 부분은 포기하라’는 주제로 이야기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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