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중투표제 채택률 3년간 5%이하...미채택 기업 '해외 투기자본 경영권 위협우려'

업계 전문가 "낮은 채택률, 기업들이 소액주주 이해 대변에 보수적이라는 반증"

사진. 게티이미지뱅크

[미디어SR 박민석 기자] 집중투표제가 기업 경영 안정성을 저하시키고, 채택률도 낮아 실효성이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가운데, 소액주주 권익보호를 위한 실질적 방안이 될 것이라는 목소리도 점차 힘을 얻고 있는 분위기다.

이종오 한국사회책임투자포럼 국장은 21일 미디어SR에 "국내에는 소액주주 권익보호 장치가 거의 없는 실정"이라며 "집중투표제는 이들이 주주권리를 내세울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장치이며, 집중투표제 채택률이 낮다는 것은 기업들이 그만큼 소액주주 이해를 대변하는 제도 도입에 보수적이라는 것"이라고 해석했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이사진을 선임할 때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기존 방식과 달리 선임되는 이사 수 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로, 예를 들어 3명의 이사를 선임하는 경우에는 1주만 갖고 있어도 3표를 행사할 수 있어 분산투표나 몰아주기 등이 모두 가능하다.

전국경제인연합회(이하 전경련)는 지난 20일 발표한 ‘2020 기업지배구조보고서 주요 내용 및 시사점’ 보고서에서 15개 핵심지표 가운데 '집중투표제 채택률'이 저조할 뿐 아니라, 미채택사유 등을 고려해  지표에서 제외하는 등 조정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을 폈다. 

기업지배구조보고서란 한국거래소가 기업지배구조와 관련된 사항으로 지정한 10가지 핵심원칙의 채택여부를 공시하는 보고서다. 15개 핵심지표로 구성되며, 자산총액 2조원 이상 상장법인이 의무공시 대상이다. 올해는 175개 기업에서 제출했다. 

2018년~2020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채택률 자료. 전경련
2018년~2020년 기업지배구조보고서 핵심지표 채택률 자료. 전경련

보고서에 따르면, 지배구조 전체 평가지표에 대한 평균 채택률은 3년간 꾸준히 상승했다. 이 가운데 ‘집중투표제 채택’ 지표는 3년 연속 채택률 최하위 5% 내외로,  평균 채택률 64.6%에 한참 밑돌았다. 

집중투표제란 주주총회에서 2명 이상의 이사를 선출하는 과정에서 1주당 1표씩 의결권을 주는 방식과 달리, 1주당 선임되는 이사 수만큼 의결권을 부여하는 제도다.

예를 들어, 1주를 가진 주주가 이사 3명을 선출할 경우 한 이사에게 3표를 몰아줄 수 있다. 이에 따라 소액주주, 외국인 등이 추천한 이사가 뽑힐 가능성이 높아진다.

전경련은 기업들의 집중투표제 미채택 사유로 ▲ 경영 안정성 저하 ▲ 해외 투기자본으로부터 경영권 방어 어려움  ▲ 기타 소수주주의견 반영수단 등 3가지를 예로 들었다. 

또한 이미 집중투표제를 도입한 9개 기업 가운데 SK텔레콤을 제외하면 POSCO, KT, KT&G, 강원랜드, 한국전력공사, 한국가스공사, 지역난방공사 등 상당수가 공기업이라는 점도 언급했다.  

일부 기업은 지배구조보고서에서 집중투표제 미도입 사유로, 주주제안으로 추천 받은 사외이사 후보자를 이사 선임에 충분히 반영하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고 있었다. 

신세계 지배구조보고서 내 명시된 집중투표제 미채택 사유 자료. 2020년 신세계 지배구조보고서 
신세계 지배구조보고서 내 명시된 집중투표제 미채택 사유 자료. 2020년 신세계 지배구조보고서 

한 재계 관계자는 미디어SR에 "집중투표제는 소액주주의 입김이 강해지는 반면 경영권 분쟁 등의 위협이 생길 가능성도 커 국내 기업들이 도입을 꺼리고 있다"고 지적했다. 

집중투표제, 소액주주권리 강화 차원에서 필요.. 기업가치 개선에 도움돼

일부 전문가들은 기업들의 집중투표제 채택 비율이 낮다고 해서 보고서 핵심 지표에서 섣불리 배제할 필요는 없다는 의견이다. 오히려 채택률이 높은 지표를 배제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미 모든 기업이 이행하고 있는 지표는 기업별 지배구조를 비교하는 요소로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국기업지배구조원 관계자는 미디어SR에 "대다수 기업이 이행하고 있는 채택률이 높은 지표는 투자자들에게 기업간의 지배구조를 비교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하지 못할 것"이라고 꼬집었다.

또한 기업들이 상법상 주주의 권리인 '주주제안권'으로 추천된 이사를 후보에 올린다는 이유로, 집중투표제를 도입하지 않다는 것은 실질적인 소액주주 권익에 강화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이종오 국장은 "소액주주권익 강화의 핵심은 이들이 제안한 이사가 이사회에 소속되는 것"이라며 "집중투표제를 채택하지 않은 상황에서 주주 제안으로 이사가 추천되더라도, 대주주인 총수들이 반대한다면 주주제안은 큰 의미가 없다"고 일축했다. 

이 국장은 이어 "주주제안은 주주들의 하나의 문제제기 방식일 뿐이고, 소액주주 권익 보호를 위한 실질적인 솔루션은 집중투표제"라며, "집중투표제 도입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기업가치 개선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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