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준형 국립외교원장이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약식회담을 하기로 잠정 합의했던 일본이 이를 이행하지 않은 것은 외교적 무례라고 비판했다. 15일 CBS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 인터뷰에서 한 말이다.

그는 일본이 세 가지 선결 조건을 항상 내세웠다고 지적했다. 그 세 가지는 1965년 한일 청구권 협정과 박근혜 정부 때의 위안부 합의를 그대로 받아들일 것과 강제징용 배상 판결을 뒤로 물리라는 것이다. 일본의 태도는 한마디로 완전히 굴복을 요구하는 굉장한 외교적 무례라는 것이다.

김 원장은 이어 문 대통령이 스가 총리에게 먼저 인사한 점을 일본 측이 부각하는 것에 대해 “대인배처럼 지나가면서 인사를 먼저 하는 것이고 뭔가 가서 찾아가서 조아리는 것처럼 마치 그런 분위기를 만들어 가는 것 자체가 일본이 굉장히 편협하게 외교를 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인용문이 이상하고 어색하지만 말을 그대로 옮긴 것이니 새겨들어야 한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3월 22일 어린 시절부터 친구 사이인 이철우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를 만났다. 이 교수에 따르면 둘은 2019년 8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가족 수사 착수 문제로 다툰 후 1년 7개월 가까이 연락을 끊고 지냈다.

이 교수는 이 자리에서 윤 전 총장이 문 대통령이 여권 강경파들에 둘러싸여 있다는 취지로 이야기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윤 전 총장이 문 대통령에 대해 악감정을 보인 것은 없다. 분노하고 있을 줄 알았는데 아니었다. 대인배다"라고 덧붙였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인 2015년 5월 노무현 전 대통령 6주기 추도식에 김무성 당시 새누리당(현 국민의힘) 대표가 참석했지만 환영받지는 못했다. 노 전 대통령의 큰아들 건호씨로부터 맹비난을 받았기 때문이다. 당시 유족 대표로 연단에 오른 건호씨는 앞줄에 앉은 김 대표를 향해 “전직 대통령이 NLL(서해 북방한계선)을 포기했다며 내리는 빗속에서 정상 회의록 일부를 피 토하듯 줄줄 읽으시던 모습이 눈에 선한데, 어려운 발걸음을 해주셨다”며 “진정 대인배의 풍모를 뵙는 것 같다”고 했다.

위 세 가지는 통신과 신문의 보도기사를 요약 정리한 것이다. 이들 기사에 나오는 ‘대인배(大人輩)’는 원래 없는 말이며, 기본적으로 우스운 말인데 요즘 하도 많이 쓰이고 있어 그 잘못을 꼬집기 위해서 이 글을 쓴다.

           원래 소인배는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의를 한다. 
           원래 소인배는 모여서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모의를 한다. 

대인배의 반대는 소인배다. 대인배에 대해서 어떤 사전은 ‘도량이 넓고 관대한 사람을 소인배(小人輩)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이라고 풀이하고 있다. 그러면 사전에 올라 있으면 다 있는 말이고 옳은 말인가? 그건 아니다. 사람들이 하도 많이 쓰니까 그 뜻을 풀이해 놓은 거라고 생각하면 된다.

배(輩)는 무리라는 말로, 명사 뒤에 붙어 ‘무리를 이루는 사람’이라는 뜻을 더하는 접미사다. 불량배, 폭력배, 간신배, 모리배, 치기배, 협잡배, 무뢰배, 정상배(政商輩), 시정잡배처럼 주로 부정적인 의미나 비하하는 뜻으로 쓰인다.

덕망과 도량이 큰 사람을 일컫는 ‘대인’과 같이 긍정과 찬양의 의미를 가진 단어와는 어울리지 않는다. 만약 대인배라는 말이 가능하다면 앞으로 신사배, 숙녀배, 의인배, 선인배, 위인배, 영웅배, 천사배, 도사배, 신령님배도 만들어낼지 모르겠다.

그런 말을 하는 사람들이나 쓰는 기자들은 ‘선배(先輩), 후배(後輩), 동년배(同年輩)’라는 말도 있으니 ‘대인배’도 쓸 수 있는 말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다. 그러나 이 경우, ‘배’가 ‘무리’나 ‘무리 중 한 사람’의 뜻으로 쓰인다는 점에서 ‘대인배’라는 말이 성립하려면 문자상으로는 우리 사회에 ‘대인’이 무리를 이룰 만큼 많아야 할 것이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대인은 무리지어 다니는 사람이 아니라는 점이다. 대인은 바꿔 말하면 군자다. 군자는 두루 사귀어 소통하지만 편파적이거나 편당(偏黨)을 짓지 않고. 소인은 같은 무리들끼리는 잘 어울리지만 폭 넓게 두루 사귀지는 못한다. 이게 논어 위정(爲政)편에 나오는 ‘君子周而不比 小人比而不周(군자주이불비 소인비이부주)’의 뜻이다. 쉽게 말해 군자나 대인은 원래 혼자다. 맹수가 떼지어 다니는 일은 없다. 약하고 자립이 어려운 것들이 서로 기대어 몰려다니는 법이다.

영조가 1742년(영조 18년) 성균관 입구에 세운 탕평비.
영조가 1742년(영조 18년) 성균관 입구에 세운 탕평비.

소인배들이 작당을 하면 사달이 난다. 그런 자들이 모여서 하는 일이란 대인을 헐뜯고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못된 모의를 하는 것이다. 그래서 영조는 논어의 그 말을 응용해 “두루 원만하고 편향되지 않음이 군자의 마음이고, 편향되고 원만하지 못함이 소인의 사사로운 마음이다.[周而弗比 乃君子之公心 比而弗周 寔小人之私意]”라는 글을 새긴 탕평비(蕩平碑)를 성균관에 세우지 않았던가.

이런 점을 모르고 대인배라는 말을 자꾸 쓰면 부메랑처럼 그 말이 언론을 향해 돌아올까 걱정스럽다. 지금도 걸핏하면 기레기라고 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못마땅하면 언론배, 기레기배, 기자배, 국장배, 주필배…이렇게 부르지 않을까 싶다. 그래서 제발 부탁하는 건데, 제발 대인배라는 말은 쓰지 말아주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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