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가 손웅익, 유니버설 디자인을 말하다

손웅익 건축가.  사진 구혜정 기자.
건축가 손웅익 씨는 2018년부터 환경과사람의 소장을 맡고 있다. 1981년 한양대 건축공학과를 졸업하고 건축사사무소 도제 생활을 거쳐 1990년부터 2014년까지 연미건축과 아쿠아건축 공동대표로 활약했다. 2017년 은퇴 후에는 액티브 시니어와 건축가로서 활동하고 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시니어 대상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행복한 삶의 공간인 집에 관해서요. 시니어가 되면 주거 문제에 대해 어려워하고 고민도 많습니다. 집을 좀 작게, 마음도 좀 누그러뜨리고 욕심을 내려놓자는 이야기를 하죠. 상담을 겸한 그런 강의를 하고 있습니다.” 

건축가 손웅익(63) 씨를 만났다. 손씨는 2017년 (주)서울오션 아쿠아리움 부사장을 끝으로 인생 전반기를 마무리했다. 대표이사직을 제안받았지만 하루라도 젊을 때 새로운 세계에 뛰어들어야 한다고 마음먹었다. 지금은 시니어를 위한 건축을 구현하고, 유니버설 디자인을 그 속에 녹여내고자 애쓰는 중이다.

“만약 대표이사가 됐으면 이 팬데믹 상황에 극한으로 갔을 겁니다. 그때 관두어 시니어로 통하는 세계에 들어와서 저변 확대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지난해 건축가로서 두 개의 단독주택을 설계했다. 서울 도봉구 도봉동과 인천 청라에  손씨의 기운이 깃든 집이 세상 빛을 봤다.

“청라는 건축주 부부와 딸 둘, 장인·장모, 이렇게 3대가 함께 사는 집이죠. 1층은 장인·장모, 가족 모두가 모이는 공간으로 꾸몄습니다. 80세 가까이 되는 장인·장모 부부는 취미가 다르니 방도 따로 만들어 드렸죠. 2층은 건축주 부부와 딸들의 공간입니다.”

구성원 개개인에게 사적 자유를 주고자 공간 분리에 신경 썼다. 곳곳마다 문턱도 없앴다. 유니버설 디자인을 도입한 것이다. 

이런 손씨의 세심함에 대해 건축주는 이미 오래전부터 알고 있었다. 

“13년 전인 2008년에 ‘실버산업전문가 포럼’에서 건축주를 만났습니다. 실버타운 운영자, 실버산업학과 교수 등 실버산업 종사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실버산업 전반에 대해 논의했는데 둘 다 포럼의 일원이었거든요.”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는 포럼은 각 분야 전문가들이 모여 미래형 실버타운에 대한 의견을 제시하고 시니어 건축에 대해 함께 고민하는 자리이다. 손씨가 그때 보여준 시니어에 대한 노력과 관심을 건축주는 잊지 않고 있었던 모양이다. 

남보다 좀 빨리 만난 시니어 건축

손씨는 정말 뜻하지 않게 시니어 건축과 인연을 맺었다. 1990년대 초반, 서른둘 나이에 건축사무실을 열자 실버타운을 짓겠다는 사람들이 자주 찾아왔다. 
“1993~4년쯤이었는데 실버타운에 대한 인식이 없던 때였죠. 의뢰가 들어왔으니 조사를 좀 해야 하는데 책도 자료도 없었어요.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어서 정보가 부족했습니다.”
마침 서울대학교에 실버타운에 대한 원문 번역본이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귀한 책 하나를 구했다. 서울대 대학원에 실버타운 강의가 있다기에 담당 교수에게 양해를 구해 청강도 했다. 손씨는 건축사무소 개소와 동시에 시니어 건축에 대해 접하게 됐고 알아야만 했다. 애정을 가지고 진지하게 접근하고자 노력했다. 

“실버타운을 하겠다는 사람은 많은데 진심인 사람을 만나는 게 쉽지 않았습니다. 개발업자도 있고, 의사도 있었죠. 문제는 모두 노인에 대한 이해가 전혀 안 되어 있는 점이었어요. 노인의 건강뿐만 아니라 심리나 욕구 같은 것 말입니다.”

얼마를 투자해서 이익을 남기겠다는 산술적인 계산만을 가지고 실버타운 사업에 덤벼드는 이들이 눈에 띄었다. 1990년대 실버타운 사업자들은 시니어들이 모여 사는 시설 확충이나 서비스는 뒷전이고, 받아 챙긴 보증금으로 다른 곳에 땅을 사고 사업 확장에 공을 들였다.

“그러다 보니 노후에는 공기 맑고 경치 좋은 곳에 가서 살아야 한다는 인식이 생겨난 것이죠. 실버타운은 '돈 내고 들어온 경치 좋은 감옥'이 돼버렸습니다.”

그러다 사업체가 부도가 나기라도 하면 입주 시니어들이 오도가도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했다. 

“20년 전쯤 그런 시설을 인수하겠다는 분이 있어서 함께 찾아가 본 적이 있습니다. 그곳에서 살던 시니어들이 보증금을 돌려받지도 못하고 계셨습니다. 어딜 갈 수 없어 돈을 모아 끼니를 해결하고 계셨습니다. 초겨울이었는데 난방도 못 하고 말이죠.”

실버타운에 대해 나쁜 인식이 퍼지면서 명칭도 ‘시니어타운’으로 바뀌었다. “실버타운에 대해 일반인들이 짜증이 났던 것입니다. 시니어타운이 새로운 상품이라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똑같은 상품입니다. 그때 찾아갔던 시설은 지금은 안정적으로 운영되고 있습니다. 다행이죠.”

 손씨는 30대 초반부터 시니어 주거에 대해 관심이 있었고, 많은 곳에서 의뢰를 받았으며, 실제 시니어타운 일과 연계해 다양한 작업을 했다. 그런데 정작 단 한 번도 시니어타운을 설계해 본 적이 없었다고 말했다. 

“땅을 사고 설계를 진행하다가 문제가 생겨 실질적으로 제가 설계한 게 하나도 없어요. 지금 생각하면 정말 다행입니다. 그때 실버타운 하나라도 설계를 했으면 지금 고개를 못 들고 다녔을 거예요. 그때는 노인에 대해 제가 잘 몰랐으니 건방지게 설계하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장애인, 시니어 등 몸이 불편한 사람이 편리하되 장애가 없는 사람은 더 편리한 게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시니어에게만 적용되는 디자인은 없습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장애인, 시니어 등 몸이 불편한 사람이 편리하되 장애가 없는 사람은 더 편리한 게 유니버설 디자인입니다. 시니어에게만 적용되는 디자인은 없습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모두를 위한 유니버설 디자인 지향해야

손씨는 시니어로 접어들면서 다치기 쉬운 사람들은 “젊은 시절 운동을 잘했던 사람”이라고 말했다. 몸의 기능이 많이 떨어졌는데도 옛 생각만 하고 반응하다가 미끄러지거나 넘어지는 일이 자주 생긴다고 했다.

“젊은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현관 들어설 때 턱이 있잖아요. 거기에 걸려 넘어지는 시니어가 아주 많아요. 나올 때 헛발질하고, 들어가면서 걸리고요. 그래서 그 부분은 턱이 아니라 경사면으로 만들어야 해요. 청라에 지은 집도 그렇게 했고, 최근에 짓고 있는 아파트에는 문턱이 없습니다. 유니버설 디자인의 영향이죠.”

집을 짓고 나면 특정 연령대만이 살아가는 것이 아니다. 아이, 중·장년, 시니어도 함께 사는 것을 가정해야 한다. 누구에게도 장애가 되지 말 것. 그게 유니버설 디자인의 기본이다. 그 속에 시니어 건축도 있다. 손씨는 집을 짓는 건설회사나 시공사 등 공급자의 마음가짐이 중요하다고 했다.

“문턱 만드는 것보다 경사 만드는 게 더 어렵죠. 돈도 더 듭니다. 그래서 지금까지는 집을 짓는 데 가장 편하고 쉬운 쪽으로 연구해서 지어 온 겁니다.”

그런데 간단한 아이디어와 적당한 자리 배치로 유니버설 디자인을 구현할 수도 있다고 손씨는 말했다. 

“콘센트가 보통 바닥에서 30cm 정도 위에 있어요. 플러그를 꽂으려다가 앞으로 넘어지는 시니어들이 많아요. 서서도 꽂을 수 있게 콘센트를 높게 설치해줘야 합니다. 조도도 마찬가지예요. 우리는 비슷한 색으로 인테리어를 하는데 시니어들에게는 똑같아 보입니다. 조명까지 은은하면 잘 보이지도 않죠. 인지장애, 즉 치매가 오면 걷잡을 수가 없게 됩니다.”

무엇보다 시니어가 살 집을 지을 때, 시니어의 특성을 이해하지 못한 상태에서 건축할 경우 불편한 점이 아주 많을 것이라고 손씨는 말했다.

“장모님이 초기 치매세요. 아파트에서 정말 많이 넘어지시고, 식탁에도 부딪히십니다. 공간 능력이 떨어지는 상황이니 보완이 필요하죠. 저희 아버지는 높지도 않은 침대에서 떨어져 갈비뼈를 다치셨습니다. 병원처럼 침대에 목제 난간을 만들어드렸습니다.”

손씨는 우리나라 시니어타운이 공동체 해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사람은 도시에 살고, 아픈 사람은 요양원, 산속 병원으로 가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진 구혜정 기자.
손씨는 우리나라 시니어타운이 공동체 해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건강한 사람은 도시에 살고, 아픈 사람은 요양원, 산속 병원으로 가는 것을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사진 구혜정 기자.

그 어떤 건축물이든 가장 중요한 건 안전

60세 이상이라면 훗날을 생각해서 고령자 주택을 염두에 두어야 한다고 했다. 손씨의 부모가 사는 집은 벽마다 잡고 다닐 수 있게 손잡이를 부착했고, 욕실 바닥에는 넘어지는 것을 방지하는 플라스틱 망을 깔아놓았다.

“바닥에 요를 깔고 자는 것도 시니어에게는 불편한 일입니다. 쪼그려 앉는 화변기에서 잘못하면 바닥을 짚고 일어나야 하죠. 낙상이나 미끄러움을 방지해야 합니다. 바퀴가 있는 의자는 절대 두면 안 되고요. 가구도 모서리가 위험한 것들은 바꿔야 합니다. 가스레인지 불 끄는 것도 자주 잊어버리니 지정한 시간에 자동으로 꺼지는 타이머를 장착하면 좋습니다. 무엇보다 가장 중요한 것은 화장실 문이 열리는 방향입니다.”

화장실 문은 보통 밖에서 안쪽으로 열 수 있게 되어 있다. 화장실 내에 습기가 있기 때문에 밖으로 열면 물이 밖으로 튀거나 떨어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만에 하나 시니어가 화장실 안에서 쓰러질 경우를 생각해서 방향은 밖으로 여는 것이 안전하다고 손씨는 말했다.

기존 방식이라면 쓰러지면서 몸으로 문을 닫아버리는 수가 있다. 이 경우 문을 떼어내야 하는 등 응급 상황에서 골든타임을 놓칠 수 있다. 청라에 지은 집의 경우 안전을 위해 화장실 문을 미닫이로 설계했다.

“주방 싱크대 하단은 다 비워야 합니다. 휠체어를 쓰게 되면 안에 바퀴를 넣고 작업을 해야 하잖아요.”

이렇듯 라이프 스타일에 따라서 언제든지 대처할 수 있는 배려가 필요하다. 공급자가 디자인에 조금만 더 관심을 기울이면 적용할 수 있는 것들은 무수히 많다.

은퇴 이후 노년기에 접어들면서 집에서 활동하는 시간은 점점 더 늘어나기 마련이다. 집 안에서 24시간을 해결할 수도 있기 때문에 복합적인 공간으로 시니어의 공간을 바라봐야 한다.

“이미 지방은 초고령사회로 접어든 지 오래입니다. 지방 마을에 가면 빈집은 물론 일인 고령자 가구가 너무 많죠. 어떤 곳은 마을 전체가 시니어타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손씨의 말처럼 지난달 7일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2021년 1분기 주민등록 인구통계’에 따르면 전남(23.7%)과 경북(22%)은 이미 초고령사회에 진입한 상태다. 시니어타운을 지을 때 유념할 것은 뭘까.

“시니어타운의 모델을 잘 개발하고 다양한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합니다. 우선 시니어타운의 규모가 커야 합니다. 그래야 그 안에서 소득도 발생하고 살아갈 수 있겠죠. 규모가 작다면 자연환경이 아니라 생활편의가 원칙입니다. 언제든 지하철을 탈 수 있고 급하면 병원에 갈 수 있어야 합니다.”

2008년 전북 고창 시니어시티 건설을 위한 디자인PM으로 활동할 때 손씨가 직접 그렸던 설계 마인드맵.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사진 제공 손웅익.
2008년 전북 고창 시니어시티 건설을 위한 디자인PM으로 활동할 때 손씨가 직접 그렸던 설계 마인드맵. 당시 금융위기로 인해 프로젝트가 무산됐다. 사진 제공 손웅익.

공동체를 오히려 허무는 우리 시니어타운 

손씨는 시니어타운을 새롭게 인식해야 할 필요가 있다면서 미국의 CCRC(Continuing Retirement Community)를 언급했다. 

“CCRC는 규모가 상당합니다. 처음에는 건강한 사람이 입주합니다. 나이 들고 간병이 필요한 시점이 다가오면 단지 내 케어병동으로 이사 갑니다. 가장 좋은 것은 건강할 때 살았던 사람들과 내가 아파서 누워 있으면서도 교류할 수 있는 것이죠.”

손씨는 우리나라 시니어타운은 공동체 해체라는 문제점을 안고 있다고 봤다. 건강한 사람은 도시에 살고, 아픈 사람은 요양원, 산속 병원으로 가는 양극화현상에 대한 해결책을 고민해야 하고, 사업자가 노인에 대해 깊이 공부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손씨는 2008년, 아쿠아건축사 사무소 공동대표로서 전북 고창의 시니어시티 건설을 위한 디자인PM를 맡은 적이 있다. 이를 위해 1년 반 동안 시니어산업에 대해 깊이 있는 이야기를 나누는 ‘토요포럼’을 주최하며 시니어 관련 지식을 넓히기도 했다. 이를 통해 내린 결론은 시니어 혹은 시니어타운 분야에 대해 모든 것을 아는 전문가는 없다는 것이다. 완벽할 수도 없고, 다 만족할 수 없기에 일단 계속 시도하면서 길을 찾아가야 한다고 손씨는 말했다.

아무도 알려주지 않던 시절부터 시니어의 삶에 대해 고민하다 보니 청년 건축가도 어느덧 시니어 세대에 접어들었다. 살아 있는 한 시니어와 모든 세대가 행복하게 살길 바라는 마음에 오늘도 가던 길을 갈 뿐이라고 건축가 손웅익 씨는 말한다.

▇유니버설 디자인=성별, 연령, 국적, 문화적 배경, 장애 여부에 관계없이 누구나 손쉽게 쓸 수 있는 제품 및 도구, 시설, 사용 환경을 만드는 디자인. ‘모든 사람을 위한 디자인(Design For All)’, ‘범용(汎用) 디자인’, ‘유니버설 디자인(공용화 설계)’이라고 한다. 공공 교통기관 등의 손잡이, 일용품 등이나 서비스, 주택 도로 설계 등 넓은 분야에 쓰이는 개념이다.

▇PM(프로젝트 매니저 project manager)= 프로젝트의 각 부서간 의견을 조율하고 사업방향을 제시하는 전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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