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영상 콘텐츠, 시니어의 노련함으로 뜬다

“유튜브가 인기다”라는 말이 이제는 참 새삼스럽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내 손 안의 TV이자 방송국인 스마트폰에 푹 빠져 산다. 

지난 2월 통계분석 전문업체 플레이보드는 “작년 말 기준으로 한국에서 광고수익을 내는 유튜브 채널이 인구 529명당 1개꼴로 집계됐다”고 밝혔다. 우리나라 인구 5178만 명을 수익 창출 채널 9만7934개로 나눈 수치이며, 전 세계 ‘인구 대비 유튜버 수’ 1위 국가가 한국이라는 놀라운 조사결과였다. 

이렇듯 너도나도 유튜버인 세상이다 보니 연령대도 다양하다. 물론 시니어도 빠질 수 없다. 시니어 유튜버, 알 만큼 아는 유튜브 스타에서 지금 한창 활발하게 움직이는 능력자들을  찾아봤다. 

 

우리나라 대표 유튜버 ‘박막례 여사’
채널명 ‘박막례 할머니 Korean Grandma’
가입일 2017. 1. 31.
구독자 131만 명 

‘박막례 할머니 Korean Grandma’ 채널은 개설 초반부터 큰 관심의 대상이었다. 이 채널의 시작이라고 한다면 일종의 ‘할머니와 손녀의 치매 극복 프로젝트’ 같은 것이었다. 이 채널의 PD를 맡고 있는 손녀 김유라 씨가 치매 예방 차원에서 할머니 박막례 씨(85)를 모시고 호주여행을 갔고, 처음 내놓았던 영상부터 대박 조짐을 보였다. 

특히, ‘치과 들렀다 시장 갈 때 메이크업’에서 제대로 터졌다. 이 영상이 공개되고 난 이틀 뒤 구독자 수가 1800명에서 13만 명으로 고속 상승했으니 말이다. 유튜브에 영상을 올리기 시작한 지 두 달이 채 안 됐을 때였다. 박씨의 걸출한 입담과 찰떡처럼 잘 맞는 손녀딸의 콜라보가 꾸준한 인기의 원동력이다. 할머니의 이름이 재미있고 편한 것도 한 요인일 것이다. 

2019년에는 미국 구글 본사가 주최한 구글 최대 개발자 회의 ‘구글 I/O’ 행사에 대한민국 대표 크리에이터로 초대받기도 했다. 같은 해 유튜브 CEO 수잔 워치스키가 박막례 씨를 만나기 위해 직접 한국을 찾았고, 박씨의 채널에서 토크쇼도 진행했다. 유튜브 크리에이터가 전 세계에 많고 많은데 박씨는 구글 최고경영자인 순다르 피차이와 유튜브 CEO까지 만났다. 이 사실이 MBC 뉴스데스크에 보도되기까지 했으니, 나이 ‘칠십’이 넘어 생각지도 못한 인생을 살고 있는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다.
 
한 달 전에는 ‘유튜브 오리지날 시리즈, 크리에이터 스포트라이트’를 손녀와 함께 찍었다. ‘크리에이터 스포트라이트’는 창의적인 콘텐츠로 전 세계 팬들과 커뮤니티로 영향력을 넓혀가는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의 이야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시리즈다. 첫 테이프를 요리전문가 백종원이 끊은 바 있다.

2019년 6월에는 ‘박막례, 이대로 죽을 순 없다’(위즈덤 하우스)라는 책도 손녀와 함께 공동집필했다. 최근 영상에서는 골프에 도전하는 박씨의 모습이 그려졌다. 

 

죽을 때까지 변화하고 싶은 패셔니스타 ‘밀라논나’
채널명 ‘밀라 논나 Milanonna’
가입일  2019. 10. 7.
구독자 80만 4000명 

최근 한국의 유튜브 크리에이터를 통틀어 가장 관심 받는 채널이 바로 ‘밀라논나 Milanonna’다. 개설 3개월 만에 21만 명이 넘을 정도로 폭발적 인기를 얻었다. 

채널의 주인인 장명숙 씨(68)는 패션 전문가로 살아온 패션 노하우부터, 나이 들어가면서 깨달은 것을 토대로 젊은이들에게 조언해주고 고민도 들어주는 콘셉트로 채널을 운영한다. 그녀는 특히 같은 또래가 아닌 2030대의 지지를 얻고 있다. 젊은 여성과 함께 저렴한 브랜드 샵을 찾아가 옷을 권하기도 하고, “돈이 없는 남자와 결혼해도 되냐”는 질문에 현실적인 조언을 서슴지 않는다.

장씨는 1978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유학한 최초의 한국인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명품 브랜드 돌체앤가바나의 수석디자이너인 도메니코 돌체와 함께 학교생활을 했다. 무대 의상 디자인을 했으며 페레가모, 막스마라 등 이탈리아 명품브랜드를 한국에 들고 들어왔다. 

한국과 이탈리아 교류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이탈리아 정부로부터 '기사' 작위도 받았다. 장씨는 유튜브 채널을 개설하고 올린 질의응답 영상을 통해 “코디네이터 혹은 한국의 진솔한 문화를 서방세계에 알리는 일을 하고 싶다고”했다. 최근 공개된 훈남 아들의 모습도 인기를 모았다. 

 

할담비 덕에 손담비도 빛을 보다 ‘할담비 지병수’
채널명 할담비 지병수 Korean Grandpa’s crazy K-pop
가입일 2019. 4. 4.
구독자수 1만 9000명

지병수 씨(79)의 첫 등장부터 남달랐다. 2019년 3월에 방영된 KBS 전국노래자랑 ‘서울시 종로구’ 편에 나와 손담비의 ‘미쳤어’를 열창, ‘할담비’로 불리며 시니어 블루칩으로 등극했다. 방송 출연과 동시에 각종 방송프로그램 섭외 1순위, L홈쇼핑 광고 모델로도 등판했다. 공백기가 길었던 원곡자 손담비도 할담비 지병수 씨의 활약 덕분에 다시금 연예계 부름을 받아 한창 활동하게 됐다. 

그해 5월에는 KBS 인간극장에서 그의 인생을 조명했다. 전라북도 김제시 출신인 지 씨는 한국무용의 대가 이매방(李梅芳)의 수제자인 임이조의 제자로 7~8년간 일본에서 한국무용을 공연했던 이력도 있다. 나이 들어도 가무에 대한 끼를 감출 수 없었던 이유였다. 

노래자랑으로 전국에 이름을 알리고 난 뒤 지씨는 발 빠르게 유튜브에 뛰어들었다. 각종 아이돌 노래와 춤을 따라하는 커버영상과 먹방, 동네 탐방, 스마트폰 활용 방법 등 시니어들이 공감할 이야기로 채널을 꾸미고 있다. 

최근에는 78세 보디빌더 임종소 씨와 함께 홈트레이닝 영상을 올리고 있다. 노래자랑 반짝 인기로 구독자를 모은 이후 큰 변동은 없지만 꾸준하게 유튜브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동년배 시니어들과 공감하는 것은 물론 젊은이들과도 소통하며 여전히 매력 발산 중이다. 

 

회고록 대신 유튜브 ‘차산선생법률상식’
채널명 차산선생법률상식
가입일 2016. 5. 24.
구독자 13만 5000명

2012년 퇴직한 박일환 전 대법관(70)이 운영하는 채널이 바로 ‘차산선생법률상식’이다. 대단한 편집 기법 없이 들려주는 법률이야기로 사법제도, 형사, 민사편으로 구성되어 있다. 

원래는 대법관 은퇴 후 회고록이나 자서전을 써볼까 생각했으나 “책은 힘만 들고 사람들이 잘 보지 않으니 유튜브를 해보라”는 딸의 조언으로 유튜브를 시작하게 됐다. 거치대에 휴대폰을 장착해 영상을 찍으면 간단하게 딸이 편집을 해주어 지속적으로 유튜브에 콘텐츠를 업로드한다.

유튜브를 시작하고 2~3개월 동안은 사람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으나, 지금은 꽤 많은 방문자들이 댓글을 달고 박씨를 응원한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채널의 주요 시청자가 시니어 층이 아닌 20~30대라는 점이다. 그리고 그 누구도 악플을 달지 않는다고 한다. 대법관 출신 크리에이터이자 현직 변호사이기도 한 박씨에게 잘못 걸리면 법정에서 만날지 모르니 조심해야한다는 장난스런 댓글이 줄을 잇고 있다.

구독자수가 13만 명을 훌쩍 넘었으나 유튜브를 통해 수익을 내지는 않는다. 그저 즐거운 마음으로 소통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다. 

 

부담스럽지 않게 먹방, ‘영원씨TV’
채널명 영원씨01seeTV
가입일 2015. 12. 17.
구독자수 35만 6000명

먹는 일은 사람들에게 일상이지만 ‘먹방’이 되는 순간 말이 좀 달라진다. ‘먹방’하면 떠오르는 빨리 먹기, 많이 먹기, 매운 거 먹기 3종 세트. 입에 한가득 매운 것을 넣어 우물우물하는 모습만 상상해도 입이 얼얼하다. 그래서 젊은 사람들이 먹방 채널을 많이 한다. 

‘영원씨TV’는 여든넷 김영원 씨의 먹방을 중심으로 일상생활까지 그려내는 저공해 유튜브 채널이다. 불량식품도 먹고 달달한 젤리, 초콜렛은 물론, 새우, 회, 소시지 등 생각보다 다양한 음식을 카메라 앞에서 먹는다. 이 채널의 ‘먹방’이 젊은 ‘먹방’ 유튜버와 다른 점이 있다면 차려놓은 밥상을 다 먹지 않는다는 점이다. 맛있게 먹을 만큼 먹고, 욕심 없이 영상을 마무리 짓는 게 영원씨TV의 특징이다. 

서두르지도 않는다. 입에 넣어 목으로 넘기기까지 잘 씹어서 삼킨다. 초반에 말했던 먹기 3종세트는 천천히 먹기, 조금만 먹기, 안 매운 거 먹기로 영원TV에서는 순화되어 있다. 김씨가 방송을 할 때 먹는 소리를 극대화해 ASMR로 녹음을 한다. 영원TV도 박막례 할머니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손녀와 할머니의 조합이 잘 맞는 채널이다. 자극적인 먹방에 지쳤다면 꼭 한번 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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