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임철순 주필]

내가 사는 아파트의 길 건너편 애시앙 주상복합건물에서 큰 불이 난 건 지난 10일, 토요일 오후였습니다. 지하 4층, 지상 18층 건물의 대형 화재로 유독가스와 재가 퍼지면서 4개 동 366가구와 상가 점포 180곳 중 상당수가 피해를 당했습니다. 지하엔 대규모 마트가 있고, 지상 2층엔 대형 스포츠센터도 있어 평소 이용인구가 아주 많은 곳입니다.

인근 경의·중앙선 도농역에도 연기가 들어차 7시간 넘게 열차가 서지 않고 통과했습니다. 천만다행으로 목숨을 잃은 이는 없었지만, 20여 명이 유독가스를 마셔 병원 치료를 받았습니다. 아직도 입주민 72세대 200여 명이 귀가하지 못한 채 이재민 대피소 등에 머무르고 있는 실정입니다.

화재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은 채 건물회사와 입주 상인·주민들이 대립하고 있습니다. 상인과 주민들은 화재 당시 비상벨과 대피방송을 제대로 듣지 못했으며 소방차가 출동했을 때 소화전이 열리지 않고 스프링클러와 방화벽도 작동하지 않았다고 말합니다.

특히 회사측이 관리비에 포함된 단체화재보험의 보상 범위를 고지하지 않았다고 주장합니다. 사측은 건물에 대해 구제를 받지만 상인들은 개별 화재 보험에 가입해야만 보상을 받는다는 사실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겁니다.

28일 화재 건물 앞에서 기자회견을 한 정의당 남양주시위원회는 "상인들은 생계를 유지할 수 없고 입주민들은 불안에 시달리고 있다"며 경기도에 특별 재난 지원금을 편성하고 진상조사 기구를 설치해 원인을 명확히 밝히라고 말했습니다. 아울러, 회사는 피해자가 아니라 책임자이니 보험료를 납부한 상인, 입주민들을 위해 보험금을 집행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런데 24일(토), 신축 중인 인근 오피스텔에서 또 큰 불이 나 작업 중이던 인부 1명이 숨졌습니다. 지상 19층 지하 6층 규모인 오피스텔은 준공을 불과 며칠 앞둔 상황이었습니다. 2주 전에 큰 불이 난 걸 보고도 어떻게 이런 사고를 냈는지, 남양주에서는 왜 이리 불이 잘 나는지 겁이 날 지경입니다.

     애시앙 주변 주민들의 응원 펼침막 뒤로 상인들의 감사 문구가 보인다.  사진. 임철순.
     애시앙 주변 주민들의 응원 펼침막 뒤로 상인들의 감사 문구가 보인다.  사진. 임철순.

애시앙 건물은 그러잖아도 코로나19 이후 장사가 잘 안 돼 문을 닫거나 다른 곳으로 이전한 상인들이 많았습니다. 평소 빈 점포가 늘어나는 게 괜히 걱정스러웠는데, 요즘은 아침저녁으로 불타고 그슬린 건물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리고 아픕니다. ‘저 사람들은 이제 어떻게 살아가는 걸까.’ 남의 일 같지 않습니다. 엎친 데 덮친 불행이 앞으로 얼마나 오래갈지 모릅니다.

상인들의 피해와 고통에 비하면 별것도 아니지만 인근 주민들도 불편이 큽니다. 쇼핑센터가 문을 열지 못해 장을 보러 멀리 가야 합니다. 스포츠센터도 이용할 수 없습니다. 라커에 보관한 목욕용품과 운동화를 찾기 위해 들어간 스포츠센터는 보름이 지났는데도 매캐한 탄내와 불냄새가 여전하고 바닥과 캐비닛 등이 검댕으로 덮여 있었습니다. 화재 당일 황급히 대피한 사람들의 신발도 널려 있었습니다. 전기가 끊겨 휴대폰 불빛에 의지해 겨우 물건을 찾아왔습니다.

       도농역 앞에는 '다 함께 이겨내자'는 호소문구가 내걸렸다. 사진. 임철순.
       도농역 앞에는 '다 함께 이겨내자'는 호소문구가 내걸렸다. 사진. 임철순.

코로나 때문에 걸핏하면 문을 닫아 그동안 어렵게 살아온 종업원들이 많은데, 그들도 이제 생계가 막막할 것입니다. 남자 사우나의 직원은 하도 성실 친절하고 일을 잘해 내가 글도 쓴 적이 있습니다. 그는 요즘 어떻게 하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내가 썼던 글: https://blog.naver.com/fusedtree/221814977023

몸이 좋지 않아 헬스센터에서 운동을 꼭 해야 하는 사람들, 이곳 수영장을 보고 일부러 이사 온 사람들은 요즘 큰 낭패를 겪고 있습니다. 특히 마흔도 넘어 보이는 뇌성마비자와 그의 늙은 아버지가 생각납니다. 아버지는 덩치가 두 배는 되는 아들을 목욕시키느라 쩔쩔매곤 했습니다. 아들은 아버지가 때를 밀어주고 몸을 닦아주는 동안 이따금씩 외마디 소리를 질러 주위를 놀라게 했습니다. 머리는 작동을 하지 않는데 몸은 우람하고 건장하니 더 비극적입니다. 목욕을 마친 뒤 아들을 겨우 이끌고 밀고 길을 건너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면 늘 마음이 아팠습니다. 이 부자에게는 목욕이 아주 중요한 집안 일일 텐데 요즘 어찌 하고 있는지.

이번 화재로 어떤 이들에게는 생계와 생활이 무너지고, 어떤 이들에게는 이렇게 일상이 파괴됐습니다. 누구나 겪을 수 있는 불행이라는 생각을 하면 오싹해지면서 주위를 다시 돌아보게 됩니다. 애시앙 주상복합 건물 주위에는 지금 사측을 비난하는 상인들이 요구조건을 제시한 펼침막이 여러 군데 걸려 있습니다. 그리고 피해 상인들에게 힘을 내라고 응원하는 이웃 아파트 주민들의 펼침막과, 이에 고맙다고 화답하는 상인들의 펼침막도 눈에 띕니다.

       이번 화재는 10시간 만인 4월 11일 오전 2시에야 진화됐다.
       이번 화재는 10시간 만인 4월 11일 오전 2시에야 진화됐다.

불행과 시련을 극복하는 것은 당사자의 의지와 신념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이웃과 사회의 관심과 응원이 필요합니다. 일본 시인 마쓰오 바쇼(松尾芭蕉, 1644~1694)의 하이쿠(俳句)에는 “가을 깊은데 이웃은 무얼 하는 사람일까”라는 게 있습니다. 자아와 개인에만 쏠렸던 눈길을 이웃과 사회로 넓혀가는 만년의 절창입니다. 그 시를 본떠 “시름 깊은데 이웃은 어떻게 살고 있는 걸까”라고 뇌어보게 됩니다. 건물주와 행정당국과 이웃들이 최선의 노력을 다해 이 시련을 극복하도록 도와줌으로써 전화위복의 계기를 만들어내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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