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임철순 주필]

타네다 산토카(種田山頭火, 1882~1940)는 술과 방랑으로 유명한 일본의 하이쿠(俳句) 시인이다. 17자(5, 7, 5)의 정형시인 하이쿠의 틀을 바꿔 새로운 하이쿠를 만들어낸 그의 평생 소원은 ‘진정한 나의 시를 창조하는 것’과 ‘누구에게도 폐를 끼치지 않고 죽는 것’이었다(부럽다. 나도 그런데). 그는 술고래에다 툭하면 기생집을 찾아 소란을 피우고 친구들에게 신세를 지며 살다 간 사람이다(정말 더 부럽다).

“곧은 길이라서 외로워라”

“하늘로 뻗은 어린 대나무, 고민 하나 없구나”

“다친 손에 햇볕을 쪼이며”

“가을밤 깊어 심장 소리 듣네.”

그의 시에는 외로움과 고통이 담겨 있다. 그는 열한 살 때, 남편을 원망하며 우물에 몸을 던진 어머니의 시신을 본 사람이다.(엄마, 엄마, 그 충격과 슬픔을 그 누가 알랴.) 그 뒤 가족의 죽음과 불행이 이어진다.

타네다 산토카.
타네다 산토카.
타네다 산토카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영화.
타네다 산토카의 삶을 그린 애니메이션 만화.

이 계절에 되새기게 되는 그의 절창은 “모두 거짓말이라며 봄은 달아나 버렸다”(みんな嘘にして春は逃げてしまった), 이 시다. 우리가 아는 하이쿠에는 의역한 것도 꽤 있다. “이 숯도 한때는 흰 눈이 덮인 나뭇가지였겠지”라는 칸노 타다토모(神野忠知, 1625~1676)의 작품은 번역이 원문보다 오히려 낫다. 타네다 산토카의 이 시는 원문과 번역문이 일치한다.

그런데 이건 무슨 말일까? 모두 거짓말이라는 건 봄이 사람들에게 하는 말일까? 겨울을 밀어내고 어느 날부턴가 훈풍과 함께 찾아와 꽃으로 산야를 물들이면서 생명을 새로 키워내던 봄은 금세 가버린다. 봄은 언제나 짧고, 덧없고 하염없다. 봄은 기적같이 왔다가 거짓말처럼 가버린다. 봄은 자기가 해놓은 일이 다 거짓말이었다고 말한다.

아니, 이것은 봄이 더 직접적으로 사람들에게 하는 말은 아닐까? 봄은 이번에도 인간에게 실망했다고 말하는 게 아닐까. 잠깐 만나본 인간들이 보여준 행태, 사랑과 선의의 언약은 모두 다 거짓이었어. 그래서 봄은 남자에게 버림받고 배신당한 여인처럼 사람들 곁을 떠나가버리는 것이다. 다 거짓말, 거짓말이잖아!!

모란이 피고 있다.  하루 전에 활짝 피더니(왼쪽) 날씨가 추워지자 입을 닫았다  사진. 임철순.
모란이 피고 있다.  하루 전에 활짝 피더니(왼쪽) 날씨가 추워지자 입을 닫았다  사진. 임철순.

인간과 봄의 이 줄다리기는 매년 되풀이되고 있다. 봄날은 가지만 다시 온다. 그런데 올해는 봄이 여름으로 가는 거짓말이 아니라 도로 겨울로 가는 거짓말까지 하고 있는 것처럼 한파가 닥쳤다. 꽃샘추위에 더 치명적인 건 사람 보다 과수 등 농작물인데, 피었던 꽃들이 시퍼래진 입을 다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있다. 올 여름에 맛있는 과일은 먹기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걱정하지 말아라. 아무리 그렇다 해도 봄이 겨울로 뒷걸음질 하는 일은 없는 법이니(인생도 그런 거 아닌가?). 지금은 벌써 음력 3월, 절기는 청명(淸明)을 지나 곡우(穀雨)로 이행하고 있다. 곡우 다음엔 입하(立夏), 계절은 여름으로 간다. 음력 3월은 봄의 막바지여서 모춘(暮春), 만춘(晩春), 계춘(季春)이라고 부른다.

봄을 졸업할 준비를 해야 할 시점이다. 봄은 제 할 일을 다했다. 그런데 아니 벌써? 이봐 그대들, 그대들은 봄이 이렇게 삐칠 때까지 대체 뭘 했어? 정말 그걸 물어보고 싶네. 모두 다 거짓말이라며 봄은 가고 있지 않은가. 타네다 산도카의 시는 그 이야기를 하는 것이지. 다시 말하면 봄은 봄에 속고, 사람은 사람에 속고,... 그래서 봄은 사람에 속고, 사람은 봄에 속고, 그런 거 아니겠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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