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니어전문 라디오프로그램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DJ겸 PD
유영미 아나운서, SBS 여성 아나운서 최초 정년 앞두고 안식년 들어가

[미디어SR 권해솜 객원기자]

유영미 SBS아나운서.  3월 7일 SBS 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마지막 방송을 하고 정년 전 1년 동안의 안식년에 들어갔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유영미 SBS아나운서.  3월 7일 SBS 러브FM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 마지막 방송을 하고 정년 전 1년 동안의 안식년에 들어갔다. 사진 구혜정 기자.

SBS라디오 러브FM의 ‘유영미의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하 '유영미의 청춘')이 2021년 3월 7일 방송으로 마무리됐다. 이 프로그램은 1991년 SBS 개국과 함께 시작된 프로그램이었다. '유영미의 청춘'의 종영은 유영미 아나운서(59)의 정년과 안식년에 맞닿아 있다. 이날 유씨가 고른  끝 곡은 이문세의 ‘그녀의 웃음소리뿐’이었지만, 방송은 눈물범벅이었다. 목이 멘 채 유씨는 방송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1986년 울산MBC에서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습니다. 스물아홉 나이에 경력직 아나운서로 SBS 공채 1기가 됐고요. 올해로 이곳에서만 30년, 아나운서라는 직업인으로 35년을 살았네요."

유씨는 SBS에 들어오고 3년 후인 1994년부터 시니어 전문 라디오 프로그램 '유영미의 청춘'의 두 번째 DJ가 됐고, 프로듀서까지 맡아왔다.  “1991년부터 변순복 선배님이 하시던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제가 1994년에 넘겨받아 2대 DJ가 됐어요. 27년 동안 아무런 방송사고 없이 마무리했습니다.  영광이죠.” 

우리나라에서 몇 되지 않는 시니어를 위한 라디오 프로그램이 유씨와 함께 정년을 맞은 셈이다. SBS의 정년은 만 60세로, 유씨는 1년 동안의 안식년을 마치고 나면 공식적인 정년퇴임을 맞게 된다. 

"이 기간에 이직 준비를 하든 구직 준비를 하든 자기 선택이죠.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할 겁니다. 신기한데 좀 낯설어요."

최초로 정년퇴직하는 SBS 여성 아나운서
마지막 방송을 앞두고 4일과 5일에는 가수 김학래, 우순실, 건아들 곽종목이 오픈스튜디오에 출연했다. 유씨의 정년을 축하하는 떠들썩한 축제파티 방송으로 꾸몄다. 졸업식 노래도 부르고 마음 좋은 게스트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이었다. 

유영미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인 영미티비를 통해 마지막 오픈 스튜디오 콘서트가 공개됐다.
유영미 아나운서의 유튜브 채널인 영미티비를 통해 마지막 오픈 스튜디오 콘서트가 공개됐다.

“토요일, 일요일은 조용하게 늘 하던 것처럼 평소와 다름없이 오롯이 혼자서 방송했습니다. 좋은 음악 듣고 이야기 나누고요. 멋진 피날레보다는 일상으로 돌아가는 게 옳다고 생각했거든요.”

끝이 보이지 않을 것 같더니 올 것이 왔다
정년퇴임 전 안식년 1년을 앞두고 회사 일을 정리할 때가 됐을 때 유씨의 느낌은 “드디어 올 것이 왔구나”였다고 한다. 
“정말 그런 날이 올 것 같나 싶은 먼 날의 이야기였어요. 어떤 기분일까 막연한 기대와 미래라고 생각했어요.  ‘반갑다’는 말보다 ‘맞이한다’라는 느낌이 더 적절할 것 같아요. 1막을 내리고 잠깐 쉬어야지, 지금은 이런 생각입니다.” 
SBS가 AM라디오로 첫 방송을 시작한 날이 바로 3월 21일이다. 30년 전 이맘때 유 씨는 새 방송사 사옥을 누비며 공채1기 아나운서로서 열정을 불태우고 있었을 것이다. 그녀가 안식년 1년을 마치면 SBS 여성 아나운서 최초 정년퇴임자가 된다는 데 의미가 있다.
“저는 최초가 많습니다. 최초 찍느라고 힘들었어요(웃음). SBS 최초로 임신하고 뉴스한 앵커, 출산하고 나서 뉴스 앵커석에 앉은 여자 앵커.,최초 여자부장, 동계올림픽 캐스터. 제가 차장 달았을 때도 최초였고요. 지금은 여자도 차장 달고, 부장 다는 게 당연해 보일 수도 있지만 불가능한 시절도 있었어요.”
물론 프리랜서 아나운서로서의 삶을 생각 안 해본 것은 아니다. 아나운서들이 한 방송사에서 정년을 맞기보다 젊을 때 프리랜서로 전향해 새 삶에 도전하는 모습은 쉽게 볼 수 있다.
“어느 때가 되면 고민을 하죠. 그런데 저는 여자 아나운서 한 명 정도는 정년으로 회사를 나가주는 게  조직과 후배를 위한 나의 역할이고, 가치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저 또한 조직에 있으면서 좌절이 있었죠. 사표도 엄청 쓰고 싶었고요(웃음). 그래도 지금 마침표를 찍는다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마라토너가 결승선에 도달했을 때 느끼는 희열 같은 거랄까요.” 

유영미 아나운서는 시니어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노인학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 석사학위를 마쳤다. 사진 구혜정 기자.
유영미 아나운서는 시니어 전문 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노인학 관련 전공으로 대학원 석사학위를 마쳤다. 사진 구혜정 기자.

시니어와 함께한 방송, 전력을 다하다

젊은 시절부터 시니어 대상 프로그램을 하면서 유씨는 말 그대로 진심과 정성을 다했다고 회상했다. ‘유영미의 청춘’에 대한 애정으로 이화여대 사회복지대학원에서 노인학을 전공하기도 했다. 
“노인과 관련된 프로그램을 한 10년간 하다 보니 수박 겉핥기로 할 수도 있지만, 더 깊게 들어가고 싶었어요.”
그녀는 시니어 세대에 대한 복지 시스템이 눈에 띄지 않던 시절 노인문화를 만들어가는 것에 기여했다.  
“라디오방송을 시작할 때만 해도 노인의 문화가 없었어요. 복지관이 없던 시절에 동네 노인정 다니면서 우리 리포터들이 취재해오고 소식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지역마다 복지관이 생기더라고요. 미래를 희망으로 만들 수 있는 발판이 됐습니다. 복지관과 협업해서 공개방송도 해드리고요. 정말 있는 힘껏 힘을 실어드렸습니다. 열심히 하시라고요.”
각 지자체의 복지관 규모가 커지다 보니 시니어들만의 커뮤니티가 생기고, 그분들이 직접 운영하는 방송국도 생겨났다.
“복지관이 없을 때는 방송이 중심이 됐어요. 이제는 알아서 잘 어울리는 분위기더라고요. 우리의 역할은 마친 것 같아요. 정말 노인과 관련해 아무런 정보가 없을 때 많은 정보를 제공했습니다. 노인 우울증에 관한 예방 정보 등에 대해서도 전문가를 모시고 이야기하고요. 그러면 기관에서 듣고 복지사님들이 공부도 하고, 여기서 얻은 아이디어를 실제로 반영도 하고요. 노인 정보가 모이는 거대 통신사 역할을 했다고 생각해요.”
사별이나 자녀와의 문제 등으로 인해 노인 우울증을 겪는 시니어를 응원하는 프로그램도 꾸준히 하고, IT 관련한 정보도 잊지 않고 시니어들에게 알렸다.
“우울증 걸린 시니어분들은 방송에 의지하는 경우가 많아 그분들을 위한 역할을 많이 했어요. 문 닫고 커튼을 치고 '나 안 나갈 거야’ 했는데, 이분들이 동네에 나가게 되고 사람들을 만나게 하고 공기를 좀 쐬니까 좋다며, 유영미 씨 정말 고맙다고 피드백도 주시고요. 그리고 우리는 절대로 컴맹이 되면 안 된다며 스마트폰 사용 방법 같은 것도 방송을 통해서 제안했어요. 이거도 각 복지관에서 화제가 되어서 가르치기도 하더라고요.”
유씨는 그동안의 일을 이야기하면서 내내 밝은 표정이었다. 인생을 바쳐 방송을 한 사람의 맘 편한 얼굴이었다. 유씨는 안식년과 함께 프로그램을 종영하는 이유에 관해 이렇게 말했다.

“이제 1년 동안 안식년을 마치고 나면 진짜 정년퇴임이에요. 이 기간에 무엇을 할지는 자기 선택이죠.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할 겁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이제 1년 동안 안식년을 마치고 나면 진짜 정년퇴임이에요. 이 기간에 무엇을 할지는 자기 선택이죠. 이제부터 천천히 생각할 겁니다.” 사진 구혜정 기자.

“제가 먼저 프로그램 종영에 대해서 회사에 말씀드렸습니다. 회사 입장에서 오래된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는 것도 좋지만, 변화를 주고 싶을 때가 있을 거예요. SBS 30년인데 새로운 시작일 수도 있잖아요. 장수프로그램도 좋지만, 또 새로운 포맷으로 자유롭게 하는 것도 좋잖아요. 저한테는 영광이에요. 선배님이 한 3년 하시다가 제가 물려받았거든요. '유영미의 청춘'도 정년을 맞이해서 정리가 되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여한이 없다고 해야 할까요? 제가 할 일은 다했어요(웃음).”

"느리게 인생 2막을 맞이해 보겠습니다"

지금 안식년 중인 유씨에게 전화를 해보니 맘 편히 해보고 싶던 여행을 한다고 했다. 코로나19가 아니었다면 크루즈에 승선했을 텐데 강원도 여행도 나름 자유가 있어 행복하다고 했다.  은퇴 계획을 미리 세워 놓았는지 물어보니 아침부터 저녁까지 회사 일이 태산이었다고 말했다.
“은퇴 전에 은퇴 계획하는 분들 대단한 분들이에요. 혹은 일을 제대로 안 한 거예요(웃음). 뭘 하고 싶은지 모르겠고 조금 쉬면 좋겠어요. 긴 공연도 1막 마치고 쉬잖아요. 미친 듯이 달려왔는데 좀 쉬면 좋겠어요. 하늘도 좀 보고 차 마시면서 수다도 떨어보고 싶고요. 어디 갈까 생각했다가 즉흥적으로 떠나보는 자유도 좀 만끽하고 싶어요.”
그녀는 늘 방송 마무리에 “사랑합니다”라는 말을 청취자에게 남겼다. 
“모를 것 같지만 사람들은 다 알아요. ‘사랑합니다’라는 다섯 글자, 1초도 안 되는 말에 힘이 있었던 거죠. 그리고 또 다음 날 팬들은 라디오를 켜주셨고요.”
매일 그 시간을 기다려온 팬들이 걱정된다는 말에 의외의 대답이 돌아왔다. 금방 잊힐 거라고 했다.
“어느 날 문득 ‘유영미 아나운서 방송 좋았지’라고 생각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성공한 거죠. 저는 다른 프로그램을 포기하고 애정을 가지고 라디오에 전념했어요. 제가 DJ면서 피디였는데 그 맛이 유지될 수 있을까요? 이럴 때 1호는 문 닫아야 해요. 프랜차이즈 2호란 없습니다. 아주 단순하게 생각했어요(웃음).”
“유영미 청춘은 나와 함께 사라진다. 프로는 나였고 나는 프로였기 때문에”라고 말하는 유 아나운서. 인생 2막을 준비하기 위해 쉼이라는 보너스를 즐기고 있다. 그 시간을 좀 더 누리고 난 다음 인생 2막을 즐기러 나오는 모습을 기대해본다. 

SBS 목동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유영미 아나운서. 사진 구혜정 기자.
SBS 목동 사옥에서 인터뷰하고 있는 유영미 아나운서. 사진 구혜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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