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디어SR 임철순 주필] 며칠 전, 화장품 용기를 제조하는 중소기업 삼성브러쉬의 대표 장성환(92)·안하옥(90) 씨 부부가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20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했다. 기부한 부동산은 서울 강남구 논현동의 580m²(약 175평) 대지에 지상 6층, 지하 2층 규모의 빌딩이다.

황해도 남촌에서 7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장씨는 여덟살 때 월남한 뒤 온갖 고생을 다 해가며 대학원까지 졸업했다. 안 먹고 안 입으면서 물티슈도 물에 헹궈 쓸 정도로 악착같이 모은 재산이지만 보람있는 일에 쓰는 것은 그리 어려운 결정이 아니었다.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과 아내 안하옥씨. KAIST 제공.
   장성환 삼성브러쉬 회장과 아내 안하옥씨. KAIST 제공.

장씨 부부의 기부에는 용인 실버타운의 같은 동에 사는 이웃사촌 김병호(80) 전 서전농원 대표와 김삼열(71) 씨 부부의 권유 영향이 컸다. 이들은 2009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KAIST에 350억 원을 내놓았다. 7남매의 장남이었던 김씨는 열일곱 살 때 전북 부안에서 무작정 상경한 뒤 자동차 부품 가게, 미제 통조림 판매업, 버스 운수업, 부동산 임대업, 농원 등을 경영하며 자수성가한 사람이다.

이들 두 부부가 사는 실버타운은 ‘기부 명당’이다. 김씨에 이어 고 조천식, 손창근 씨도 동참해 같은 동네에서 네 가족이 총 761억 원을 KAIST에 기부했다. 한국정보통신 회장을 역임했던 조씨는 2010년과 2012년에 총 160억 원, 손씨는 2017년 부동산 50억 원과 현금 1억 원을 기부했다. 특히 손씨는 지난해 추사 김정희의 ‘세한도’(국보 제180호)를 국가에 기부한 바 있다.

KAIST 기부자 선배들. (왼쪽부터) 김병호-김삼열 씨 부부, 고 조천식-윤창기씨 부부, 손창근-김연순씨 부부. KAIST 제공.
KAIST 기부자 선배들. (왼쪽부터) 김병호-김삼열 씨 부부, 고 조천식-윤창기씨 부부, 손창근-김연순씨 부부. KAIST 제공.

그 실버타운은 첨단 의료서비스 등이 제공돼 자수성가한 기업인들 상당수가 입주한 곳이라고 한다. 장씨는 다른 건물에 사는 조천식, 손창근씨와는 교류가 없었지만 그의 기부 소식을 들은 손씨가 “좋은 선택을 하셨다”고 연락해왔다고 한다. 그도 올해 92세이니 동갑의 이웃친구를 새로 사귄 셈이다.

기부릴레이의 첫 주자인 김씨는 2005년에 다른 곳에 장학금을 주었다가 실망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서남표 KAIST 총장이 강연료와 상금을 학교에 기부하고 있다는 기사를 읽고,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보탬이 되도록 KAIST를 지원하기로 했다.

근묵자흑(近墨者黑)이요 근주자적(近朱者赤)이라던가. 검은 먹을 가까이하면 검어지고, 붉은색을 가까이하면 붉어진다. 마찬가지로 좋은 이웃을 가까이하면 나도 좋은 사람이 된다. 그래서 예로부터 집을 고를 때 꼭 이웃을 봐야 한다고 했다.

중국 남북조 양(梁)나라 무제 당시 여승진(呂僧珍)은 온화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 어느 날 남강군 군수 송계아(宋季雅)가 그의 집 근처로 이사왔다. 집값으로 천백만 냥을 주었다고 말했다. 왜 그리 비싸냐고 묻자 “백만 냥으로 집을 사고, 천만 냥으로 이웃을 샀습니다.”라고 대답했다. ‘백금매택 천금매린(百金買宅 千金買鄰)’의 고사다. 제물포고를 일으킨 교육자 길영희(1900~1984) 선생도 제자들에게 ‘百金買宅 千金買鄰’ 휘호를 즐겨 써주었다고 한다.

여기에 나오는 鄰(이웃 린)은 원래 한 집의 이웃 네 집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그 집을 보탠 다섯 집이 保(보)라고 하는 주민 조직이다. 이른바 인보복지는 가까운 이웃끼리 서로 돕는 것을 말한다. 용인의 이웃들은 인보선행을 실천한 셈이다.

이웃의 소중함을 모르는 사람들은 없다. 위아래의 이웃은 층간소음으로 싸우기 쉬운 관계이지만, 생활정도와 의식수준이 비슷한 수평적 이웃은 4촌보다 더 가깝다. 좋은 이웃은 돈과도 바꾸지 않는다. 나라가 달라도 각국의 속담은 비슷하다. “세 닢 주고 집 사고 천 냥 주고 이웃 산다.”(한국), “이웃을 천금에 비기랴?”(일본), “좋은 저택을 사기보다 좋은 이웃을 얻어라.”(스페인) 등등.

당의 시인 왕발(王勃, 650~676)의 시에 “海內存知己(해내존지기) 天涯若比鄰(천애약비린)”이라는 말이 있다. 이 세상에 나를 알아주는 이 있다면 하늘 끝이라도 이웃 같으리라는 뜻이다. 그러니 좋은 이웃을 만나고, 사귀고, 본받아라.

지난해에는 이수영(85) 광원산업 회장이 676억원 가치의 부동산을 출연해 '이수영 과학교육재단'을 설립하겠다고 기부를 약정했다. 이렇게 선한 이웃들의 기부를 받은 KAIST와 대학생들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나.

최근 총장이 바뀌면서 학교 분위기가 달라지는 것 같아 주목된다. 지난 8일 취임한 이광형 총장은 개교 50년을 맞아 ‘KAIST 신(新)문화’ 조성을 제창했다. 그는 “KAIST의 문제는 공부를 너무 많이 한다는 것”이라며 “전공 공부할 시간을 10% 줄이고, 그 시간에 인성과 리더십을 배우자”고 말했다.

사실 KAIST생들은 공부는 잘하지만 인성이 메말랐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공부스트레스 때문에 한동안 자살자가 잇따르기도 했다. 과학기술 발전과 진보에 앞장서는 인재가 돼야 하겠지만, 지식과 기술에만 뛰어난 인재는 층간소음을 일으키는 이웃처럼 오히려 해로운 존재다.

최근 인터넷에 어느 병원 간호사와 소개팅을 하면서 대전의 엑스포다리에 관해 ‘친절하게’ 설명한 KAIST생 이야기가 떴다. 이런 대화가 오갔다고 한다. 당사자가 ‘자수’한 내용이다.

-대전에 뭐 볼 거 있나요?

-엑스포 다리 있어요.

-튼튼해요?

-장력을 얻기 위해 철근을 꼬아서 만들었대요. 설계할 때부터 최대 하중을 늘리기 위한 철근 수를 예상하고, 철근을 당겨줄 아치형 하중 분산 주탑도 이용하고 있어요. 그리고 뭐, 직원들이 매일 관리하시겠죠?(뿌듯한 표정 발사)

-아, 네. 저 화장실 좀...

그렇게 일어난 그녀는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고 한다.

KAIST생은 이렇게 대화를 소개한 뒤, “내 말이 뭐 그리 과학적이냐?”며 간호사가 튼튼하냐고 물어서 대답한 것뿐이라고 주장했다. 그에게는 너무도 당연한 설명이며 아무것도 아닌 내용일 것이다.

그러나 과학에 인문을 섞어야 엑스포다리는 더 튼튼해질 것이고, 그 간호사도 그의 이웃이 될 수 있었을 것이다. 늘 이웃을 생각하며 살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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