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오후, 백사마을 너머로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사진. 박세아 기자
6일 오후, 백사마을 너머로 빼곡이 들어선 아파트단지가 보인다. 사진. 박세아 기자

[미디어SR 박세아 기자] 주말에 '서울에 남은 마지막 달동네'로 불리는 노원구 중계동 소재  `백사마을`을 찾았다. 사라지는 것에 대한 아쉬움과 현장의 느낌을 눈과 귀로 직접 느끼고 싶다는 바람으로 발걸음을 재촉했다.

6일 오후, 하늘은 다소 비가 내릴 듯 어두웠다. 중계본동 종점역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백사마을이 자리 잡고 있다. 

'백사마을'은 언뜻 뱀의 일종인 백사(白蛇)와 연관성이 있는듯 싶다. 하지만 이 마을에 흰 뱀이 나온 적은 없었다고 한다. 알고보니 과거 주소지였던 중계동 104번지에서 비롯된 이름이었다.

백사마을 초입에는 재개발을 앞두고 올해 하반기 시공사 선정을 염두에 둔 듯 건설사들의 응원 플래카드가 여기저기 눈에 띄었다. 바람에 펄럭이며 "날좀 보소"라고 경쟁적으로 외치는듯 했다. 

마을 초입에는 한눈에 보기에도 아주 오래된 미용실이나, 음식점이 여전히 영업 중이다. 타임머신을 타고 기자가 아직 태어나기 전인 1970년대쯤으로 온 느낌이라고 나 할까.

백사마을은 1960년대 후반 서울 용산, 청계천 등 도심 개발로 삶의 터전을 잃고 밀려난 철거민들이 불암산 밑자락에 모여 형성된 마을이다. 

2008년 개발제한구역에서 해제되면서 정비사업이 유력한 곳으로 하나로 꼽혀왔지만, 10년 넘게 낮은 사업성과 주민 갈등으로 재개발 사업이 이뤄지지 않아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제는 공실이 된 집집마다 오가는 행인이 없고 내놓은 쓰레기 들만 길가에 도열한 듯 눈에 띈다. 사진. 박세아 기자
이제는 공실이 된 집집마다 오가는 행인이 없고 내놓은 쓰레기 들만 길가에 도열한 듯 눈에 띈다. 사진. 박세아 기자

강산도 변한다는 10년여의 인고의 시간을 거쳐 드디어 서울시는 지난 4일  총면적 18만6965㎡의 `백사마을 재개발정비사업`이 드디어 사업시행 계획 인가를 받았다고 고시했다.  이에따라 백사마을은 2025년까지 총 2437세대 규모의 상생형 주거단지로 탈바꿈될 부푼 꿈에 휩싸여 있었다. 

백사마을 초입에 드문드문 보이던 주민들의 모습은 마을 속으로 진입해 들어갈 수록 점점 뜸해졌다. 마을은 이미 대부분 공실임을 보여주기라도 하듯 동그라미 모양의 빨간색 라커가 집집마다 표시돼 있었다. 주민 이주가 이미 대부분 완료된듯한 느낌이었다. 

낡은 판자와 곳곳에 버려진 옷가지나 오래된 가전제품들 사이로 비교적 깔끔해 보이는 한 사무실이 눈에 들어왔다. 실내장식 한지도 얼마 되지 않는 듯 J공인중개사 사무실은 깨끗하고 깔끔해 그 자체로 눈길을 끌었다. 

20년째 공인중개업을 해왔다는 J공인중개사 대표는 미디어SR에 "이미 대부분이 다 이주하고, 이제 여기 거주하는 분들은 얼마 남지 않았어요"라고 말문을 열었다. 

그는 "재개발 여부를 놓고 10년 동안 된다 안 된다 말도 많았다"면서 "집값도 지금 많이 오른 상태에서 수지 타산이 맞으니 재개발사업이 시작되는 것 같다"고 진단하기도 했다. 그는 이어 "다만 분담금 책정이 많이 되면 집 값이 얼마 안 되는 상황에서는 오히려 손해를 볼 수 있어 사업 진행이 어려울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보통의 경우, 재개발이 되면 기존 마을에 갖고 있던 집 평수에 상응하는 새 아파트를 분양가 보다 저렴한 조합원 분양가(평균적으로 일반 분양가보다 7~8% 낮은 가격)로 분양받게 된다.

하지만 추가분담금(여러 시설과 부대비용에 들어가는 비용)이 많다면 주민 입장에서 는 조합원 분양가가 낮지 않을수도 있어 각자의 경제력에 따라 새 아파트에 입주하지 못하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J공인중개사 대표는 현재 백사마을에 집이나 땅 소유는 현지인 보다 외지인이 많다고 귀띰했다. 그는 "보상금과 분담금이 확정돼야겠지만, 이미 재개발 후보지였을 때부터 투자 목적으로 구입해 놓았던 사람이 많아 그들에게는 이번 재개발이 상당히 반가운 소식일 것"이라고 언급했다.

분담금이 많다고 해도 일반 분양가보다 낮은 가격에 아파트 등을 분양받으면 분양권이라도 팔아 차익을 남길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현재 백사마을 시공권을 둘러싸고 국내의 내로라하는 건설사 5곳이 각축을 벌이고 있다는 소식도 들을 수 있었다.

어린 시절 골목길의 추억이 떠오르는 풍경. 사진. 박세아 기자
어린 시절 골목길의 추억이 떠오르는 풍경. 사진. 박세아 기자

백사마을의 가파른 골목을 지나 꼭대기에 오를수록 불암산과 더 가까이 마주한다는 느낌이 들었다. 산이 한 눈에 보이는 뷰가 괜찮았다. 

산 너머 보이는 빼곡한 아파트와 이제는 오래된 종이 조각과 옷가지 등이 바람에 나부끼는 백사마을의 대비는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보여줬다.

여전히 길 한편에는 연탄이 놓여 있고, 옹기종기 모여있는 장독대는 옛날 부모님 세대에 이곳에 정착한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었다.

백사마을에 여전히 거주 중인 일부는 영업보상비(이주를 하더라도 정상영업이 불가한 사람들에게 영업비를 보상해주는 것) 문제가 걸려있는 사람들도 있다. 

마을 한 쪽에 아담하게 자리 잡은 한 미용실에는 미용업만 40년 했다는 정모씨가 난로를 피워둔 채 사색에 빠진 듯 앉아있었다. 

정씨는 이날 미디어SR에 "여기 살던 사람들 방금 마실 와서 이야기 나누다 갔다"면서 "아파트로 가니깐 적응이 안되나 봐"라고 너스레를 떨기도 했다.

정씨는 "사람들이 다 떠났으니, 장사가 잘 될 수 있나...나중에 보상비만 기다리고 있다"면서 "아들 둘 낳아서 여기서 다 잘 키워냈는데..."라고 중얼거리듯 말했다. 그는 "다 낡아빠졌지만, 이제 떠나려니 조금은 아쉽기도 하다"며 허공을 바라봤다.

한 미용실 내부의 난로가 있는 풍경. 오래된 TV와 난로가 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사진. 박세아 기자
한 미용실 내부의 난로가 있는 풍경. 오래된 TV와 난로가 묘한 앙상블을 이루고 있다. 사진. 박세아 기자

백사마을 주민들의 이같은 애환과 아쉬움을 조금이라도 알기는 하는 걸까. 서울시는 백사마을에 주거지보전사업 유형을 도입, 재개발 사업과 연계해 백사마을 고유의 정취와 주거·문화생활사를 간직한 지형, 골목길, 계단길 등의 일부 원형을 보전하기로 결정했다.

주거지보전사업은 재개발구역에서 기존 마을의 지형, 터, 생활상 등 해당 주거지 특성보전과 마을 공동체 활성화를 위해 건축물의 개량, 건설 등의 사항을 포함해 임대주택을 건설하는 것을 말한다.

주거지보전사업은 백사마을 전체 부지 가운데 공공임대주택 건설이 예정된 4만832㎡에 추진된다. 나머지 부지 14만6133㎡에는 노후한 기존 주택을 철거하고 최고 20층의 아파트 단지와 기반시설이 들어서게 된다.

'백사마을'이 어느 순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더라도 이곳 주민들의 삶과 마음 속에 살아있는 추억은 사라지지 않기를 기원하며 발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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