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컷
영화 시네마 천국 스틸컷

[미디어SR 정시우 칼럼니스트] 영화관에 대한 나의 강렬했던 첫 경험은 사실 내 기억 속에 없다. 그 경험은 엄마의 추억을 통해 구전동화 형태로 내게 머물러 있을 뿐이다.

내가 엄마 배 속에 있을 때 겪은 일이라 그렇다. 엄마가 나를 임신했을 때 한국에 '만딩고'라는 영화가 들어왔다. '뿌리'라는 외화의 인기에 힘입어 5년 지각 상륙한 화제의 영화였다.

이 화제작을 외면할 수 없었던 영화광이었던 엄마는, 암만 생각해도 대단하지, 배에는 나를 품고 등에는 돌이 갓 지난 아들(우리 오빠다)을 업고 극장을 갔다. 물론 극장은 갓난아이가 견디기엔 너무 어둡고 사운드가 큰 곳이었다.

겁에 질린 아들이 눈치 없이 울자 상영관 밖으로 나올 수밖에 없었던 엄마는 그럼에도 영화를 포기하지 않았다. 암막 커튼 뒤에 숨어 머리만 빼꼼히 내밀고 '만딩고'를 끝까지 다 봤다는 불굴의 엄마를 떠올리면, 가끔 가오나시 이미지가 떠올라 죄송스럽긴 하지만, 무언가에 그토록 뜨거울 수 있었던 열정에 감탄하곤 한다.

그날 그 장소에 나는 아직 덜 갖춰진 인간의 형태로 엄마 배 속에 있었지만, 극장 안에서 그녀가 느낀 감정만큼은 온몸으로 받았다. 그날을 나의 첫 영화관 체험이라고 생각하는 이유다. 

영화관에 대한 두 번째 강렬한 기억은 ‘사람’이다. 수능을 본 후 아르바이트한 곳은 제주도 탑동에 위치했던 ‘탑동시네마’와 동문 시장 입구에 있었던 ‘시네하우스’ 극장 매표소였다.

마침 제주도 극장이 멀티플렉스 시스템으로 넘어가는 과도기였다. 인쇄된 종이에 영화와 날짜 스탬프를 찍는 ‘구식 영화 티켓’과 모니터 터치만 하면 티켓이 자동 출력되는 ‘종이 티켓’ 모두를 내 손으로 직접 팔았다.

무엇보다 그곳엔 사람들이 있었다. 표를 받으며 우리와 말동무가 되곤 했던 ‘기도 아저씨’, 필름이 들고 낑낑대던 영사실 오빠들, 신메뉴가 들어오면 매표소 구멍으로 음식을 넣어주던 매점 언니, 그리고 드라마틱했던 관객들. 그곳에서 나는 여러 인간군상의 인간적인 사연들을 만났다.

뭐랄까. 영화보다는 영화관이라는 공간이 좋았던 시절이었다. 안타깝게도 이 극장들은 시대의 흐름에 밀려 사라졌다. 나는 이제 고향인 제주도에 가면 원도심 중앙로에 위치한 ‘메가박스 제주’를 일부러 찾는다. 내가 ‘탑동시네마’ ‘시네하우스’에 있을 때 ‘아카데미’ 극장으로 불렸던, 그러니까 추억의 흔적을 유일하게 간직하고 있는 극장이기 때문이다. 리모델링을 거쳐 모습이 달라지긴 했지만 그 공간에 들어서면, 이상도 하지. 그 시절의 냄새가 난다. 

영화관에 대한 강렬한 세 번째 기억은 ‘온기’다. 대학 입학과 함께 서울로 상경한 후 자주 찾던 곳이 지금은 사라진 대학로 ‘하이퍼텍나다’였다. 멀티플렉스에선 상영되지 않는 영화들을 보기 위해 바지런을 떨며 참 많이도 갔었다.

하루는 “서울 하늘이 외로워” 조규찬의 음악을 들으며 하이퍼텍나다로 갔다. 평일 낮 시간이라 관객이 많지 않았다. 나와 내 또래의 관객 서너 명. 나는 영화가 끝난 후, 같은 영화 티켓을 또 사서 극장에 들어갔다. 말했듯, 외로운 날이었으므로.

그런데 이게 무슨 기시감. 앞선 회차에서 함께 영화를 봤던 서넛의 또래들도 티켓을 끊고 들어와 앉아 있었다. 나는 확신한다. 그때 우린 서로가 서로를 잠시 당황스러워했지만, 이내 반가워했다는 걸. 처음 만난 사이들이었지만, 그 순간 뭔지 모를 끈끈한 줄이 서로에게 엉겨 붙었다는 걸.

생판 모르는 사람들과 5시간 남짓 같은 장면에서 웃고, 같은 장면에서 숨죽이고, 다른 지점에서 크고 작게 반응하고, 공기를 타고 흐르는 온기를 나누며 나는 극장이라는 공간이 주는 힘을 새삼 느꼈다. 

영화관에 대한 기억을 말하라면 사실 밤을 새울 수도 있다. 나뿐 아니라, 많은 이들이 그러리라 생각한다. 이제 막 호감을 나누기 시작한 연인들에게 나란히 붙어 앉아 같은 곳을 바라볼 수 있는 극장은 설렘의 공간이었을 것이고, 누군가에겐 꿈과 만나는 공간이었을 것이며, 누군가에겐 지친 일상의 피로를 푸는 휴식처였을 것이다. 극장은 누구와 함께 가느냐에 따라 다른 의미로 변모하는 마법의 공간이기도 하다.  

그런 극장이 올해 코로나 19라는 변수와 OTT라는 신흥 강자를 만나 그야말로 빙하기를 건너고 있다. 경영 악화로 상반기 허리띠를 졸라맸던 극장가는 다시 한번 긴축 경영에 돌입했다.

상영관 30%를 줄이기로 한 CGV의 결정으로 CGV대학로, 명동역 씨네라이브러리 등 7곳이 제대로 된 작별 인사 조차 없이 문을 닫았다. 마침 오랜 시간 홍대를 지키며 독립예술 영화의 든든한 지원군 역할을 해 온 ‘KT&G 상상마당 시네마’의 폐관 소식이 뒤숭숭한 전선을 형성하기도 했다. 폐관을 공식 부인한 KT&G의 입장으로 한숨 돌리긴 했지만 이 약속이 지켜질지에 대해서는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해 보인다. 

무엇보다 극장을 가장 흔들고 있는 것은 유통 구조의 변화 바람이다. 단관 영화관이 멀티플렉스로 대체되고, 필름이 디지털로 넘어가도 극장은 그 자리에 있었다. 콘텐츠가 극장에 머물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번은 좀 다르다. 극장 개봉을 포기하고 넷플릭스로 직행한 '사냥의 시간'의 사례가 '콜'로 이어졌다. 또한 베니스 영화제 초청작 '낙원의 밤'에 이어 국내 최초 우주 SF 영화 '승리호'도 넷플릭스 공개를 타진 중이다.

'승리호' 같은 텐트폴 영화가 극장을 포기한다는 건, 단순히 한 영화의 운명이 아니라 영화계 전반의 기류가 바뀌는 일이다. '사냥의 시간'이 영화산업의 커다란 변곡점 역할을 했다면, '승리호'는 이러한 흐름에 깃발을 꽂을 수 있는 상황인 셈이다. 

코로나가 바꿔 놓은 극장가를 바라보며, 다시금 영화관이 어떤 존재였는가를 떠올려 본다. 칸국제영화제 60주년을 기념해 기획됐던 옴니버스 영화 '그들 각자의 영화관'의 부제는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될 때의 전율’이었다. 이 전율을 극장에서 더 오래 지켜보고 싶은 건 시대를 읽지 못하는 뒤처진 생각일까.

경영난에 독립영화 상영관부터 없애는 대기업들이 조금 더 영화의 다양성을 지켜주길 바라는 건, 경제 논리를 무시한 철없는 욕심일까. 리모컨으로 쉽게 영화를 선택하는 게 아닌, 누군가와 약속을 잡고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극장으로 향하는 행위를 지속하고 싶은 건 너무 낭만적인 발상일까.

단순히 ‘본다’는 개념을 너머, 어떤 ‘정서’를 선물해줬던 극장을 생각해 본다. 당신에게 극장은 어떤 곳이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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