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영화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속 레이의 활약은 놀랍다. 절대 악으로서 긴장감을 자아내는 건 물론 유려한 액션으로 관객의 입을 ‘떡’ 벌어지게 하는 활약을 펼쳤다. 그동안 영화 속에서 볼 수 없던 화려한 모습은 레이의 캐릭터성을 배가시키는 무기가 됐다. 레이의 모든 것을 치열한 고민과 치밀한 계산으로 완성시킨 이정재. 이름값을 톡톡히 해낸 '명불허전(名不虛傳)' 이정재의 변신은 놀랍고도 반갑다.  '과연' 이정재다.  


Q.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를 통해 과감한 이미지 변신을 시도했어요.
이정재:
시나리오에  외형이나 행동 양식이 거의 없던 만큼 그 이미지를 찾아가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어요. 이번 영화만큼 테스트를 많이 거친 작품은 없던 것 같아요. 스태프들끼리도 촬영에 들어가기 전부터 많이 만난 터라 서로 원하는 것을 더욱 열심히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Q. 레이 캐릭터를 통해 단순히 ‘악역’으로 치부할 수 없을 정도로 과감한 면면들을 보여줬어요. 표면적으로는 형을 죽인 인남(황정민)을 쫓는다지만, 극 중 레이(이정재)는 형의 죽음에 슬퍼하기 보다는 사람을 ‘사냥’하는 것에 열중하는 느낌이었죠.
이정재:
그런 인상을 받길 바라며 레이를 표현했어요. 레이는 누군가를 사냥하고 싶어 하는 본능이 있는 인간이에요. 형의 장례식장에 가서도 그의 죽음을 ‘확인’한 것일 뿐 슬퍼하지는 않죠. 생각 자체가 잔인한 인간으로 만들고 싶었어요. 그렇게만 표현된다면, 잔인한 행동을 하지 않아도 사람 자체가 잔인하게 느껴지기 마련이거든요.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캐릭터를 만들어가며 다양한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어요.
이정재:
저는 레이가 독특하고 묘하면서도 서늘해 보이길 바랐는데, 그 일환으로 목에 문신이 가득한 이미지를 떠올리고 감독님께 그 분장을 제안했어요. 일반적인 킬러의 이미지를 재현하기 보다는 아주 작은 디테일까지도 다르게 표현하고 싶었거든요. 그러다 보니 목에 타투가 들어갔고, 의상도 그에 맞춰 조화를 이루려 했어요. 특히 레이가 신은 흰 구두는 상징적으로 두고 싶었어요. 구두만 비쳐져도 레이가 왔다는 걸 느낄 수 있게 하려 했죠.

Q. 레이를 표현함에 있어 가장 중점을 둔 부분은 무엇이었나요.
이정재:
과하지 않은 한도 내에서 새로우면서도 독특한, 레이만의 묘한 매력을 어떻게 만들어낼 수 있을지가 제일 큰 고민이었어요. 레이를 설명하는 내용이 별로 없는 만큼 제가 상상력을 더 집어넣을 수 있었는데, 그 한계를 어디로 둘지에 대해 많은 생각을 했었죠. 사실 저는 무언가를 과하게 표현하는 걸 좋아하지 않는 편이지만, 이번엔 여러 면을 표현하는 데에 신경 썼어요. 특히 영화 전체에서 레이가 인남을 압박해가는 만큼, 어느 정도로 압박을 해야 서스펜스가 더욱 잘 형성될지를 생각하려 했어요.

Q. 외적인 모습 외에도 작은 부분 하나하나까지 아이디어를 냈다고 들었어요. 레이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는 모습 역시 직접 고안한 설정이라던데.
이정재:
서늘한 모습의 킬러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들고 다니면서 빨대로 마시는 모습이 더욱 섬뜩한 느낌을 자아낼 거라고 생각했어요. 무심한 모습에서 공포감이 느껴지길 바랐죠. 로케이션 촬영을 위해 일본에 도착하자마자 연출부에게 투명한 용기에 얼음이 가득 채워져 있고 빨대가 꽂혀 있는 아이스 아메리카노가 필요하다고 말했어요. 빨대를 돌릴 때 얼음이 잘그락거리는 소리 역시 연기 표현 중 하나였거든요.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일본에서 레이라는 캐릭터를 맛보기로 보여줬다면, 태국에서 갱스터들과 싸우는 장면은 레이가 이 정도로 잔혹하며 무자비한 인물이라는 걸 확실하게 보여준 것 같아요.
이정재:
그 신 역시 많은 고민을 거친 부분 중 하나예요. 셔터 밑으로 ‘쓱’ 들어갈 때 표범 같은 몸짓이 레이와 잘 맞을 거라 생각했죠. 본능적인 몸동작으로 내부에 들어가 갱들을 빠르게 제압하고 얼음을 씹어 먹는 장면을 표현하고 싶었어요. 적이 큰 칼을 휘둘러도 피하지 않고, 짧은 칼이어도 그걸 얼굴 쪽으로 맞받아 칠 테니 쇠끼리 부딪혔을 때 불꽃이 튀는 걸 CG로 넣어달라는 요청을 했죠. 눈에 크게 띄지 않아도 연기자나 스태프 입장에서는 그런 걸 만들어나가는 게 재미 중 하나거든요. 이렇게 작은 것들을 러닝타임동안 잘 쌓아놓으면 하나의 캐릭터가 만들어지는 거니까요.

Q. 갱들과 싸운 뒤 얼굴에 얼음을 문지르다 씹어 먹는 장면 역시 인상적이었어요.
이정재:
사실 그 장면은 애드리브였어요. 대본을 보고 얼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태국에서는 아이스박스에 알갱이가 작은 얼음을 깔아놓더라고요. 그래서 이거보다는 조금 큰 얼음이면 좋겠다는 의견을 드렸죠. 자신의 얼굴에 튄 남의 피를 얼음으로 닦아내다 먹는다는 것만 봐도 ‘보통 놈’이 아니라는 느낌이 들잖아요. 레이를 표현하려면 그런 작은 것들이 필요하다고 생각했어요. 눈빛 역시 일반 사람들과는 다른 초점을 가져가려 했어요.

Q. 방콕에서 인남과 레이가 맞닥뜨리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로 꼽을 만한 부분이에요. 긴장감이 넘칠 뿐만 아니라 액션의 난이도 역시 상당히 높아보였죠.
이정재:
그 장면은 공간 설정부터 많은 공을 들였어요. 누구 하나 도망갈 수 없는 좁은 곳에서 싸움을 붙인 만큼 공간에서 오는 긴장감부터가 남달랐죠. 좁은 공간이어서 싸우는 동작 역시 달라졌어요. 무술 감독님과 촬영 감독님이 직접적으로 타격하는 느낌을 살리려 하셨는데, 감독님들의 촬영기법 덕에 그 장면의 재미 요소가 더욱 잘 살아났어요.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황정민과 이정재의 재회’라는 점에서 ‘신세계’와 비교될 수도 있겠다는 부담감도 있었을 법한데.
이정재:
만약 ‘신세계’와 장르나 캐릭터가 비슷했다면 출연에 앞서 고민이 됐을 것 같아요. 하지만 ‘신세계’는 느와르고 이번 작품은 액션이니 차별성이 있고, 캐릭터 역시 상반된 느낌이니 괜찮겠다 싶었어요. 황정민과 이정재라는 배우가 다시 만났지만 완전히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만큼 캐릭터만 잘 그려낸다면 관객 분들도 다른 느낌으로 봐주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그런 만큼 황정민 형은 부성애 쪽에 집중한 것 같고, 저는 기존에 보지 못했던 독특한 캐릭터로 레이를 만들어갔어요.

Q. 박정민과는 ‘사바하’ 이후 재회이기도 해요. 특히 박정민이 극에서 엄청난 변신을 감행한 만큼 함께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놀라움이 컸을 것 같아요.
이정재:
사실 (박)정민 씨가 맡은 그 역할은 연기하기 어렵고 힘든 캐릭터예요. 그런데도 작은 손동작 하나까지도 완벽하게 표현해내더라고요. 그래서 정민 씨가 촬영한 다음날이면 현장에 가서 어떻게 찍었는지 보여 달라고 할 정도였어요. 정말 뛰어나고 특별한 배우라 생각해요.

Q. 총기 액션과 맨몸 액션, 칼을 활용한 격투 등 다양한 액션 신이 돋보였어요. 준비 과정은 어땠나요.
이정재:
영화에 나온 액션 그대로를 준비했다면 서너 달 정도가 걸렸겠지만, 작품에 그려진 육탄 액션은 현장에서 갑자기 추가된 것들이에요. 시나리오 상에는 총기 액션이지만 현장에서 수정이 됐거든요. 특히 태국 갱스터들과 맞붙는 장면은 원래 액션이 생략돼있었다가 현장에서 많은 사람들과 겨루는 것으로 변경된 거예요. 그런 장면들이 레이를 표현할 수 있는 요소가 되겠다 싶어서 제 입장에선 오히려 반가웠어요. 진짜 싸우는 것처럼 보일 수 있게끔 합을 짜서 더욱 잔인함이 배가된 것 같아요.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이정재. 사진. CJ엔터테인먼트 제공

Q. 대규모 폭발이 일어나는 총기 액션신은 경이로울 정도였어요.
이정재:
하하, 그렇게까지 크게 찍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갱들과의 액션 신을 찍고 조금 더 세게 찍어도 되겠다 싶어서 인남과 레이의 복도 액션신도 더욱 거세졌고, 그러다 보니 대규모 액션도 규모가 커졌어요. 사실 촬영장에서 준비했던 것 그 이상을 찍는 건 거의 불가능해요. 국내에서도 어려운데 심지어 태국 로케이션 촬영이었죠. 현지 스태프들의 도움을 받아가며 멋진 장면을 만들어낼 수 있었어요.

Q. ‘암살’, ‘관상’ 등 그동안 악역을 맡은 작품들이 흥행하면서 영화계에서는 ‘이정재가 악역을 맡으면 성공한다’는 말도 나와요. 이번 작품은 그런 평가에 더욱 힘을 실어줬죠.
이정재:
악역은 상상했던 것들을 더욱 많이 집어넣을 수 있는 여지가 있는 캐릭터예요. 새로운 것을 시도하는 과정에서 표현 역시 더욱 풍부해지고, 그 과정에서 관객 분들이 캐릭터를 더욱 흥미롭게 봐주시는 것 같아요. 연기하는 입장에서도 악역이 아닌 역할은 뭔가를 좀 더 표현하고 싶어도 과하지 않을까 싶어서 자제하게 되는데, 악역은 그렇지 않기 때문에 더 좋게 봐주시는 게 아닐까 싶어요. 

Q. 그 덕에 영화가 관객들에게도 좋은 반응을 얻으며 흥행가도를 이어가고 있어요. 침체된 극장가에 활력을 주고 있다는 평이 지배적이죠. 배우로서의 느끼고 있는 소회 역시 남다를 것 같아요.
이정재:
시원한 액션영화인 만큼 재미있게 즐겨주셨으면 좋겠어요. 80%가 해외 촬영분인 만큼 이국적인 장면을 보는 것도 또 다른 재미 중 하나일 거라 생각해요. 저 또한 연기하면서 ‘악역인데 이 정도는 해도 되지 않아?’라는 생각으로 임해서 재미있게 촬영한 작품이에요. 관객 분들도 저희 영화 속 다양한 액션들을 흥미롭게 즐겨주셨으면 하는 바람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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