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미디어SR 김예슬 기자]

정우성이 영화 ‘강철비2: 정상회담’을 통해 또 한 번 인상적인 연기를 펼쳤다. 데뷔 25년차의 베테랑이지만 그는 늘 연기에 있어 ‘왜’라는 질문을 던지며 신중하되 고루해지지 않기 위해 노력한단다. 그런 그의 고민은 이번 영화 속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 캐릭터에도 고스란히 반영됐다. 감정 표현의 디테일은 물론 전체적인 밸런스를 갖추기 위해 노심초사했다는 정우성과 만나 작품에 얽힌 뒷이야기를 들어봤다.


Q. 전작에 이어 후속편인 ‘강철비2: 정상회담’으로 돌아온 소감은.
정우성:
코로나19로 영화계가 위축된 상황에서 다시금 관객 분들과 만나게 돼 놀랍고 또 기뻐요. 이번 영화는 현실적인 상황에 놓인 한반도에서 우리가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이 상황에 얼마나 진지하게 임하고 있는지를 묻는 작품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것을 달갑지 않게 여길 분들도 계시겠지만, 그럼에도 그 질문을 던지는 게 바로 이 영화의 숙명인 거죠.

Q. 시사회 때 작품에 대해 이야기하며 울컥해 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감회가 남달랐던 모양이죠.
정우성:
기술시사 때 영화를 본 뒤 오랜만에 다시 봤어요. 이전에는 영화의 만듦새를 신경 쓰며 봤다면 이번 시사회에서는 온전히 영화에 빠져든 채 볼 수 있었죠. 한 대통령에게 몰입하며 이런 현실을 살고 있는 우리 민족의 ‘한(恨)’에 대해 여러가지 생각이 들더군요. 앞으로 대한민국이 어떤 지향점을 가져야 할지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전작과 주요 출연진은 동일하지만 서로 관계가 뒤바뀌었어요. ‘강철비1’에서는 북한을 대변했는데 이번에 반대로 대한민국 대통령으로 변신했고, 대한민국을 대변하던 곽도원은 이번에는 거꾸로 북한의 호위총국장으로 중요한 역할을 맡았죠.
정우성:
정말 기발한 캐스팅이라고 느꼈어요. ‘강철비1’은 남과 북을 대변하는 두 인물에 포커스를 맞추지만, 결국 한반도가 주인공인 영화였잖아요. 그건 ‘강철비2’ 역시 마찬가지예요. 감독이 ‘강철비2’를 두고 ‘상호보완적인 속편’이라고 표현했는데, 이 역시도 정말 기발한 단어 선택이에요. 서로 뒤바뀌더라도 이야기에는 전혀 지장이 없다는 것, 영화적으로 기발한 기획이죠. 한반도가 이 시리즈의 주인공이라는 걸 이 보다 더 잘 나타낼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Q. 극 중 대한민국 대통령 한경재를 어떤 캐릭터로 그리려 했나요.
정우성:
한 대통령은 평화에 대한 의지가 강한 인물이에요. 한반도 땅에 살고 있는 우리가 지나쳐 온 역사에 대해 연민을 갖고 있는 만큼, 정상회담이 이뤄질 때도 분단이라는 민족의 불행을 만회하고 극복해나가려 하는 간절한 마음을 많이 담아내려 했어요. 이 땅의 주인이자 분단의 당사자이면서도 회담에서는 배제될 수밖에 없는 아이러니한 면과 이 때문에 답답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는 모습들이 있을 것이라 생각했고, 그런 점들을 투영해서 캐릭터를 표현하려 했죠.

Q. 작품에 대해 설명하는 걸 보면서 그 어느 때보다도 신중한 태도로 임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요.
정우성:
분단은 분명한 민족의 위기인데 어느 순간부터 그 자체는 흐려지고 정치적인 해결에 기대는 모습이 된 것 같아요. 하지만 이 문제는 이 땅에 살고 있는 국민들의 문제잖아요. 우리 스스로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바라보지 않고 누군가에게 맡겨만 둔다면 과연 그 해결이 바람직한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을지에 대해 생각해보게 됐어요. 하지만 이런 이야기를 하면서도 조심스러운 부분은 있어요. 우리 영화는 현실의 아픔을 이야기하려 하는 건데, 정치적인 시선이 개입되면 이 영화가 던지는 메시지와 관계없는 해석들이 나오게 되잖아요. 그런 만큼 더욱 신중하게 접근하려 하고 있어요.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이번 영화에 참여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었나요.
정우성:
여러 지점이 있었어요. 전편과 캐릭터, 스토리의 연관성이 전혀 없는 새로운 속편이라는 점이 참신했고 잠수함이라는 극 중 배경과 함장실 안에서의 세 정상의 모습은 ‘SNL’과 같은 콩트 요소를 갖고 있었죠. 풍자적이면서도 자칫하다간 짐처럼 느껴지는 설정일 수 있는데, 이걸 어떻게 풀어낼지 호기심이 생겼어요. 게다가 극 후반 잠수함 액션은 시나리오를 보는 것만으로도 긴박함이 느껴질 정도였는데, 구현된 걸 보니 이 영화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많은 뿌듯함을 느끼게 되더라고요. 그 장면은 영화사에 남을 만큼 꽤 볼 만한 장면이라 생각해요.

Q. 잠수함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연기를 한 만큼 표현에 있어 어려움도 따랐을 법한데요.
정우성:
협소한 공간인 만큼 움직임에도 제약이 있었어요. 하지만 불편하기 보다는 상황 구현에 상당히 도움 되는 제약이었죠. 특히나 함장실은 연기하기엔 더욱 재미있었어요. 제약 속에서 한 대통령이 할 수 있는 움직임을 찾아갔는데, 아무 것도 못 하고 앉아있으면서도 뭔가를 해야 하는 모습을 중점적으로 담아내려 했죠. 그 자체가 공간이 만들어 낸 새로운 표현이었던 셈이에요.

Q. 한편으로는 함장실 안에서의 세 정상의 모습이 극 중 현실과도 맞닿아있다고도 느껴졌어요. 회담의 주인공이었던 미국의 스무트 대통령은 침대에 누워있고 북한의 위원장 조선사는 의자에 앉아있는데 대한민국의 한경재 대통령은 어정쩡하게 서 있을 수밖에 없었죠.
정우성:
맞아요. 북한 위원장 역을 맡은 극중인물 조선사가 그 (북한)잠수함의 주인이니 처음에는 침대를 차지하다가 나중에 스무트 미국대통령에게 양보하고, 스무트는 다분히 안하무인식의 모습을 보여줬죠. 그 비좁은 공간에서 스무트의 행태를 보며 한경재는 절제하고 인내할 수밖에 없었어요. 함장실이라는 곳 자체가 한경재의 심리상태와 맞닿은 부분이 있는 거죠.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스무트 역할을 맡은 배우 앵거스 맥페이든이 캐릭터를 더욱 과감하게 연기했다고 들었어요. 그의 캐릭터 해석이 한경재를 구현함에 있어 어떤 영향을 줬는지 궁금해요.
정우성:
앵거스이기 때문에 그런 해석과 표현을 해낸 것이라 생각해요. 인간적인 면도 보이지만 무례하고 얄미운 지점도 분명히 있잖아요. 그의 과도한 모습을 바라보는 한경재를 표현할 땐 도움을 받은 부분이 있기도 했어요. 한경재가 무표정한 얼굴로 있으면 관객 분들이 각자의 감정을 한경재에 대입해 즐기실 수 있을 거라 생각했거든요.

Q. 함장실 안에서는 다소 코믹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어요.
정우성:
셋이서 보여줘야 하는 장면이 많긴 했지만 합을 맞추지는 않았어요. 짜여진 게 있으면 재미가 없어지니까요. 덕분에 각자의 액션과 리액션에 따라 또 다른 표현이 나왔고 그에 따라 색다른 변주로 이어질 수 있었어요. 좁은 공간 내에서 뒤섞이는 캐릭터를 보여드릴 수 있어 새롭고 또 즐거웠어요.

Q. 1994년에 데뷔해 올해로 25년차 배우가 됐음에도 연기에 새로운 영역이 있다는 게 신기하네요. 베테랑 배우인 만큼 꼭 물어보고 싶은 질문이 있어요. 연차가 쌓일수록 연기는 점점 쉬워지나요, 혹은 어려워지나요.
정우성:
데뷔 초의 저는 늘 자신만만했어요. 하지만 그 이후부터는 연기가 어려워지기 시작했죠. 지금도 마찬가지로 어려워요. 조금은 알겠다 싶으면서도 여전히 쉽지는 않더라고요.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의외네요. 막연히 생각해 봤을 때, 더 많은 것들을 알게 돼 연기가 보다 더 쉬워지지 않았을까 싶었거든요.
정우성:
인생을 살면 살수록 어렵다고 느껴지잖아요. 그것과 똑같은 것 같아요. 연기를 하면 할수록 표현을 함에 있어서 기저에 깔린 그 인물의 심리에 대해 생각해보게 되거든요. ‘왜 이 표현을 해야 할까?’, ‘왜 이 표현을 선택했지?’에 대한 의문이 자꾸 생기고요. 그러다 보면 아무 생각 없이 지었던 표정과는 다른 의미의 표정이 지어지기 시작해요. 다 아는 감정이라고 치부하기 보다는 ‘왜’가 중요해진 거죠.

Q. 인생도, 연기도 생각이 많아지면 어려워질 수밖에 없겠네요.
정우성:
맞아요. 대신 너무 계산하지는 않으려 해요. 그리고 어느 하나에 갇히려 하지 않고요. 연기란 ‘나’라는 사람을 찾아가는 과정 같아요. 주어진 것에 갇히지 않고, 계속해서 관심을 가져가며 주어진 것을 당연히 여기지 않고 감사해 하면서 ‘나’라는 사람이 존재하고 있는 이 세상에 대해 끊임없이 관심을 갖게 되고… 삶과 연기가 맞닿은 부분이 이런 것 같아요.

Q. 삶과 연기 모두 성공과 실패 속에서 배움을 얻고 또 성장하곤 하죠. 배우로서 화려한 성공을 하는가 하면 좌절을 겪을 때도 있었을 텐데, 그럴 때마다 자신을 다잡게 하는 힘은 무엇이었나요.
정우성:
일단 저는, 성공이 당연하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모든 작품이 모든 관객들에 좋은 반응을 얻게 된다면 좋겠지만 결과가 꼭 그렇지만은 않잖아요. 그럴 때 너무 좌절하지 말고 온전하게 그 결과를 받아들이는 게 답인 것 같아요. 영화를 하다 보면 어떤 건 흥행하고 또 어떤 건 망작이 되고 또 다른 건 불후의 명작이 되기도 하죠. 그게 당연한 거예요. 그걸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배우 정우성. 사진.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Q. 지금까지 연기를 해오며 스스로 터득한 깨달음인듯 싶네요. 인생 선배의 조언이자 여러 시행착오를 거치며 얻은 교훈으로 느껴져요.
정우성:
우리 모두는 성공을 바라고 성공에 대한 의지가 있지만 성공을 하지 못하면 당연히 가져야 하는 걸 갖지 못하는 사람처럼 좌절하곤 해요. 하지만 그럴 필요는 없는 것 같아요. 인생을 하나의 줄기라고 생각하면, 늘 언제나 다른 잎사귀가 달리고 새로운 시기를 맞이하게 되곤 해요. 결과적으로는 나 자신이 얼마만큼 감내해내고, 다음 작품에서 달라진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느냐가 관건이에요. 나 자신에게 달린 거죠.

Q. 코로나19로 인해 영화계와 산업 전반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하고 있어요. 배우이자 제작자로서 현 상황을 어떻게 바라보고 있을지 궁금해요.
정우성:
영화산업이 움츠러들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대신 플랫폼이 다변화할 것 같아요. 해외 OTT 플랫폼이 새롭게 들어오고 있고 한국에서도 한국형 OTT인 웨이브가 등장했어요. 그런 플랫폼들에 필요한 콘텐츠는 계속 나올 것 같아요. 극장이 언제 정상궤도로 돌아올지는 모르지만, 그렇다 해서 영화 촬영을 중단할 수는 없는 노릇이죠. 저 역시도 앞으로 제가 할 수 있는 일을 잘 찾아가 볼 생각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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